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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라현 한일 정상회담서 본 ‘근대사 콤플렉스’ [최수문 선임기자의 문화수도에서]

서울경제 최수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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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라현 한일 정상회담서 본 ‘근대사 콤플렉스’ [최수문 선임기자의 문화수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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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대선에서 세구루 후보 20.67득표로 2차 투표행
400년만에 1인당 GDP 역전 등 한국 급성장
‘일본문화 무시’ 근대사 콤플렉스는 해소
여전한 일본의 고대사 콤플렉스 해소 위해선
고대 한일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 필요해


“일본인들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문화를 무시한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지난 2013년 펴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의 ‘시작하며(서문)’에서 쓴 글이다. 유 관장은 이 책을 낸 이유로 “서로의 일방적 시각에서 쌍방적 시작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유홍준 관장의 이 책과 문장이 생각난 것은 지난주 이재명 대통령의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 나라현 방문에 동행했던 유 관장 때문이다. 유 관장은 앞서 이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담한 중국 베이징 방문에도 동행했었다. 다만 중국에서는 한국에 보관 중인 ‘청대 석사자상’의 기증 이슈가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특별한 공식 역할이 없어 보였다. 다만 유 관장만한 국내 일본 전문가도 없기 때문에 동행이 필요했을 듯하다.

이와 관련해 이번 [문화수도에서]에서는 한일 관계의 재인식에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일본의 고대사 콤플렉스와 한국의 근대사 콤플렉스의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유홍준 관장이 말한 ‘일본인의 고대사 콤플렉스’는 우리 국민이면 대부분 잘 알고 있다. 고대 일본 문화는 한국(한반도)에서 전달 받았다는, 한일 스승·제자론이다. 한국의 스승의 역할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다. 일본인들도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배웠다”는 말을 못하고 ‘콤플렉스’만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정확히 할 것이 있다. 정확한 역사 인식이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한 충분조건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한일 관계는 실제로는 문화 전달의 의미보다는 이민이나 이주와 관계와 같다고 본다. 유 관장도 책에서 고대 한일 관계는 영국·미국, 영국·호주 등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주장을 했다. 미국과 호주를 세운 기초는 영국인들의 신대륙에 대한 이주다. 영국인들(후에는 다른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었다. 물론 300~400년의 시간이 흐른 후 서로 모습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영국과 미국의 근본 관계를 의심하는 사람은 현재 없는 듯하다.

한국과 일본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다만 이미 2000년 가까이 지난 상태에서 일본에서는 이런 사실(史實)을 피하려 할 뿐이다. 말하지만 이렇다. 2300여 년 전(서기전 3~2세기)에 일본 규슈 북부에 갑자기 청동기문화(이른바 ‘야요이문화’)가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후쿠오카 인근인 사가현 ‘요시노가리’ 유적이다. 또 당시 벼농사도 일본 내에서 처음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누가 봐도 한반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흔적임이 분명하다.


빙하기 때 이어진 육지로 사피엔스들이 일본 지역으로도 이주했는데 이후 1만 5000년 전부터 따뜻해지면서 해수면이 올라가고 일본은 고립된 섬이 된다. 당시 기술로는 항해가 쉽지 않아 결국 일본과 대륙과의 이동·교류는 끊겼다. 이때가 일본으로는 구석기에 이은 신석기인 조몬 시대다.

하지만 서기전 3세기 기술발전을 통해 바다 장벽을 넘어서면서 대규모 이주민이 일본으로 다시 들어왔고 이들이 이른바 ‘야요이문화’를 만들었다. 당시는 그 유명한 연나라 출신 ‘만(滿)’으로의 고대 조선(고조선, 서기전 194년) 정권 교체와 이어 한나라 한무제의 침략의 시기다. 고대 조선이 혼란 끝에 멸망하고 한사군이 생기는 상황에서 만주와 한반도에서 대거 이주민이 발생했고 연쇄반응을 일으켜 밀린 세력과 사람들이 바다 건너까지 간 것이다. 한반도에서 이주민이 건너가기 전에는 일본 열도에는 대략 10만 명 정도의 원주민(조몬인)이 수렵·채취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미국의 인디언들과 비교된다.

한번 바닷길이 열리자 한반도에 사건이 생길 때마다 이주 행렬이 이어졌다. 가야의 멸망, 백제의 멸망, 고구려의 멸망 등 경천동지의 사건들이 이어졌다. 이후 일본으로의 이주민과 한반도 본토인들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한일은 완전히 분리된 상태가 됐다. 영국과 미국 관계에 비교하자면 한국인은 영국인, 미국인은 일본인 격인 셈이다. ‘일본의 고대사 콤플렉스’라지만 어쩌겠나. 과거지사가 그런 것을 말이다.





‘근대사 콤플렉스’는 다소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2013년 유홍준 관장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쓸 때는 한국인의 근대사 콤플렉스가 있었겠지만 출간후 10여년이 지난 2026년 시점에서는 이런 관념 자체도 역전되지 않았나 필자는 생각한다.

다시 영미를 이야기하면 미국도 국가건설 후에도 여전히 영국 문화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1·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도와주면서 영국인에 대해 우월감을 갖게 됐다. 초강대국 지위의 미국은 지금도 마찬가지 수준인 듯하다.

한일 간에도 19세기 일본의 근대화가 일찍 성공하면서 일본인은 한국인에 대한 우월감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른바 ‘메이지유신’으로부터 150여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인들의 근대사 콤플렉스가 거의 사라졌다고도 볼 수 있다. 적어도 젊은세대에서는 그렇다. 필자는 어릴 때 어른들이 “한국은 일본을 배워야 한다. 한국이 20~30년은 일본에 뒤쳐졌다”고 하는 이야기를 늘상 듣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전히 일본의 강점이 많지만 그에 비해 한국의 강점도 더 많다. 특히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GDP)은 지난 2023년 일본의 추월한 후 2024년에도 앞섰고 지난해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기관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IMF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 3만 6238달러, 일본은 3만 2443달러였다.

물론 그전에도 한국이 일본보다 항상 소득이 낮았던 것은 아니다. 학계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대략 16세기말 임진왜란(1592~1598)이 분기점이라고 평가한다. 그전에는 당연히 한국이 더 부유하고 선진적이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파괴된 조선이 정체상태에 빠진 반면 일본(에도 막부)은 약탈 자산 등을 통해 급성장했다.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진 1965년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이 994달러, 한국은 109달러로, 9배 차이(세계은행 집계)였다. 국내 언론에서 지난 2023년 한일 간의 소득 역전을 이야기하면서 ‘400년 만의 재역전’이라고 하는 보도가 나왔었는데 이는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요즘은 한국에 온 일본인보다, 한국인들이 일본에 더 많이 가서 더 많은 돈을 쓴다. 한국의 대중문화의 일본 진출이 일본 문화의 대한 진출보다 많다. 기술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100여년 간의 축적효과 때문에 일본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마저도 조만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일본 나라현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회담을 한 뒤 가진 한일정상 공동언론발표에서 “그동안 정착시켜 온 셔틀 외교의 토대 위에 미래지향적 협력을 지속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고대 수도였던 나라현이 한일 정상회담 장소가 된 것은(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고향이라는 점과 함께) 활발히 교류했던 고대 한일 관계를 다시 되살리자는 의미일테다.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과 관계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최수문 선임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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