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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반지의 유혹: 하이에크가 2026년의 ‘절대 권력’에게 묻다 [조원경의 현인들의 경제적 조언]

헤럴드경제 최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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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반지의 유혹: 하이에크가 2026년의 ‘절대 권력’에게 묻다 [조원경의 현인들의 경제적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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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지의 제왕』의 오프닝, 안개 가득한 중구(Middle-earth)를 배경으로 나즈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모든 것은 반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서사의 중심에는 타락한 마이아(천사적 존재)이자 암흑의 군주인 사우론(Sauron)이 있다. 그는 본래 질서와 공예를 사랑하던 존재였으나, 무질서를 참지 못하는 완벽주의와 모든 생명체를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하려는 오만에 사로잡혀 ‘절대반지’를 주조했다. 사우론에게 반지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분산된 세상의 모든 힘을 하나의 정점으로 모아, 자신의 계획 아래 세상을 일사불란하게 재편하려는 ‘절대적 통제권’의 결정체였다. 사우론의 거대한 눈이 비추는 감시와 예속의 서사는 21세기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와 2026년 1월의 세계 경제를 관통하는 섬뜩한 현실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트럼프의 상호 관세가 초래한 법적 혼돈, 시진핑의 1인 체제 아래 직면한 중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 에너지라는 자원을 권력화하여 세계를 위협하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모습, 그리고 국가의 경계를 넘어 디지털 영토의 지배자가 되려는 빅테크의 독점 속에서 사우론이 꿈꿨던 ‘절대반지’의 변종들을 목격하고 있다. 80여 년 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에서 경고했던 “선의와 질서로 포장된 계획적 통제가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는가”라는 질문은 2026년의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생존의 화두가 되었다.

트럼프의 관세권한은 절대권력의 화신인가?

새해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절대반지’ 니콜라스 마두로를 처단했다. 전면전 대신 제재와 압박, 동맹의 활용은 중간계에서 군대를 움직이기보다 반지의 힘을 차단하려는 전략과 닮아 있다. 마두로 정권 축출 일주일 후 베네수엘라 석유를 완전히 통제하겠다는 트럼프 의 구상은 현실화하고 있다.

다시, 2026년 초입, 세계 시장의 눈은 미 연방대법원으로 향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안보와 상호주의를 명분으로 휘두른 전방위적 보복 관세 권한에 대해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임박했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앞서 하급심 법원은 “대통령의 무제한적인 관세 부과는 헌법이 부여한 의회의 입법권 및 통상 조절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크며, 이는 권력 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위법적 조치”라며 행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법원이 어떤 법적 결론을 내리든, 시장은 이미 차가운 진실을 읽고 있다. 절대 권력의 화신이 된 트럼프는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관세라는 반지를 내려놓을 인물이 아니다. 그는 설령 사법적 제동이 걸리더라도 ‘국가 비상사태’ 선포나 행정명령을 교묘히 우회하며 기존의 법률 틀 안에서라도 자신의 관세 정책을 관철할 또 다른 통로를 찾아낼 것이다.

사우론이 요정들에게 반지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그들을 종속시켰듯,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라는 강력한 서사로 시장의 자율성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 한다. 하이에크는 경제적 통제가 결국 정치적 독재로 이어진다고 설파했다. 국가가 ‘보호’라는 명목으로 가격 기구에 개입하고 무역 장벽을 높이는 순간, 시장의 자생적 질서는 파괴되고 개인의 선택은 권력자의 계획 아래 종속된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단순한 무역 전략을 넘어, 시장이라는 유기체를 인위적으로 개조하려는 거대한 ‘계획주의’의 발현이자 견제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의 표상이다.

시진핑, 누구를 위한 공동부유였던가?

동양의 상황은 더욱 비극적인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시진핑 1인 체제 하의 중국은 절대 권력이 시장의 복수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를 증명하는 거대한 실험실이 되었다. 최근 중국 정부는 경기 침체가 심화되자 시장을 옥죄던 ‘공동부유’의 깃발을 잠시 내리고 민간 경제 활성화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하이에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본질적인 포기가 아니라 전술적인 후퇴에 불과하다. 사우론이 힘이 약해졌을 때 검은 탑 속으로 숨어들어 힘을 길렀듯, 중국의 권력은 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잠시 시장의 손을 빌릴 뿐, 국가 우선주의라는 ‘절대적 통제’의 의지까지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중국의 기술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뛰어난 기술력이 오직 국가의 통제와 감시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 데 우선적으로 배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이에크는 지식이 한 곳에 집중될 수 없다는 ‘지식의 문제’를 통해 중앙 집중화된 권력의 오만을 비판했다. 수억 명의 개인이 시장에서 주고받는 미세한 정보와 욕망을 한 명의 통치자나 소수의 관료가 완벽히 처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치명적인 자만이다. 중국은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의 배분이 시장의 효율성이 아닌 국가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루어지면서 경제 전반의 역동성이 식어가는 ‘국가 통제의 역설’에 빠졌다. 부동산 붕괴와 소비 위축은 기술의 정체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이 사라진 시장이 보내는 거부 반응이다.

푸틴, 종신 대통령을 꿈꾸는 절대반지의 화신인가?

북쪽의 거대한 동토에서도 또 다른 사우론의 눈이 번뜩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현대 자본주의의 혈맥인 ‘에너지’를 절대반지로 삼아 세계 경제의 질서를 흔들어왔다. 하이에크는 국가가 특정 자원의 공급을 독점하고 이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할 때, 시장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압살된다고 경고했다.

푸틴에게 천연가스와 석유는 단순한 수출 품목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종하지 않는 자들을 추위와 암흑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통제권’ 그 자체였다. 그는 에너지를 통해 얻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시장의 자생적 경쟁자들을 숙청하며 러시아를 거대한 ‘계획경제적 요새’로 탈바꿈시켰다. 하이에크가 묘사한 ‘노예의 길’은 푸틴의 러시아에서 가속화되었다. 경제적 자유가 사라진 자리에 민족주의라는 광기가 채워졌고, 이는 결국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비극적 전쟁으로 이어졌다. 푸틴의 사례는 권력이 시장의 자원을 독점했을 때, 그 힘이 어떻게 파괴적인 폭력으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보고서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서방의 제재가 이어지는 2026년 현재, 러시아 경제가 겪는 어려움은 사우론의 군대가 마지막에 마주했던 황폐한 모르도르의 풍경과 겹쳐진다. 에너지를 지렛대 삼아 전 세계를 예속시키려 했던 그의 시도는 결국 공급망의 다변화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장의 거대한 반격에 직면했다. 하이에크가 강조했듯, 인위적인 통제로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시도는 잠시 성공하는 듯 보이나 결국 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키는 파국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푸틴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스페이스 X, 통신의 절대반지일까?

이러한 국가 권력의 팽창 옆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사우론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기술 권력의 비대화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이제 단순한 민간 우주 기업을 넘어 글로벌 통신과 데이터 인프라를 장악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었다. 특히 2026년 예정된 스페이스X의 대규모 자금 조달과 상장 이슈는 한국의 전통적 통신 산업에 실존적인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

스타링크가 제공하는 저궤도 위성 통신망이 국경의 장벽을 허물고 개인의 단말기에 직접 연결될 때, 수십 년간 지상 기지국과 주파수 독점권에 기대어온 한국 통신사들의 성벽은 무용지물이 된다. 하이에크는 정부의 독점만큼이나 거대 기업의 독점이 초래할 강제를 경계했다. 머스크라는 개인이 우주 통신망이라는 인프라를 쥐고, 이를 암호화폐나 자체 결제 시스템과 결합하여 이른바 ‘화폐와 금융의 길목’까지 장악하려는 상황은 민간 자본이 국가 시스템을 압도하는 ‘디지털 절대반지’의 탄생을 의미한다. 사우론이 아홉 개의 반지를 인간 왕들에게 주어 나즈굴(반지의 망령)로 타락시켰듯, 플랫폼의 편리함과 기술적 우위에 길들여진 사용자들이 어느덧 그 시스템의 지분을 잃고 예속되어가는 과정은 하이에크가 우려했던 ‘부지불식간의 노예화’와 정확히 일치한다. 사용자들은 초기에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압도적인 효율성과 편리함에 환호하며 자발적으로 그 생태계에 편입된다. 하지만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플랫폼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개인의 경제 활동과 정보 습득의 통로를 독점하는 ‘보이지 않는 정부’로 군림한다.


하이에크는 이를 ‘사적 독점에 의한 강제’라 불렀다.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플랫폼 이탈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개인은 자신의 주권적 선택권을 행사하는 대신 시스템이 설계한 알고리즘의 유도에 순응하게 된다. 이는 물리적 폭력에 의한 굴복보다 훨씬 교묘하고 치명적이다. 결국, 기술적 우위에 대한 경외심이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킬 때, 우리는 스스로 노예의 길로 이어지는 옥토를 개척하는 셈이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주는 조언은 2026년의 혼돈 속에서 더욱 선명한 이정표가 된다. 그는 “자유의 적은 사악한 의도를 가진 자들뿐만 아니라, 선한 의도를 가졌으나 그 결과에 무지한 계획가들”이라고 일갈했다.

관세를 통해 자국 민생을 살리겠다는 트럼프나, 부의 재분배를 통해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시진핑,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푸틴, 그리고 기술 혁신으로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머스크 모두 각자의 명분을 가진다. 그러나 그 명분이 ‘견제받지 않는 독점적 권력’과 결합할 때, 시장의 자생적 질서는 무너지고 개인은 도구가 된다. 『반지의 제왕』에서 평범한 호빗 프로도가 반지를 포기하고 파괴하기 위해 목숨을 건 이유는, 권력이 주는 달콤한 효율성보다 자유가 주는 고귀한 불편함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프로도에게는 반지를 휘둘러 세상을 고칠 능력이 없었지만, 그 반지를 거부함으로써 세상을 구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 서사에 매몰되지 않는 냉철한 개인의 안목이다. 스페이스X의 상장이 한국 산업에 주는 경고는 단순히 기술적 격차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거대 플랫폼이나 국가 권력이 짜놓은 판 위에서 단순한 ‘사용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독점에 맞서 시장의 경쟁 질서를 회복할 ‘지분권자’가 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하이에크는 자유로운 시장만이 분산된 정보를 가장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개인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간달프는 원정대에게 말했다. “우리가 결정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절대 권력의 유혹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보이지 않는 통제의 끈이 일상을 조여오는 2026년.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통제의 편리함이 아니라 경쟁의 불편함 속에서도 피어나는 자유의 가치다. 노예의 길로 이어지는 옥토를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자만이 절대반지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지켜낼 수 있다. 부(富)는 결국 숫자의 기록이 아니라, 권력에 저항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의 크기이기 때문이다.

존 로널드 루엘 톨킨

『반지의 제왕』의 작가 존 로널드 루엘 톨킨(1892.1 ~ 1973. 9)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블룸폰테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언어학자이자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로서 평생을 고대 언어 연구와 자신만의 신화 체계를 구축하는 데 바쳤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던 그는, 거대 권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이러한 그의 배경은 『반지의 제왕』 속에서 절대 권력에 저항하는 평범한 개인들의 연대와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승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