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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실현·자기 연민 버려야 길이 보인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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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실현·자기 연민 버려야 길이 보인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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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의 자서전 ‘마음의 진보’의 원제는 ‘나선형 계단’으로, 아무리 올라가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씩 위를 향해 나아가는 암스트롱 자신의 삶을 상징한다. 스페인 북동부 나바라의 올리테성에서 한 여성이 나선형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카렌 암스트롱의 자서전 ‘마음의 진보’의 원제는 ‘나선형 계단’으로, 아무리 올라가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씩 위를 향해 나아가는 암스트롱 자신의 삶을 상징한다. 스페인 북동부 나바라의 올리테성에서 한 여성이 나선형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김희경의 에이징북



최근 지인들과의 신년 모임에서 한 사람이 나이 들수록 점점 더 ‘소명’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꺼냈다. 거창한 사명이나 목적으로서의 소명이 아니라 ‘의미 있는 나의 길’이라는 뜻에서다. 전부 중년인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삶의 유한함을 체감하는 나이가 되면 종종 자기 삶의 의미를 묻게 된다.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과연 나의 길을 가고 있는지, 답이 없는 질문들만 주고받다 돌아온 밤, 평생에 걸쳐 자신의 길을 찾아 분투한 사람의 책을 다시 펼쳤다.



세계적 종교사상가 카렌 암스트롱이 예순의 나이에 펴낸 자서전 ‘마음의 진보’는 끊임없이 눈앞에서 문이 쾅쾅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무너졌던 한 인간이 어떻게 자기만의 길을 찾아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정식으로 종교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암스트롱은 ‘신의 역사’ ‘축의 시대’ 등의 저서로 종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그 성취의 이면에는 수녀원 생활 뒤 겪은 환속의 고통, 학문적 실패, 투병의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나선형 계단에 빗대어 회고한다. 아무리 올라가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씩 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나선형 계단’은 이 책의 원제다.



암스트롱은 또래들이 로큰롤 음악에 빠져들던 열일곱살에 신비를 꿈꾸며 수녀원에 갔으나 절대복종을 요구하는 생활을 견디지 못했고, 7년 만에 돌아온 세상은 그에게 낯설기만 했다. 타인과 신체 접촉조차 꺼리는 메마른 영혼, 비틀스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모자란 인간’이 된 듯한 열패감에 시달렸다.



마음의 진보 l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2025)

마음의 진보 l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2025)


사람을 괴롭히는 큰 고통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다.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영문학을 전공해 옥스퍼드대학을 수석 졸업했지만, 박사학위 논문 심사에서 탈락했다. 측두엽 간질로 잦은 졸도를 겪었고, 위축된 상태로 6년간 교사로 일하다 권고사직으로 그만뒀다. 수녀원 생활을 다룬 책을 쓴 뒤로는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나 수익성 문제로 중단됐다. “다른 사람은 인생을 잘도 헤쳐나가면서 앞으로 쑥쑥 나가는데” 그는 번번이 주류 사회의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20년간 계속 길을 잃고 헤맸던 세월을 그는 “황무지에 나앉아 있었다”고 표현한다. 신화에서 황무지는 “사회의 인습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남들이 기대하는 행동만 하면서 진정성 없는 삶을 살아가는 곳”이다. 그는 남의 꽁무니를 쫓아 수녀원에 갔다고 자책했고 환속한 뒤에는 “남들과 비슷해지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교수나 교사, 방송인처럼 ‘남부럽지 않은 일’을 하며 살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신화에서 남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번번이 길을 잃는다. 영웅은 낡은 세상과 길을 버리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남의 괴물과 싸울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괴물과 싸우고 자기 시련을 감내해야만 한다. 암스트롱 역시 “이 사람의 재주와 저 사람의 그릇”을 탐내며 아등바등하지 말고 자기 힘으로 길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에게는 그 길이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신에 관한 책’을 쓰는 일이었다. 인생이 끝장난 듯한 절망 속에서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을 갈라놓는 적개심 말고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차라리 여행서를 쓰라고 말렸지만, 그의 무의식 어딘가에서는 “이제 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신과 나 사이에 아직 깨끗이 정리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똬리를 틀었다. 그 마음을 따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기로 작정하고 그는 “어둡고 길도 나지 않은 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어떤 일을 의미 있다고 느끼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카렌 암스트롱에게는 그것이 신학 공부였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정치나 법 또는 육아, 연애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좇는다고 해서 꼭 결실을 거두리란 보장도 없다. 성공의 예감으로 보답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좇는다면 그것은 투자이지 의미가 아니다.



암스트롱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넓고 근사한 계단”에 대한 열망을 버린 뒤 자신의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여정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의 궁극적 성취보다는 그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주제를 좇아 타 문화를 이해하려 애쓰며 겪었던 초월과 경이의 체험이었다.



다양한 종교 전통을 공부하면서 그가 얻은 결론은 “자아에서 벗어나려는 일관된 노력”의 중요성이다. 나를 지키려는 것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뿌리내린 사람의 욕망이지만 역설적으로 “나를 버려야 평소의 경험을 뛰어넘는 다른 가능성에 눈뜨면서 창조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비대한 자아다. 자아가 팽창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비대한 자아다. 자아가 팽창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도 비대한 자아다. 자아가 팽창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다. 자신이 옳다는 강력한 확신, 뜻밖의 불운 앞에서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절규하는 자기 연민 모두 비대해진 자아의 증상이다.



김희경 작가, 전 여성가족부 차관

김희경 작가, 전 여성가족부 차관


‘마음의 진보’를 다시 읽으며 새삼 확인한 건 ‘자기실현’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나’를 중심에 놓고 자기를 증명하려 애쓸수록 자아는 더 견고한 감옥이 된다.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이든 자기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자아를 비워낸 자리에 세상에 대한 경이와 타인에 대한 공감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나의 길’ 걷기도 가능해진다는 게 이 책이 가르쳐준 삶의 방법이다.



김희경 작가,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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