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
이대한 |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교수
“야, 너한테 지금 천억이 생기면 뭐 할 거야?”
지난해 연말, 대학 시절 학보사에서 함께 숱한 밤을 새우던 동무들과 송년회 자리였다. 꿈 많은 대학생이던 우리는 어느덧 불혹을 앞두거나 갓 지나친 애 아빠들이 되어 있었다. 아저씨가 되어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 질문의 연장선에서, 우리 중 가장 연장자인 형이 내게 던진 질문이 바로 ‘천억’의 용처였다.
천억이라. 계좌에 ‘100,000,000,000’이라는 숫자가 찍혔다고 상상해 보았다.
“저는… 그냥 지금이랑 똑같이 살 것 같은데요?”
곰곰이 생각해 봐도 내 삶이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별로 바꾸고 싶은 게 없었다.
“뭐 천억이 생긴다면 그 돈으로 지금 하고 있는 연구들, 연구비 스트레스 안 받고 하면서 살 것 같긴 하네요.”
술기운 속에 오간 대화였지만 여운은 오래 이어졌다. 술이 깬 뒤에 다시 생각해도, 나는 여전히 같은 결론에 도착했다. 내가 물욕이 없는 사람인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연구비 스트레스를 제외하고는 지금의 삶이 충분히 행복하다는 방증 같았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까? 첫째는 당연히 가족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한 인간으로서 내가 누리는 가장 큰 행복이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천억 앞에서도 바꾸고 싶지 않은 내 행복의 원천이 바로 나의 ‘연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삶이 크게 변화하면 정확히 무엇이 바뀌는가. 삶의 풍경이 바뀌고, 그 속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이 바뀐다. 천억이 생긴다 하더라도 삶의 풍경을 별로 바꾸고 싶지 않다고 느꼈던 건, 지금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바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이야 어떤 풍경에서도 함께하겠지만, 내가 지키고 싶은 풍경 속 사람들 중 가장 먼저 떠오른 이들이 연구실 식구들이었다.
3년 전, 성균관대에 부임해 연구실을 연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식구들이 많이 불어났다. 대학원생 제자들이 벌써 열명 가까이 되고, 함께하는 박사님들과 인턴들까지 합치면 열다섯명이 훌쩍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
스위스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다 모교인 스위스 바젤대로 돌아온 알렉스 시어 교수님과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아름다운 레만 호숫가를 산책하며, 곧 새로운 연구실을 시작할 젊은 조교수에게 줄 수 있는 조언을 부탁드렸다. 시어 교수님은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좋은 사람들을 모으는 게 가장 중요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시어 교수님이 말한 그 좋은 사람들이 큰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모여들었다. 진화생물학이 한국에서 생물학 분야 중에서도 비주류 소수 학문임을 생각하면 더더욱 감사한 일이다. 대부분의 연구가 당장의 경제적 쓸모가 명확하지 않은 기초과학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연구비를 수주할 기회도 많지 않고, 학생들 입장에서는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전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지’라는 근원적 질문을 탐색하는 이 학문은 나뿐 아니라 적지 않은 젊은 학생들을 매료시켜 왔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가 될 이 ‘씨앗’들이 싹을 틔울 수 있는 땅은 국내 대학에 많지 않다. 내가 귀국하여 작은 땅을 일구기 시작하자, 자신이 뿌리내릴 땅을 찾던 귀한 씨앗들이 꾸준히 전국 곳곳에서, 용케도 그리고 고맙게도 우리 연구실을 찾아와 착지했다.
처음에는 사명감이 더 컸다. 순수한 씨앗들이 싹을 잘 틔울 수 있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씨앗들이 각양각색인 만큼, 각자에게 맞는 돌봄을 제공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런데 이제는 기쁨이 더 크다. 처음 뿌리를 내린 제자들이 어느덧 잎을 내고, 그 잎으로 스스로 광합성을 하고, 그 힘으로 더 많은 잎을 내고 가지를 뻗으며 각자의 모습으로 왕성하게 성장해 나가고 있다. 그렇게 씨앗을 보며 내가 꿈꾸던 씨앗의 미래가 실현되어 나가는 걸 지켜보는 경험은 정말 특별하고 뭉클하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작은 씨앗들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저마다 성실하게 자라나 제각기 나무가 되고, 함께 호기심의 숲을 이룬다. 그 숲에 많은 생명이 깃든다. 그런 풍경을 일구는 일, 그런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일을 나는 천억과도 맞바꾸지 않을 것이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