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식 언론의 본명은 아마도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 정도가 되겠다. 그저 인터넷 방송이라고 하는 건 진짜 방송이 아니라서 곤란하고, 그렇다고 유튜브 뉴스라고 부르기에는 자체 제작 뉴스를 별로 찾을 수 없기에 명실상부하지 않다. 세상 대부분 언론사가 인터넷에 올라탄 지도 오래됐기에 인터넷 언론이라 부르면 변별성이 없다. 따라서 한두 진행자가 사안별로 몇몇 평론가를 초대해서 웃고 떠드는 (내용적으로 이게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그 내용 제공자를 그렇게 부르면 맞춤하다고 본다.
본명을 빼면 우리는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에 대해서 오해가 별로 없다. 이 사업이 애초에 어디에 자리 잡고, 어떻게 성장해서, 누구를 위협하게 됐는지 모두 잘 알고 있다. 이 오해 없이 잘 알려진 사실이 무슨 뉴스가치가 있는 논쟁적 사안이 된다는 듯 토론했던 방송 프로그램이 있어 뜻있는 시청자의 핀잔을 사기도 했다.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의 비극은 그것이 흥한 사정의 내부에서 펼쳐진다. 몇백만명을 기록한다는 이른바 ‘동접자’의 주관적 정보환경이 무대가 된다.
매일 뉴스를 본다고 응답하면서 실은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만 줄곧 보는 시민들이 있다. 하루 평균 두세 시간을 훌쩍 넘기며 보는데, 아침에 습관적으로 켜놓는 유튜브 채널로 시작해서 하루 종일 이리저리 채널을 바꾸다보면 실은 몇시간을 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뉴스를 봤다는 그 시민들은 정녕 뉴스를 본 것일까. 스스로 판단하기에 그날의 뉴스로 간주하기에 충분한 양의 정보를 접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본명을 빼면 우리는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에 대해서 오해가 별로 없다. 이 사업이 애초에 어디에 자리 잡고, 어떻게 성장해서, 누구를 위협하게 됐는지 모두 잘 알고 있다. 이 오해 없이 잘 알려진 사실이 무슨 뉴스가치가 있는 논쟁적 사안이 된다는 듯 토론했던 방송 프로그램이 있어 뜻있는 시청자의 핀잔을 사기도 했다.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의 비극은 그것이 흥한 사정의 내부에서 펼쳐진다. 몇백만명을 기록한다는 이른바 ‘동접자’의 주관적 정보환경이 무대가 된다.
매일 뉴스를 본다고 응답하면서 실은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만 줄곧 보는 시민들이 있다. 하루 평균 두세 시간을 훌쩍 넘기며 보는데, 아침에 습관적으로 켜놓는 유튜브 채널로 시작해서 하루 종일 이리저리 채널을 바꾸다보면 실은 몇시간을 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뉴스를 봤다는 그 시민들은 정녕 뉴스를 본 것일까. 스스로 판단하기에 그날의 뉴스로 간주하기에 충분한 양의 정보를 접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뉴스를 당신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알아야 마땅한 소식의 묶음이라고 정의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뉴스의 정의를 완화해 시민으로서 알아두면 좋은 소식의 묶음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현대 뉴스는 꼭지별로 갈래, 범위, 깊이라는 세 변수를 갖는다. 갈래가 뉴스의 장르적 범주라면, 범위와 깊이는 뉴스가 다루는 사안의 당사자 수와 서로 관점이 다른 정보원 수로 나타낼 수 있다. 요컨대 뉴스의 묶음을 장르적 범주에 따라 얼마나 다양하고 포괄적인지, 그리고 개별 뉴스는 각자 얼마나 다각적이고 심층적인지 경험적으로 측정해볼 수 있다.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에서 뉴스를 본다는 이들은 주로 정치 관련 뉴스를 특정 당사자의 입장에서 제한된 정보원의 소식을 중심으로 이용한다. 그들이 접하는 시사평론이란 양적으로 보면 대단할지 몰라도 뉴스의 범위와 깊이로 보면 가늘고 빈약한 것들이고, 따라서 수백만명이라는 동시접속자의 개별 정보환경은 황량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 때문에 그들의 정보환경이 공정치 않고 편파적인 내용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난번 칼럼에서 언급했지만,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은 주류 재래식 언론이 과거에 실패했던 영역에서 같은 내용으로, 그러나 더 참혹하게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고 실패하는 양상이 비슷하다는 사실이 그 비극에 장엄함을 더해준다. 이 역시 주류 언론의 그것과 유사하다.
나는 2010년 한국언론학보 논문에서 ‘사실과 의견의 분리’ 문제를 검토하면서, 당대 한국 언론이 보도를 통해 뉴스 이용자의 이해를 한쪽 방향으로 몰아치는 데 유능할 뿐이라고 비판한 적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언론의 편향성과 구분해 경향성이라고 불렀다. 주류 언론이 당파적이니 편파적이니 단편적이니 하는 비판들도 각자 일리가 있지만, 실은 주류와 비주류를 가리지 않고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언론이 특정 사안을 한쪽 방향으로 몰아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의 경향성 테제는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에 적용해봐도 타당해 보인다. 이게 비극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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