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13일 워싱턴 DC에서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산업부 |
온라인플랫폼법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우리 정부의 규제·입법을 놓고 미 조야(朝野)에서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6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은 한국 역사상 유례없는(unprecedented) 사건”이라며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이 정도 규모 데이터 유출 사고를 일으켜 미국 시민의 80%에 해당하는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하면 어떻게 대응할지 상상해보라”고 했다. 한국의 디지털 플랫폼 규제의 적용 대상이 주로 한국 중개 플랫폼이고, 유럽연합(EU) 모델을 따르고 있다는 미국 측 인식도 ‘오해’라고 반박하며 “양측의 입장을 듣고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여 본부장은 이날 공개된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기업이 불공정하게 표적이 되거나 국내(한국) 기업이나 다른 외국 기업에 비해 차별을 받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디지털 규제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이 통상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여 본부장은 지난 11일부터 나흘 동안 워싱턴 DC에 머물며 카운터 파트인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상·하원 의원,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 등과 두루 만남을 가졌다. 트럼프 정부는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에 극도로 민감한 편인데, 최근 미 의회·국무부 등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플랫폼법을 잇따라 비판했다.
한미는 지난 11월 발표한 팩트시트(fact sheet·공동 설명자료)를 보면 ‘미국 기업이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서 차별받지 않을 것’을 명시 했고 올해 후속 협상이 진행될 예정이다. 여 본부장은 “(협상에) 마감 기한은 없다”며 “중요한 것은 양국이 상호 이익을 위한 무역 협정을 실행하는 것이다. 제조업, 인공지능(AI), 디지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정한 상생 협력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정부의 규제가 EU의 디지털시장법(DMA)과는 차이가 있다며 “주로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고 온라인 플랫폼 중개 서비스 사업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법안 초안(草案)에 따르면 40개 적용 대상 플랫폼 중 32개가 한국 플랫폼이고 나머지는 미국, EU, 중국 기업”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하원 세입위원회 청문회에서 정보 유출 사태가 벌어진 쿠팡을 두둔하는 목소리가 공화·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나온 가운데, 여 본부장은 “약 3370만명의 매우 사적인 정보가 유출된 유례없는 사건”이라며 “유출된 데이터에 단순히 이름, 정보, 휴대폰 번호에 그치지 않고 아파트 출입 비밀번호까지 포함됐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 보호 및 개인정보 보호법을 보유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시민의 80%에 해당하는 개인 정보를 유출했다고 상상해보라. 어떻게 대응하겠냐”라고 했다. 여 본부장은 “우선 사실 관계를 철저히 규명해 사건 경위, 원인, 관련 법규 위반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며 “객관적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시정 조치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 고위 인사들은 현재 쿠팡의 ‘영업 정지’까지 거론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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