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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견딘 알갱이들의 위로[내가 만난 명문장/이동재]

동아일보 이동재 미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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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견딘 알갱이들의 위로[내가 만난 명문장/이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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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

―구효서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 중


이동재 미술인

이동재 미술인

본능적으로 끓어오르는 창작욕과 표현 의지는 창작 활동에 커다란 동력이다. 하지만 뜨거움만으로는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다.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초년의 창작자를 괴롭히기 마련이다. 인고 끝에 등단이라는 문턱을 넘는다 해도, 생존의 냉혹한 벽 앞에서 또 다른 고통과 마주하는 현실이 기다린다. 이토록 창작의 길은 험난하지만, 형용할 수 없는 내적 필연성, 그리고 생활인으로서의 고난을 버티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한계를 넘으며 맛보는 만족감과 희열, 그 이상의 무엇에서 비롯된다.

어릴 적 들판의 풀벌레들을 관찰하며 놀기를 좋아했다. 물가 풀숲에서 작은 날벌레가 고치를 탈피하고 성체로 탈바꿈하는 것을 숨죽여 지켜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창작은 스스로 끊임없이 껍질을 벗어내는 일이다. 낡고 익숙한 것을 과감히 집어던지고 매번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강박과도 같은 상념에 시달리다 보면 문득 움츠러드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뚫기 힘든 두꺼운 외피를 핑계로 바깥세상이 두렵다며 껍데기 속 못난 애벌레처럼 구는 것이다. 돌돌 말린 날개를 펼칠 용기도 내지 못한 채. 그러나 다시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밀어내고 화려한 날개를 펼쳐내어야만 따뜻한 해를 받아 나비로 비상할 수 있다. 그렇게 거듭되는 탈피와 변신 속에서도 내 안에서 자신을 쥐어짜는 것이 있다.

구효서의 소설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는 제목만으로도 예술가의 존재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예술가는 영혼에 생선 가시가 박힌 채 살아가는 이들이 아닐까. 깊숙이 파고들어 조금만 움직여도 날카로운 가시에 몸을 떨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파하며 살아가야 하는 기구한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아픔을 견뎌낸 알갱이들이 다른 이의 영혼을 살피고 위안을 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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