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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물열전] ⑶첫 심장이식 수술 남아공 바르나르드

연합뉴스 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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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물열전] ⑶첫 심장이식 수술 남아공 바르나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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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달 착륙에 비견…인종차별 비판하며 흑백 간 심장이식 '파란'
남아공 심장전문의 크리스티안 바르나르드의 진료 모습[하트오브케이프타운 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남아공 심장전문의 크리스티안 바르나르드의 진료 모습
[하트오브케이프타운 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1967년 사상 최초로 인간 심장이식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크리스티안 바르나르드(1922∼2001) 박사이다.

영국 BBC방송은 의학사의 한 획을 그은 그의 성공적 수술을 인류의 달 착륙(1969년)과 맞먹을 정도라고 높이 평가했다. 미국 타임지는 지난 80년간(2003년 기준) 세계를 뒤흔든 연도별 주요 사건의 하나로 꼽았다.

기자가 남아공 특파원(2020∼2023년) 당시 케이프타운에 갔을 때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길거리에서 그의 이름을 딴 병원을 볼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그는 남아공을 대표하는 의사임을 알 수 있다.

케이프주 황무지에서 혼혈인을 대상으로 선교하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바르나르드는 변변치 않은 가정 형편에 모닥불 옆에서 공부하면서 반 1등을 했다.

운동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학교 1마일 달리기에서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운동화 살 돈이 없어 맨발로 달려 기록을 세우는가 하면 역시 테니스 라켓 살 돈이 없어 빌린 라켓으로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한다.

케이프타운 의대에 진학한 그는 나중에 미국 미네소타의대에 가서 가슴을 열어젖히는 수술인 개흉술을 수련하면서 본격적인 흉부외과 전문의의 길을 걷는다.


인종차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펴던 고국에 돌아온 그는 흑백 인종에 상관 없이 간호사들을 꾸렸다.

그는 평소 소수 백인이 잡고 있던 정권을 다수의 흑인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하지는 않았어도 인종차별 정책을 비판했다.

남아공 첫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나중에 그의 부고를 접하고 주요 성취를 이룬 인물이라면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올바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고 기렸다.


바르나르드는 실제로 첫 인공심장 수술로 백인 여성의 심장을 흑인 남성에게 이식한 데 이어 1968년 컬러드(혼혈)의 심장을 백인 남성에게 이식해 인종 간 결혼마저도 금지할 정도로 엄격한 흑백 분리 정책을 하던 남아공 사회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첫 번째 인간 심장 이식 수술[하트오브케이프타운 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첫 번째 인간 심장 이식 수술
[하트오브케이프타운 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첫 수술 환자는 면역제 투하에 따른 감염 노출 때문에 폐렴으로 18일 만에 사망했으나 두 번째 환자는 19개월을 생존했다.

그의 성공 이후 다른 나라 의료진도 여러 시도를 했지만 좀처럼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가 면역 거부반응을 줄이는 면역 억제제가 나오고 조직검사 기술도 개선되면서 심장이식이 표준화되고 수술 후 생존율도 높아졌다.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그가 사망한 2001년 당시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10만 건의 심장이식 수술이 이뤄진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에서는 1992년 송명근 교수가 첫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했으며, 국내 누적 심장이식 수술 건수는 약 2천800건(2024년 말 기준)으로 추산된다.

그의 수술이 특히 의미를 갖는 것은 뇌사자의 심장을 이식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만 해도 의사들이 뇌사자를 호흡기에서 떼어낸 다음에도 20분을 기다려 심장이 멈춘 뒤에야 정식 사망 판정을 내렸다.

이런 가운데 바르나르드는 뇌사자의 심장을 이식하면서 이후 인간 간 장기 이식의 길도 함께 열었다. 그는 주로 동물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던 심장 이식을 인간 영역으로 과감히 끌어올렸다.

심장은 가장 인간적인 장기라고 한다. 하지만 1982년에는 인간 심장만 아니라 영구 인공 심장도 이식하는 길이 열릴 정도로 심장 수술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남아공의 평범한 외과의였던 바르나르드는 심장이식 성공으로 일약 국제적인 셀럽이 됐다. 이를 계기로 획기적 수술을 한 의사와 환자까지 유명세를 타게 하는 '의료 미디어 홍보'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의사로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개인사는 평탄치 않았다.

그는 22년 동안 결혼생활을 한 조강지처를 버리고 백만장자의 10대 딸과 재혼하는가 하면 세 번째 결혼까지 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실수로부터 배운다면서 "그러나 성공은 삶을 더 나아가게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983년 류마티스성 관절염 재발로 손가락이 아파 메스를 내려두게 된 바르나르드 박사는 작가로 전업해 자서전과 소설 몇 권을 쓰기도 했으나 수술 실력만큼 인기는 못 얻었다. 1986년 한 스킨 크림의 항노화 효과를 보증했다가 가짜 논란 때문에 명성에 금이 가기도 했다.

말년의 바르나르드 박사[하트오브케이프타운 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말년의 바르나르드 박사
[하트오브케이프타운 뮤지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키프로스에 휴양갔다가 치명적 천식 발작으로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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