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정치인의 공통점, 좋은 직언이 없다”
“검증 자신있나”… 이혜훈 이 충고 들어봤나
“지금 정치 맞나”… 장동혁 이 질문 답해봤나
“내게 반론 펴라”는 唐 태종 리더십이 귀감
“검증 자신있나”… 이혜훈 이 충고 들어봤나
“지금 정치 맞나”… 장동혁 이 질문 답해봤나
“내게 반론 펴라”는 唐 태종 리더십이 귀감
김승련 논설실장 |
직언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거기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비상계엄 일주일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에게 계엄 구상을 설명했고, 펄쩍 뛴 총리의 반대로 계엄을 백지화했다고 가정해 보자. 덕분에 대통령은 ‘구속, 파면, 사형 구형’이란 치욕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벌어지지 않은 미래’를 알 도리가 없는 대통령은 도움받았다는 마음보다는 1년 넘게 준비한 계엄을 포기한 데 따른 응어리가 남을 수 있다. 어쩌면 대통령-총리 관계가 불편해졌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라면 ‘성공한 쓴소리’ 제공자는 그 공(功)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 보며 정치인의 참모진은 직언을 삼가거나 머뭇거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윤 전 대통령은 이달 5일 형사법정에서 제대로 된 계엄 만류가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 “(그날 밤) 국무총리하고 국무위원들이 최소한의 정무 감각이라도 갖췄다면 외교나 민생이 어쩌니 할 게 아니었다. ‘계엄을 선포해 봤자 민주당이 해제할 텐데, 대통령님만 창피스러울 수 있고 역공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장관도) 이렇게 말 안 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결심을 바꿀 뜻이 없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말은 자기기만형 핑계일 뿐이다.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가 “군을 동원한 헌정 중단은 역사 앞에 떳떳하지 못하다”고 건의했다면 좋았겠지만, 수십 년 직업 공무원 출신이 대통령 면전에서 그렇게 말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인 비서실장이 했어야 할 말이지만, 대통령은 자기 비서실장과는 일언반구 상의도 안 했다. 무능한 충성파 군인 및 군 출신 몇몇과만 일을 꾸미다가 비극을 자초했던 것이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는 어떤가. 그는 후보직을 수락하지 않았어야 했다. 일련의 불미스러운 행위로 국무위원직을 수행하기엔 부적격하다는 걸 자신이 가장 잘 알지 않나. 인사청문회의 매서움을 잘 아는 그로선 뼈아픈 오판을 했다. 그와 가족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이 후보자는 입각 제안을 받고 누구와 상의했을까. “검증이 혹독할 텐데, 자신 있냐”는 조언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제3자가 그의 불법 탈법 갑질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행적을 알기 어렵고, 혹 일부 짐작했더라도 “검증이야 잘 통과하실 테니까…” 정도로 에둘러 말했을 공산이 크다. 그쯤 말했을 때 이 후보자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검증 무서운 줄 알았어야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직언의 부재로 엉뚱한 방향으로 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언자 그룹과 한 몸으로 똘똘 뭉쳐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졌다는 해석이 더 그럴듯하다. 그는 ‘윤 어게인’ 인사들을 끌어안고,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했다. 누가 봐도 경쟁자 제거를 통한 당 장악에 나선 사익 챙기기다. 그 과정에 “우리가 하는 이 정치, 맞는 건가”라는 내부 질문이 있었을까. 문제는 장 대표가 앞으로 비슷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점이다. 단식 중인 그의 머릿속에 “이러다 6월 지방선거 참패하면 이후는 어떻게 대처하나” 하는 질문이 맴돌아야 한다.
불편한 질문은 오감을 자극해 내 생각을 원점에서 되짚어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런 브레이크 장치는 참모들의 남다른 용기에만 기대서 갖출 일은 아니다. 쓴소리의 실질적 수혜자인 정치인이 간언(諫言)의 채널을 정비해야 한다.
이런 이슈를 다룰 때 지금도 인용되는 게 당나라 때 펴낸 ‘정관정요’다. 거기엔 당 태종 이세민이 신하들을 향해 “내 결정에 동의 못 하면 누구든 반론을 펴달라. 그대들은 내 비위만 맞추고 있다”며 답답해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당 태종 사례는 간(諫)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책이 제왕학의 전범이긴 하지만, 1300년도 더 된 이야기가 여전히 소비될 정도로 이런 소통 방식은 귀했다는 뜻이리라.
권력이 함께하는 직언과 쓴소리는 보물 같은 존재다. 당의정과는 정반대로 쓴맛 코팅이 됐을 뿐 알맹이는 바른 정치로 이끄는 달콤함이 있다. 오직 영리하고 인내심 깊은 정치인만이 그 효능을 누릴 뿐이다. 지금 이 시각, 여러 실력자들은 자신에게 직언 정치가 잘 작동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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