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부터 매달 셋째주 토요일 진행하는 세월호 참사 ‘기억과 약속의 길’ 도보 순례 참여자들이 노란 우산을 쓰고 기억의 공간을 찾아 가고 있다. |
장소는 기억을 품는다. 잊었던 기억도 다시 그 장소를 마주하면, 그곳에 투영된 다양한 희로애락의 감정이 다시 활성화된다. 17일 찾은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4.16기억교실은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2014년 4월16일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2학년 250명의 산산이 흩어진 기억을 한데 모은 공간인 탓이다. 2014년 7월부터 매달 셋째주 토요일 진행하는 ‘기억과 약속의 길’ 도보 순례에 참여했다. 어느덧 11년하고도 7개월, 139회째다. 시민들과 함께 단원고 아이들이 걸었던 등하굣길과 뛰어놀던 곳, 아이들의 기억이 머물었던 공간을 걸으며 기억에 새기는 행사다. 4·16기억교실을 시작으로 단원고~4.16기억전시관~4.16생명안전공원(공사 중)을 돌아오는 4.16㎞ 구간이다.
4.16기억교실은 2014년 4월15일, 그날로 시간이 멈춰 있다. |
“지금부터 출석을 부르겠습니다. 고해인, 김수경, 김민지, 김민희….” 해설사가 당시 단원고 2학년 1반 별이 된 아이들의 이름을 한명씩 호명하며, 미래 어떤 희망을 품고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소개했다. 해설사의 가벼운 농담에도 교실 안 분위기는 무겁게 내려앉았다. 광주광역시에서 온 한 참여자는 “수십, 수백번을 들어도 엄숙해지는 순간”이라고 했다. 1월생인 현정양의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고, 그의 일화가 담긴 이야기도 함께 읽어 내려갔다.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교실(1~10반)과 교무실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사용했던 책상, 의자, 칠판, 문, 천장 선풍기는 물론 창문틀까지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시간은 그날로 멈춰 있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게시판에 붙어있던 2014년 4월15일 일정표와 식단표, 수학여행 일정표도 그대로였다. 책상에는 아이들의 사진과 꿈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어둠의 유산이라고 했다. “아픈 역사의 상처를 담고 있는 장소를 ‘다크 헤리티지’라고 부릅니다. 유대인 학살의 역사를 담고 있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처럼요. 부정적인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장소, 그 자체로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증거가 됩니다.” 이곳에서 해설사로 활동하는 고 임경빈 군의 어미니 전인숙씨가 이같이 소개했다.
4·16기억전시관 천장에는 세월호 희생자 305명의 기억함이 달려 있다. |
기억교실을 둘러본 뒤 밖으로 나와 본격적인 걷기에 들어갔다. 기억교실 맞은 편에는 당시 통곡의 바다였던 고려대 안산병원 장례식장이 있었다. 동행에 나선 참여자 20여명은 ‘기억·희망·동행’이라고 쓰인 노란 우산을 쓰고 걷기 시작했다. 순례길에는 고마움과 서러움이 서려 있었다. “당시 올림픽기념관에 임시분향소가 마련됐는데, 조문하려는 줄이 인근 고잔초등학교 운동장까지 이어졌어요. 당시에는 가족을 잃은 충격과 사고 원인을 밝히려는 생각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어요. 나중에 알고 너무 고마웠지요. 한편으론, 울면 운다고, 웃으면 웃는다고. 밥은 넘어가냐 등 원망어린 이웃의 시선에 상처를 받기도 했어요.” 올림픽기념관에 멈춰선 전씨의 기억이다.
2014년 가을 방한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기증한 목련나무 잭슨. |
발걸음은 단원고에 다시 멈췄다. 교정은 그대로였지만, 아이들이 등교하던 오르막길 바닥에 그려있던 노란 리본도, 나무에서 물결치던 노란 리본도 사라지고 없었다. 당시 근무했던 선생님들도 모두 떠났다. 하지만, 2014년 가을 방한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있던 목련 묘목을 기증해 단원고에 심은 ‘잭슨’의 성장은 눈부셨다. 높이 50㎝에 불과했던 잭슨은 이제 2.5m까지 컸다. 매년 봄, 잊지 않고 꽃망울을 피운다고 한다. ‘노란 고래의 꿈’ 추모 조형물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운동장을 바라보던 전씨는 수학여행을 떠나던 그 날을 회상했다. “수학여행 떠나는 버스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었어요. 들뜬 아이들에게 잘 다녀오라고, 좋은 추억 쌓고 오라고 보냈는데…. 무심코 지나쳤던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인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밤마다 운동장을 찾아 대성통곡하던 유족들이 있었는데, 당시 주변에서 민원도 많이 들어와서 출입을 막기도 했어요.”
단원고 인근 고잔동 주민들이 학생들의 등하굣길에 만든 ‘소중한 생명’ |
고잔동 마을주민들이 만든 단원고 주변 ‘소중한 생명길’에는 벽화가 걸려있었다. 당시 ‘한 집 걸로 한 집이 초상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피해가 컷던 마을도 치유의 길로 한걸음 내닫는 모습이었다. 주택가 허름한 상가건물 3층에 있는 4·16기억전시관은 고요했다. 천장에 있는 등 안에는 싸늘한 주검과 함께 건져올려진 수학여행경비 현금 1만원도, 만 18살을 넘기지 못한 희생자에게 만들어준 명예주민등록증, 버킷리스트 등도 들어 있었다. “천장에 있는 등은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를 포함해 305명의 기억함이 있어요. 희생자들의 꿈과 미래, 진실에 이르는 모든 순간을 비춰 결코 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의미기도 합니다.” 도보 순례에 빠짐없이 참여한 또 다른 해설사 고 한고운양의 어머니 윤명순씨가 말하는 기억관의 의미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의 기록은 기억하기 위한 수단이자 잊지 않으려는 안간힘이었다.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던 화랑유원지에는 현재 희생자 추모공간인 4.16생명안전공원 조성공사가 한창이었다. 내년 봄 세월호 13주기에 개관을 희망하며 순례의 시작이자 종착지인 기억교실로 다시 향했다. 도보 순례길에는 아직도 ‘세월호 납골당 반대’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단원고 유족 중에는 아직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분들도 많아요.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그 마지막 순간까지 내려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전씨 역시 경빈군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다. 세월호 유족들은 온갖 거짓과 선동, 방해의 벽에 부딪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투사됐고, 오늘도 끈질기게 그 싸움을 이어간다.
글·사진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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