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우선 이 칼럼의 제목은 '과장'일지언정 '조롱'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7세기 영국에서 토리당은 구세력(지주+귀족)의 정당이었다. 휘그당은 신진 세력(도시 자본가+도시 노동자)의 정당을 자처했다. 당시 영국의 선거구제는 인구가 아니라 지역으로 나뉘어졌다. 즉 유권자가 10명인 지역에서도 의원 1명(주로 그 지역의 지주 귀족), 1000명인 지역(주로 산업 도시의 자유주의자)에서도 의원이 1명이었다. 실제 17세기 초 영국 올드새럼이라는 곳은 유권자 수가 11명이었는데 의석은 2석이었다. 토리는 이 기형적 선거제도를 유지시키며 의석을 확보해 지주의 이익을 지켰다. 이미 세상에선 자본주의 혁명과 계급 구조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 불균형을 깬 것은 신진 자본가를 등에 업은 휘그의 투쟁도, 노동자의 혁명도 아니었다. 토리당 총수 로버트 필(1788~1850)은 지주를 보호하기 위해 수입 곡물에 높은 관세를 매기던 곡물법 폐지를 관철함으로써 주요 지지층인 지주와 귀족 진영에 폭탄을 투하했다. 토리당은 극심하게 분열됐고 지주들은 몰락했다. 당시 '자해'라고 봤던 곡물법 폐지 파동을 계기로 다 죽어가던 토리당은 지주 계급과 산업 자본가의 이익이 합치된다는 걸 간파하고, 당명을 보수당으로 바꾼다. 토리가 무너지는 걸 지켜보던 휘그의 '리버럴' 샌님들이 기뻐한 것도 잠시였다. 지주와 귀족의 힘은 약해졌지만, 도시 자본가와 도시 노동자를 함께 품고 가려던 휘그당은 지지층의 분열과 갈등으로 망했다.
이것이 자본가와 노동계급이 분화하며 보수당(지주+자본가)과 자유당(노동자)으로 재편된 배경이고, 보수의 탄생 설화다. 세상의 변화를 감지한 발빠른 보수당의 쇄신 덕이다.
지금 한국 보수당의 태도에선 세상을 읽어내려는 몸부림도, 그들의 싸움에선 세상을 이끌어갈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개혁은 없고 남탓 뿐이며, 낡은 이념을 머리에 이고 이기적 욕망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국민의힘의 내홍 속 두 개의 파벌은 뭘 위해 싸우는가.
먼저 주류 '신당권파'들. 이들의 이념적 아버지는 여전히 윤석열이다. 윤석열의 계엄은 방법이 잘못됐을 뿐, 그 본질적 의미(계몽)는 여전히 옳다고 믿는 세력이 당을 장악했다. 이들은 이념이 만들어낸 음모론을 따라간다. 체제 전쟁이 이미 끝난 21세기에 이들은 반국가 세력 음모론을 믿고, 그들이 선거를 왜곡해 나라를 집어삼키려 한다는 이념적 망상에 빠져 있다. 장동혁은 이런 철지난 망상을 붙잡고 있는 '윤어게인'의 도구일 뿐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이 땅에 존재한 어떤 보수 정당(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도 이렇게 극단적 이념 세력이 당권을 장악한 전례가 없다.
한동훈 제명을 주도한 '신당권파' 면면은 사실 보수 정치 역사에서 '이단아'들에 가깝다. 1.5선의 '초짜 대표' 장동혁이 그렇고, '당원 게시판 사태'에 불을 지핀 장예찬이 그렇다. 최고위원 김민수나 '인증 패널' 박민영은 장동혁 체제의 무의식이 가진 가장 공격적인 입안의 혀다. 80년 가까운 보수 정당의 정통성과 별로 상관이 없는 인물들이다. 그러니 국민의힘 원로 모임을 '평균 91세의 아집'이라고 폄훼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여기서 우린 70년대생 당대표와 80년생 '인증 패널들'의 생물학적 나이가 쇄신이나 개혁과 하등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다음 한동훈 세력.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동훈의 패착은 보수의 위기를 '비전'이 아니라 '캐릭터'로 돌파하려고 한 것에서 시작한다. 당내 권력 다툼을 '인정 투쟁'과 '자존심 싸움' 정도로 접근한다. 보수 정치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증오에 기반한 골육상쟁의 '순수한 권력 투쟁'이 어떻게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역대 보수 정당엔 그나마 아젠다가 있었고 나름의 비전을 갖춘 인물들이 있었다. 노태우 정부 때는 북방외교를 설계한 '황태자' 박철언이 있었다. 김영삼은 남재희, 윤여준, 박세일 등을 기용해 '신한국'과 '세계화'라는 큰 틀의 국가 디자인 플랜을 세웠다. 야당으로 몰락한 노무현 정권 시절 박세일은 '선진화' 담론을 제안하며 빈약한 보수의 철학을 메웠다. 이명박도 최소한 '상징적 국정 철학'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박근혜는 진보의 의제인 '경제 민주화'를 품고 당선됐다. (하지만 박근혜는 역주행했고, 그 끝은 역대 두 번째로 심각했다.)
보수 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임일지언정, 민주당 내부엔 이른바 동맹파, 자주파의 노선 투쟁이라도 있다. 당 내에서도 강경파와 온건파들이 최소한 정책을 두고 싸운다. 그런데 국민의힘엔 무슨 노선 투쟁이 있었나. 윤정부 시절 당대표를 두고 맞선 김기현과 나경원이 노선 투쟁을 했나? 명품 가방과 사이비 종교 세력 말고 기억에 남는 게 있는가? 장동혁과 김문수가 당대표 경선에서 무슨 노선 투쟁을 했나? 지금 장동혁과, 한동훈이 '당원 게시판 문제'를 두고 '노선 투쟁'을 하고 있나? 여전히 '친윤'과 '친한'으로 싸우면서, 표는 아스팔트 극우 세력에 외주를 주고 있는 것이 현재 이 정당의 적나라한 실체다.
당권파와 한동훈계가 무규칙 격투기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이, 극우 보수의 고성국 같은 책사가 당원으로 들어와 '자유 우파 정당 선거 연대론'을 주장하고 있다. 고성국이 '기초단체장 30개를 주자'며 언급한 이른바 '자유 우파 정당'들 중 제대로 된 정당들이 있는가. 자유통일당, 자유민주당, 우리공화당, 그리고 자유와혁신당은 각각 전광훈 목사, 고영주 변호사, 조원진 전 의원, 황교안 전 총리 등 극우 인사들이 이끄는 정당들이다. 이들은 이른바 '좌파'의 전략과 '저항'의 전통을 왜곡되게 배워 권력 투쟁만을 위해 떠도는 이들이다. '윤어게인' 세력이 상정하는 '좌파'의 정체는 상상의 산물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전교조 세뇌 교육을 받은 뿔달린 공산주의자'라는 건 스스로 만든 판타지다. 가치도 없고, 비전도 없는 것까진 좋은데, 아예 대한민국을 50년 쯤 뒤로 후퇴시킬까봐 두렵다.
17세기 영국의 보수당은 시대의 변화를 포착해 냈다. '지주와 산업 자본가의 이익은 같을 수 있다'는 통찰력으로 '내부의 모순'을 파괴적 방식으로 도려내면서 개혁에 돌입했다. 그 결과 '자해적 조치'라 비난받던 곡물법 폐지로 몰락한 건 '지주의 정당'인 토리가 아니고, '지주와 도시민(산업자본가와 노동자)'의 낡은 구도로 세상을 보려던 휘그였다. 곡물법 폐지는 휘그를 지지하던 도시 자본가들이 '보수당'으로 이름을 바꾼 토리를 지지하도록 한 유인이 됐다. 이 개혁이 민주주의 역사상 최초의 '유권자 지형 분석'이었다고 불러도 좋겠다.
눈 앞의 표를 쫓아 '윤어게인'을 따라 외치지 말고, 눈 앞의 표를 버리는 결단을 해야 보수가 산다. '반국가 세력 척결'과 '부정선거론' 같은 질병적 이념을 버리고 중도로 확장해 극우를 오른쪽 끄트머리로 완전히 밀어내야 한다. 진보의 의제를 집어들어 진보를 당황케 하고, 지금 '진보를 지지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수로 유인해 낼 수 있는 파격적 비전이 있어야 한다. 보수가 '평등'을 말하고, 보수가 '평화'를 말하는 게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중도는 허상"이고 "표가 안 된다"고 말하는 당내의 교활하고 무능한 선거 기술자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어차피 <조선일보>조차 '장동혁호'로는 '선거 망한다'고 하는데, 망해가는 판국에 뭐가 두려운지 모르겠다. '보수 정당' 민주당은 되는데, '진보 정당' 국민의힘은 왜 안 되겠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오른쪽)와 신동욱 최고위원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귀엣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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