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5일 충남 천안시 한국기술교육대에서 열린 \'충남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냥 연합 정도 수준이 아니라 가능하면 대규모로 통합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2025년 12월5일 충남 천안 한국기술교육대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말이 시작이었다. 그 전까지는 광역단체 통합이 정치적 구호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여야가 경쟁적으로 대전·충남 통합 관련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특별법 통과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별다른 논의가 없던 광주·전남 통합 문제도 급부상했다. 2026년 1월2일 광주시장·전남도지사가 대통합 추진 공동선언문을 전격 발표했다. 행정통합 추진기획단을 출범시키며 ‘실행 단계’로 단숨에 도약했다.
마창진 통합 이후 창원 쏠림으로 ‘분균형’ 심화
이 대통령은 데드라인까지 제시했다.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에서 통합된 자치단체의 장을 뽑을 수 있게”(2025년 12월18일 더불어민주당 대전·충남 국회의원 간담회) 하자고 말한 것이다. 이에 여당에선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 전인 2026년 2월까지 행정통합 관련 특별법 제정을 완료하겠다는 일정표가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어 “수용 가능한 최대 범주에서 재정 및 자치 권한 특례”(2025년 12월18일)를 부여한다는 지원 방안을 밝혔고, “주민투표는 불필요한 소요를 만들 수 있어 시·도의회 의결 방식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해달라”(2026년 1월9일 광주·전남 지역 국회의원 간담회)며 통합 방식까지 직접 제시했다.
이런 상명하달식 속도전에서 빠진 것이 있다. ‘행정통합을 하면 과연 지역 주민의 삶이 나아질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와 비전, 그리고 제대로 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다.
“지금 논의에서 (대전·충남과 광주·전남이) 통합됐을 때 주민들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 통합되면 규모의 경제가 생겨서 경쟁력이 생길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전부다. 통합하면 특정 대도시 중심으로 (인구 등이) 몰리고 나머지 지역은 오히려 쇠퇴해 지역 내 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 주민들이 모여서 우려되는 점을 이야기하고 전문가들이 먼저 상당한 숙의를 해야 하는데, 정작 계속 그 땅에 살아야 하는 주민들은 다 빠지고 몇몇이서 이게 좋겠다고 결정하는 건 무책임하다.” 충남연구원장을 지낸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현 지역재단 상임이사)가 말했다.
역대 최대 규모인 2010년 경남 마산·창원·진해(창원특례시)의 통합 사례를 보면 통합 당시 108만 명이던 인구는 2025년 1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옛 창원 지역 중심부로의 쏠림 현상과 마산·진해의 공동화 현상 등 지역 내 불균형이 더욱 심화됐다. 2025년 7월 통합에 찬성했던 옛 마산시의회 의원들은 15년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마산시를 창원특례시에서 분리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른바 ‘빨대 효과’는 통합에 따른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다. 부산연구원이 낸 ‘부울경특별연합 및 행정통합 병행 추진 방안’(2023년 1월)을 보면 특별연합의 역기능으로 광역교통망 확충에 따라 경남의 서비스산업과 의료·교육 등이 부산으로 유출되면서 생활기반이 재편돼 지역소멸 위기가 가속화할 수 있고, (부산에서 거리가 먼) 서부 경남이 소외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제시됐다.
청주·청원 통합 인구 증가에서 눈여겨볼 점
통합으로 인구가 늘어난 곳도 있다. 충북 청주시·청원군 통합 사례다. 2014년 통합 당시 84만 명이던 인구가 2025년 기준 88만 명으로 늘어났다. 다만 에스케이(SK)하이닉스·엘지(LG)에너지솔루션 등 대기업들이 자리 잡은 오창·오송·옥산 지역의 인구는 늘어났지만, 나머지 옛 청원군 지역 인구는 모두 크게 줄었다. 하승수 농본(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청주·청원 통합으로 전체 인구가 늘어난 것도 통합만 해서 나온 효과라기보다는 (공장총량제 등) 수도권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대기업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생긴 효과”라며 “균형발전 효과를 위해선 먼저 수도권 일극 집중을 더욱 강화하는, 경기도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부터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이어 “효과가 입증 안 된데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행정통합을 시간에 쫓기듯 무리하게 추진하는 건 정치인들의 업적 쌓기 욕심 때문”이라며 “정부가 통합 성공 사례로 거론하는 청주·청원 통합도 주민투표로 결정됐다”고 덧붙였다. 임가혜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도 “새만금 지역에서 만들어진 재생에너지를 용인에 보내기 위해, 초고압 송전선로가 충남의 15개 지역 가운데 13개 지역을 통과한다”며 “전기를 생산하지도 쓰지도 않는데 위험부담만 떠안는 문제 제기에는 제대로 응답도 하지 않으면서, 통합만 되면 균형발전이 될 거라고 하니 앞뒤가 안 맞고 설득력도 없다”고 꼬집었다.
광역통합에 따라 아무리 ‘통 큰 지원’(2026년 1월9일 이재명 대통령)이 이뤄진다고 해도, 지금의 서울을 정점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가 쏠리는 상황에선 결국 핵심 이익이 수도권으로 되돌아가는 ‘줬던 사탕 되돌려 받기’ 현상이 벌어질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 큰 지원을 해도 관련 사업을 할 수 있는 큰 기업들은 서울에 적을 두고 있다. 지난 60년간 대기업을 정점으로 기업의 수직계열화 구조가 매우 단단해진 상황이다. 중소기업도 대기업에 납품하지 않으면 자생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 구조에선 지역에 대기업이 가도 마찬가지다. 혁신도시 사례에서도 확인됐지만 주말이 되면 많은 사람이 서울로 간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줘도 의료·교육·문화 등이 있는 서울로 그 돈이 리턴된다.” 황종규 동양대 교수(행정학)가 말했다.
수도권 인구는 2019년 2593만 명이 되면서 처음으로 비수도권(2592만 명)을 앞서 2025년 100만 명 이상 차이로 벌어졌다. 그런데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 차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2024년 3월 한국은행이 낸 ‘생산·소득·소비 측면에서 본 지역경제 현황’을 보면 수도권의 경제성장률 기여도는 2001~2014년 51.6%에서 2015~2022년 70.1%로 현격히 높아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5년 12월5일 충남 천안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충남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05 연합뉴스 |
대통령발 광역통합 ‘중앙 의존’ 높일 우려도 커
이번 이재명 대통령발 광역통합이 취지와 달리 오히려 중앙권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황종규 교수는 “중앙 중심의 수직계열화된 구조는 그대로 두면서 지역의 자생 전략을 가져가도록 지원하지 않고 ‘내 말 잘 들으면 돈과 권한을 더 줄게’라고 하는 건 중앙 의존을 더 높이는 신중앙집권주의”라며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에서 밝혔듯이 ‘지방일괄이양법’ 등을 통해 지방에 돌려줘야 할 것이다. 정의롭지도 않고 민주주의와도 맞지 않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박진도 교수도 “지역이 자기 기능과 역할을 중심으로 발전하도록 하지 않고 수도권 중심의 성장주의를 반복한 것이 지역을 지금의 모습으로 망친 원인”이라며 “광역통합은 수도권 중심의 성장주의를 지역에서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중앙정부가 노골적으로 나서서 밀어붙이면서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계적으로도 광역지방자치단체 간의 협력 관계 형성이 아닌 행정을 통합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일본의 경우 오사카부와 오사카시의 통합안이 추진됐지만 2020년 11월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다.
프랑스가 2014년 한국의 광역자치단체에 해당하는 레지옹 22개를 13개로 통합한 사례가 있다.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행정비용 감축과 효율성 향상을 위해 레지옹 감축을 발표했고, 1년 만에 레지옹 구획법을 공포한 뒤 다시 1년이 지난 2016년 1월부터 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급격한 통합은 부작용을 낳았다. 부경대 오창룡 교수의 ‘프랑스 초광역 행정개혁의 역설: 레지옹 통합의 제도적 한계와 시사점'(2025년 11월 게재) 논문을 보면 당시 행정통합으로 레지옹과 기초자치단체의 거리 간극이 커져 정책 과정에서 비효율성이 발생했고, 규모의 경제는 실현되지 않았다. 이런 부작용은 ‘지역 차원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개혁을 일방적으로 강행한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오 교수는 “프랑스 광역 행정통합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추진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 있었는데, 통합 효과를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하는 등 충분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한국과 프랑스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통합하면 다 좋다는 얘기는 말이 안 된다. 어떤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지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오 교수는 “부산만 해도 점점 낙후된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며 “지역 내 ‘이제 남아 있는 돌파구가 통합밖에 없지 않으냐’ ‘변화가 필요하다’ ‘뭐라도 해보자’라는 절박함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통합이 정말 필요하다면 주민투표 꼭 해야”
이런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행정통합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장을 위한 이재명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취지와 맞다”며 “주민 의견 수렴 부족과 주민투표 실시 필요성 등에 대해서는 시도가 주체가 돼야 할 문제이다보니 ‘논의하는 과정’이라는 원론적인 말씀을 드린다”고 해명했다. “이재명 정부의 진정성 자체는 의심하지 않아요. 지역이 너무 어려우니 뭐라도 해서 풀자는 (각 시도의) 절박함도 이해됩니다. 하지만 국정개혁 과제에서 밝힌 ‘5극3특’(수도·중부·호남·대경·동남권과 강원·전북·제주)은 광역연합 차원입니다. 그게 세계적 추세인 영국의 그레이터맨체스터나 일본의 간사이 광역연합과 비슷한 형태죠. 통합과는 다릅니다. 당장 광주광역시와 대전광역시가 없어지고 각 구만 남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통합이 정말 필요하다면 주민투표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지금보다 규모가 작은 제주특별자치도 출범도 주민투표(2005년 7월)로 결정했잖아요. 그래야 통합되더라도 발생할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황종규 교수가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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