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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의사기념사업회, 북에 안장된 ‘박열의사’ 봉환 사업 추진

쿠키뉴스 노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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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의사기념사업회, 북에 안장된 ‘박열의사’ 봉환 사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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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이사장 “유해 봉환 사업, 박열 의사 정신 기리는 화룡점정”
재일본대한민국국민단이 기증한 박열의사 동상,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재일본대한민국국민단이 기증한 박열의사 동상,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북한에 안장된 문경 출신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의 유해 봉환을 민간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서원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은 19일 “현재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된 박열의사의 묘를 민간차원에서 중장기 계획을 세워 모셔 오기 위한 사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심장부를 강타한 박열 의사는 6·25 전쟁 당시 북한으로 강제 피랍돼 1974년 1월 17일 향년 73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이에 서 이사장은 “유해 봉환 사업은 한평생 민족과 조국 통일을 위해 헌신하신 발열 의사의 정신을 기리는 화룡점정이 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서 이사장은 앞서 지난 17일 가진 박열 의사 제52주기 추모식에서도 “박열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문경발전과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에너지로 승화시켜 나가기 위해 봉환 사업을 차분히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열의사기념관에서 진행된 이날 추모식에는 박열의사의 손자와 유족을 비롯해 신현국 문경시장, 이정걸 시의회 의장, 시·도의원, 이규봉 문경경찰서장, 신동성 문경예천대대장, 박인원 前기념사업회 이사장, 박경규 노인회 문경시지회장, 지역 안보・보훈단체장, 지역 유림단체장,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해 그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렸다.

특히 식전 행사에서 박열의사의 생전 애창곡인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문경문화원 하모니카 동아리가 연주해 눈길을 끌었다.
박열 의사 제52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박열 의사 제52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한편, 박열의사는 190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3·1운동에 참여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아나키스트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9년 10월 부산에서 도쿄(東京)로 가는 배에 몸을 실은 그의 나이는 18세였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신문배달과 날품팔이, 우편배달부, 인력거꾼, 인삼 행상 등 노동에 종사하면서 틈틈이 ‘세이소쿠(正則)’ 영어학교에 다녔다.

이곳에서 반제 자유사상을 가진 여성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를 만난다.

오뎅(어묵)집에서 일한 그녀는 우연히 박열의사의 자작시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를 읽고 강한 감동과 함께 그를 흠모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사상적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를 만난 박열의사는 아나키즘단체인 흑도회·흑우회 등에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펼쳤다.

그러던 중 일제가 1923년 9월 관동 대지진 발생을 기회로 삼아 한국인들과 일본내 사회주의자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했으며, 이때 박열의사와 가네코 후미코 여사가 피체돼 옥고를 치렀다.

박열의사는 1926년 일왕 폭살기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으며, 1948년 해방이 되기까지 22년 2개월을 감옥에서 지냈다.

이는 독립운동가 가운데 최장 수감 기록이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일왕을 폭살하기 위해 폭탄을 구입하려 했다”고 당당히 밝혔다.

특히 사형 판결이 나자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며 일갈한 말은 유명하다.

그가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투쟁한 행동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에도 재일교포의 권익 신장을 위해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을 조직해 단장(초대~5대)을 역임하는 등 민족운동에 헌신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온 그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북으로 압송되며 다시 고초를 겪게 된다.

납북 이후에도 그는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 참여하며 자주적인 통일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 협의회는 당시 북으로 끌려간 조소앙・안재홍・엄항섭・김약수 등 민족지사들이 남북한 정권 모두에게 자주적 평화통일 원칙을 촉구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이처럼 평생을 조국평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한 그는 73세의 일기로 평양에서 숨을 거뒀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서원 이사장이 지난 17일 열린 박열 의사 제52주기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열의사기념관 제공.

서원 이사장이 지난 17일 열린 박열 의사 제52주기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열의사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