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 내란특검의 사형 구형 직후 웃음 띤 얼굴로 주위를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중계영상 갈무리 |
손원제 | 논설위원
지난 한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 구형과 첫 유죄 선고가 잇따라 내려졌다. 재판 영상을 돌려 보다가 문득 내란·탄핵이 없었다면 지금도 윤 대통령 임기가 계속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친김에 윤 전 대통령의 정상 임기가 언제까지일지도 계산해봤다. 2022년 5월10일에 취임했으니, 맙소사! 아직도 2027년 5월9일까진 1년 하고도 4개월이 더 남았더랬다.
나라가 흥하는 데는 수세대에 걸친 노고와 분투가 필요하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라가 쇠하는 건 상대적으로 짧은 순간에도 가능하다. 무능하고 무도한 최고권력자가 제멋대로 국정을 주무른다면 말이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윤석열 정권을 통해 똑똑히 상기하지 않았나.
윤 정권 출범 2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위는 날개 없는 추락을 겪었다. 초격차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 사상 최초, 사상 최대로 연구개발(R&D) 예산을 깎았고, 수시로 ‘입틀막’ 폭력이 벌어졌다. 권부의 사치와 부패는 극에 달했다. 그 결과 1년11개월 만의 총선에서 역사적 참패를 기록하며 국민의 심판을 받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흑화했다. 측근 장군들을 수시로 안가와 관저에 불러 부어라 마셔라 하며 친위 쿠데타를 모의했다. 국민의 뜻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자신의 망상에 맞춰 한 방에 현실을 뒤집으려 했다.
스스로 자폭 버튼을 누른 결과 윤 정권의 임기가 2년가량 단축된 건 부수적 행운이다. 그러기까지 6개월여 국정 공백을 겪어야 했지만, 무능과 전횡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만으로도 더 큰 퇴행을 막는 효과는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집권 이후 가시화한 세계 질서의 격동을 새 정부와 함께 헤쳐나갈 수 있게 된 건 크나큰 다행이다. 무능한데다 편파적이기까지 한 인솔자가 여태 이 나라를 끌고 가고 있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이 타이밍의 절묘함을 떠올리면 윤 정권 2년 반의 파행에 시달리고서도 나라의 운이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하게 된다. 만약 내란이 성공하거나 장기화했다면 민주주의 선진국 대한민국의 성공 신화는 막을 내리고 참혹한 폭정과 항거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을지 모른다. 혹은 무슨 이유에서라도 내란을 미뤘더라면 윤의 몰락도 늦춰졌을 가능성이 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오직 내란 실패라는 한가지 경로에서만 가능한 리더십의 조기 교체가 현실화한 상황은 헤겔이 말한 이성의 간지를 저절로 떠올리게 한다. 물론 12·3 내란의 밤 국회 앞으로 달려온 시민들과 계엄군 진입을 온몸으로 막은 국회 보좌진·당직자들의 결연한 저항, 국회 앞을 환하게 밝힌 응원봉의 물결과 한남동 관저 앞을 하얗게 물들였던 키세스단의 열정이 있었기에 망상적 계엄 선포가 새 정부 출범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야말로 이성의 간지가 역사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라 할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범죄는 요즘 자주 쓰는 말로 ‘휴먼 에러’이자 ‘시스템 에러’다. 궁지에 몰린 모든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에 나서진 않는다. 따라서 망상에 빠져 군대를 동원하고 나중에 경호처를 사유화해 체포에 극렬 저항한 행위 자체는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휴먼 에러의 성격이 짙다. 동시에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몰아주고 특권의 갑옷을 씌워 명백하고 중대한 잘못조차 제때 제대로 책임을 지우기 어렵게 만든 시스템의 결함이 휴먼 에러의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간과해선 안 된다. 결국 휴먼 에러 재발을 막기 위해선 개인에 대한 철저한 단죄와 시스템 정비가 모두 필요하다.
내란 관련 재판 1심이 거의 마무리돼가는 지금은 단죄의 시간이다. 지난주 사형 구형 순간 윤 전 대통령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래봐야 실제 사형이 집행되진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한번 풀어준 지귀연 재판부에 대해서도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반면, 체포 방해 선고 때는 기립한 채 착잡한 낯빛으로 주문을 들었다. 내란 수사의 정당성을 인정한 선고 이유를 들으며 뒤늦은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온 것일지 모른다. 다음달 내란 본재판에선 한층 엄중한 선고로 아예 망상에서 깨어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쿠데타를 꿈꾸는 대통령이 나오지 않게 된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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