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크리처물(경성 크리처), 마블 작품(더 마블스), 강렬한 장르를 연달아 지나왔다. 이번엔 힘을 쫙 뺐다. 정공법 멜로로 돌아왔다.
JTBC '경도를 기다리며'는 20살과 28살 두 차례 사귀었던 옛 연인 경도(박서준 분)와 지우(원지안 분)가 30대 후반에 다시 만나 펼치는 로맨스를 그렸다.
"내가 지금 제일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부담도 컸지만, 정말 후회 없이 다 쏟아냈어요." (박서준)
'디스패치'가 최근 배우 박서준을 만났다. 왜 지금 이 이야기였는지, 힘을 빼고 돌아온 이유를 들었다.
◆ 경도의 18년
박서준은 '로코장인'으로 불린다.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 이후 7년 만의 로맨스 복귀다. 그는 "작품 선택 기준은 제 나이에 맞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 작품은 지금 내 나이에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한 인물의 18년을 따라가며 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잔잔해 보이지만, 도전이었다. 그는 극 중 20살부터 38살까지의 경도를 직접 연기했다. 제작진은 초반에 아역을 쓰려했지만, 박서준이 직접 연기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시간대가 왔다 갔다 하는 구조다. 얼굴이 갑자기 달라지면 시청자들의 몰입이 깨질 것 같았다"며 "외적으로 가능할까 걱정도 됐지만, 모두 겪어본 시절이었기에 자신 있었다"고 전했다.
"스무 살 때의 저를 떠올려봤어요. 말투와 목소리가 지금과는 확실히 달랐죠. 저만 느낄 수 있는 디테일일 수도 있지만, 그런 세세한 차이를 쌓아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38살의 경도를 위해선 품이 큰 정장 4벌을 맞췄다. 그는 "경도의 키워드는 '한결같음'이었다. 연도마다 옷 핏이 바뀌면 그 느낌이 흐트러질 것 같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 경도의 순애보
경도는 18년 동안 한 사람만 바라본다. 그만큼 감정신의 밀도도 높다. 박서준은 "보통 드라마를 찍다 보면 큼지막한 감정신이 3번 정도 있다. 이번 작품은 계속 있었다"고 떠올렸다.
"오히려 액션신보다 부담이 컸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더니 탈수가 되는 것처럼 지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힘을 주는 대신 그냥 '말을 하자'고 마음 먹었어요."
감정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그는 "예전엔 감정을 소모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엔 소비하는 것이라 생각해 봤다. 쓰고 나면 다시 잘 채워보자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니까 부담이 안 되고, 오히려 촬영이 기다려졌어요. 집중은 똑같이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죠. 현장의 공기가 주는 느낌을 살려서 해보고 싶었습니다."
경도에게 깊이 공감한 순간도 많았다. 특히 경도가 재벌 2세인 지우와 현실의 격차를 느끼는 신들은, 이 작품을 선택하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형들한테 돈을 빌려서 돈가스를 사주는 신이 있잖아요. 대한민국 남자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상황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형편은 안 되지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 그 신이 대본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만든 계기였어요."
◆ 경도의 지우
원지안이 경도의 첫사랑 '지우'를 연기했다. 두 사람의 실제 나이 차는 11살. 동갑내기 설정을 소화해야 했던 만큼 부담도 있었다.
그는 "처음엔 나이 차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며 "오히려 차분해서 과거와 현재의 지우를 잘 표현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원지안에게는 첫 장편 주연작이었다. 박서준은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저도 처음엔 긴 호흡이 쉽지 않았다. 버티는 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고 전했다.
"몇 개월을 찍다 보면 잘될 때도 있고 안 풀릴 때도 있고, 왔다 갔다 해요. 그럼에도 평균 이상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방영 전 두 사람의 나이 차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방영 후에는 "그림체가 비슷하다"는 호평으로 뒤바뀌었다.
박서준은 "처음엔 몰랐는데, 감독님이 케미가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며 "로맨스 장르에선 너무 중요한 부분이다 보니 다행이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 박서준을 기다리며
박서준은 '열일'의 아이콘이다. 데뷔 이후 쉬지 않고 달려왔다. 한때는 1년간 번아웃으로 고생한 시기도 있었다. 술로 하루하루를 버틴 시기도 있었다.
그는 "극 중 경도가 알콜릭을 겪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공감이 많이 됐다. 저도 그때 술로 많이 달랬다. 그래야 그 무게가 내려가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경도가 '답답해서 마셨어. 걸어도 보고 뛰어도 봤는데 어떻게 해도 안 돼서 마셨다'는 대사가 있어요. 살아보려고 몸부림친 모습이 공감됐어요. 결국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 같아요."
'진짜 재밌어서 하는 게 맞나', '계속할 수 있는 일일까'. 반복되던 질문도 이제 마침표를 찍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즐거움으로 내일의 박서준을 기다리는 중이다.
"지금은 에너지도 너무 좋고, 마인드가 달라졌어요. 예전엔 쫓기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뭐든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도전을 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어릴 때 못 해봤던 누아르도 해보고 싶고요. 앞으로도 제게 맞는 선택을 하면서 쉬지 않고 좋은 작품으로 뵙고 싶습니다."
<사진제공=어썸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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