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시선]고양이를 부탁하는 마음

경향신문
원문보기

[시선]고양이를 부탁하는 마음

서울맑음 / -3.9 °
길고양이가 어제부터 움직이지 않고 집 마당에 웅크리고 있다고 데려오셨다. 박스 안은 조용했다. 꺼내려고 몸을 만지니 차갑고 뻣뻣했다. 종일 내린 비 때문인지 박스 밑에서부터 담요까지 젖어 있었다. 고양이를 데려온 남자의 허름한 옷과 머리도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마당에서 밥만 먹고 돌아가던 녀석이어서 이렇게 아픈지 몰랐다고, 조금만 다가가면 도망가버려 가까이에서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했다. 남자의 표정이 어두웠다.

박스에서 꺼내 고양이의 체온을 측정하니 심각한 저체온증이다. 온몸의 털 상태가 엉망이었고 심각한 탈수로 두 눈은 움푹 패어 있었다. 몸을 만져도 아무 저항이 없고 맥박도 약하다. 머리털이 쭈뼛 섰다. 응급 상황이고,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이 고양이를 살리는 일. 드라이어와 핫팩으로 고양이의 체온을 올리면서 수액 맞힐 준비를 했다.

남자는 말했다. “말 못하는 동물인데, 이렇게 아픈지도 몰랐네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꼭 살려주세요.” 밥을 챙겨준 지 일주일밖에 안 된 고양이. 살갑게 한번 만져보지도 못했던 고양이에게 이 남자는 이렇게 애틋한 마음을 갖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누가 보기에는 그냥 모르는 동물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것이 올라오고 코끝이 찡해진다. 꼭 살리고 싶다. 고양이의 몸에 따뜻한 바람을 주면서 혈관 확보를 준비했다. 혈관이 확보되어야 치료를 위한 주사제 투약이 가능하다. 앞발을 잡고 축축하게 젖어 있는 털을 조심스레 밀었다. 혈관을 터뜨리지 않고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

숨을 참고 아이브이(iv) 카테터를 준비하는데,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숨 안 쉬어요!” 준비하던 손을 놓고 고양이를 감쌌던 담요를 걷어냈다. 고양이는 마지막 큰 숨을 내쉬고 있었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아… 녀석은 고단한 삶을 끝낸 것이다. 아무리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 순간이다. 잠깐 눈을 감고, 고통 없는 곳에서 영원히 편안하기를 빌었다. 남자에게 고양이의 죽음을 알리고 담요를 덮어 전해드렸다. 그는 차가운 고양이를 안고 잠시 낮게 흐느끼다가 잘 봐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떠났다.

그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그가 고마웠다. 약한 존재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측은지심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고야 마는 이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 수의사라는 내 직업이 좋아진다. 동물병원이 아닌 어디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차에 치인 고양이, 유리창에 부딪힌 새, 길 잃은 강아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들을 위해 자기 삶의 일부를 내어주는 사람들. 길 위의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 동물병원으로 달려오는 그 마음들이 애틋하다.

이들이 구조해온 동물들의 진료가 늘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는다. 치료 중에 사망하는 경우도 많고 치료가 잘된다 해도 임시 보호처를 찾지 못하는 등 난감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약한 존재의 고통 앞에서 생명을 포기하지 않았던 기억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길 위의 작은 존재를 살리는 일에 동참했던 나의 기억도 먼 미래의 나에게 위로를 전해줄 것이 분명하다.


허은주 수의사

허은주 수의사

허은주 수의사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