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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의 돌발史전 2.0] 지금 필요한 ‘삼국지’ 리더십은... 조조가 아니라 유비라고?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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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의 돌발史전 2.0] 지금 필요한 ‘삼국지’ 리더십은... 조조가 아니라 유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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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2’ 최강록, 그리고 한형수 교수의 인물론
※이 글에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의 스포일러가 일부 들어 있습니다.

'흑백요리사2'의 동영상 클립에 등장한 이하성(왼쪽)과 최강록.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의 동영상 클립에 등장한 이하성(왼쪽)과 최강록. /넷플릭스


그는 마치 조조(曹操) 같았다. 탄탄한 실력을 갖췄고 그 능력을 무대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야심만만한 태도를 숨기지 않았고 그 자신감이 때로 거침없는 언행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모두들 그를 인정하는 한편으로 두려워했다. 어떻게 해야 성과를 내 ‘1위’에 오를 수 있는지 계산하고 움직여 자못 화려한 결과물을 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에 출연한 ‘요리 괴물’ 이하성이다.

한편 그는 마치 유비(劉備) 같았다. 과연 정말 실력을 갖춘 게 맞는지 여러 차례 의구심이 들었다. 때론 논리적으로 말을 하고 효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묵묵히 자기가 갈 길을 걸어 온 그는 결정적인 국면에서 자신의 삶이 우러난 진심이 어린 말과 결과물을 또박또박 찬찬히 내놓아 사람들을 감동케 하고 인심을 얻었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최강록이다.

이 두 사람이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그리고 유비가 이겼다. 아, 세상에나. 유비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구나.

‘삼국지’의 대표적인 양대 진영 보스인 유비와 조조에 대해선 근래 평가가 엇갈렸다. 유비가 착한 편, 조조가 나쁜 편이라는 전통적인 구도는 많이 어그러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조가 천하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진(眞) 주인공 아냐?’라는 생각이 ‘창천항로’처럼 조조가 주인공인 작품을 낳았고, ‘고우영 삼국지’에선 유비가 사실은 겉과 속이 다른 대단히 야비한 인물이었던 것처럼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도올 김용옥은 예전 EBS ‘노자’ 강의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유비의 자(字)인 현덕(玄德)이 무슨 뜻이냐면 드러나지 않은 깊은 덕이라는 의미인데 노자 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멋있지 않느냐? 반면 조조의 이름 조(操)는 뭔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는 의미인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중국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2010년 나온 95부작 ‘삼국’(넷플릭스에선 ‘삼국지’)만큼은 그 인물 묘사에서 참으로 탁월한 작품이라 평가할 만하다. 조조(천젠빈)는 그야말로 ‘조조는 정말 저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정말 조조 같고, 유비(위허웨이)와 관우(위룽광)의 인물 성격 싱크로율도 감탄스럽다. 물론 여포나 초선처럼 한숨이 나오는 미스캐스팅도 없진 않지만. 그런데 유비에게 자리를 물려주려다 거절당한 서주자사 도겸은, 12회에서 마침내 죽음을 앞둔 상황을 맞아 정사에도 소설에도 나오지 않는 이런 대사를 말한다.


“현덕,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않는 법이라네. 이 늙은이가 자네에게 할 말이 있어. 죽음을 앞둔 이때 우리 사이에 예의나 격식은 필요 없지. 안 그런가? (유비가 ‘네’라고 하자) 난 알고 있네, 유비·관우·장비 삼형제는 대업을 준비할 근거지가 아주 절실하다는 걸. 자네가 서주를 원치 않는 게 아니라는 것도 다 알아. 아니, 자네는 서주를 갖고 싶어. (유비가 울기 직전의 표정을 짓자) 어쩌면 그 누구보다 더 간절할 거야. 그렇지? 다만 그대는 명예를 목숨보다 중히 여기기에 나의 위급을 이용하고 싶지 않은 거지. (유비가 ‘정확히 보셨습니다’라 하자 인장을 만지며) 받으시게. 아우님 말고는 서주를 맡길 사람이 없어. 조정에 올릴 상소는 유언장 안에 넣어 놨으니 내가 죽거든 바로 올리시게.”

이 드라마의 작가는 정말 대단했다. 삼국지를 제대로 읽었다. 성인군자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악독하고 야비한 인물도 아니었으며, 속내에 감춘 야심은 누구보다도 컸지만 이름을 더럽히는 일을 하기는 죽기보다 싫었던 유비의 캐릭터를 이렇게 잘 표현했을 수 있을까. 사실 이것이 바로 유비란 인물이었다.

‘삼국지의 나라’ ‘또국지(또 삼국지)의 나라’란 이름만 있을 뿐 정작 깊이 있는 삼국지 연구가 드문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에 걸쳐 39명에 달하는 삼국지 속 인물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 팔순에 이 작업을 완성한 이 사람은 사회학자인 한형수(81)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다.


지난해 12월 11일 경기도 분당의 한 작업실에서 삼국지 인물론을 책으로 펴낸 한형수 시립대 명예교수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지난해 12월 11일 경기도 분당의 한 작업실에서 삼국지 인물론을 책으로 펴낸 한형수 시립대 명예교수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진수(陳壽)의 정사(正史)와 배송지(裴松之) 주(注)를 완독한 것은 물론, 수백 권의 고·금 삼국지 관련 서적을 읽고 카를 구스타프 융의 인물 분석론까지 원용해 정말 ‘악’ 소리 날 만큼 끈질긴 인물 분석을 수행했다. “관우는 교만 때문에, 장비는 포악 때문에 망했다.” “제갈량은 전략가라기보다는 정치가였고, 조운(조자룡)은 큰 군대를 이끈 지휘관이 아니라 소규모 기동타격대장이었다”는 등 흥미로운 분석이 많다. 그런데.

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리더십을 지닌 삼국지 인물은… 조조가 아니라 유비다!”

무슨 얘긴지 더 들어 봤다. “유비는 오랫동안 무능한 인물로 알려졌다. 만약 그가 누군가의 밑에서 실무자로 일했더라면 분명 무능하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라는 위치에서 그를 보면 완전히 달라진다.”


2010년 중국 드라마 '삼국'의 유비(위허웨이). 유비의 캐릭터를 잘 살린 각본과 연기로 호평받았다.

2010년 중국 드라마 '삼국'의 유비(위허웨이). 유비의 캐릭터를 잘 살린 각본과 연기로 호평받았다.


유비는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는 감식(鑑識) 능력, 한번 그 밑에 들어온 사람이 전폭적 신뢰를 보내며 배신하지 않게 하는 포용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서는 유비가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고 백성을 사랑했다고 기록했다. 유비는 지위가 낮은 선비도 예를 갖춰 겸손하게 대했고 빈객을 대우했다. 가장 칭송받는 점은 불리할 줄 뻔히 알면서 백성을 버리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익주의 유장을 공격한 일을 보면 사소한 의리에 얽매여 큰 계획을 버리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소설 속 묘사와는 달리 유비가 항상 부하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데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명말 청초 학자 왕부지(王夫之)가 ‘독통감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유비는 관우의 장점조차 잘 살리지 못했다. 관우를 교만하게 만들고 사사롭게 대한 결과 졸지에 재능을 잃고 패하게 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유비가 심지어 조운을 홀대했다고도 본다. 조자룡은 전쟁에서 여러 번 공훈을 세웠는데, 촉으로 들어가고 나서 유비와 계책이 자꾸 어긋나자 더 이상 그를 신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우, 장비, 황충, 마초는 명호장군(名號將軍)이 됐지만 조운은 끝내 잡호장군(雜號將軍)에 머물렀다. ‘오호장군’은 소설에만 나오는 얘기다.

익주 병탄 시점에서, 형주에 남은 관우와 제갈량 중에서 제갈량을 소환한 것도 여운을 남긴다고 했다. 형주에 오래 살았던 제갈량이 아니라 형주의 실정에 어두운 관우를 남겼다? 왕부지의 말처럼, 제갈량을 관우만큼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고야, 유비가 제갈량을 전폭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홀로 남은 관우가 형주에서 패한 결과로 볼 때, 이것은 유비의 대업이 어그러지는 악수(惡手)가 됐던 걸까.

유비는 자신의 심리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은 성격 탓에, 형주를 손권으로부터 ‘빌린’ 것인지, 자신이 ‘차지’한 것인지 불분명하게 처리함으로써 훗날의 화근을 만들었던 것이라고 한 교수는 지적했다. 도가적(道家的)으로 유연하게 행동하는 유형의 사람이 반드시 새겨야 할 대목이라 하겠다.

중국 드라마 '삼국'의 조조(천젠빈). 조조가 책 속에서 밖으로 걸어 나온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 드라마 '삼국'의 조조(천젠빈). 조조가 책 속에서 밖으로 걸어 나온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조조는? 그에게선 ‘정책 수행의 전문성’이라는 큰 장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겉으로는 유가(儒家), 속으로는 법가(法家)를 취하는 원리인 외유내법으로 난세를 주도했다.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주관적 가치와 권도(權道)가 특징이었으며, 개혁적이고 논리적인 치밀성이라는 장점으로 일찍 천하 강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치세(治世)의 권신, 난세(亂世)의 영걸’이라는 그의 성격이 끝내 약점으로 불거졌다. 스스로 ‘나의 장자방(장량)’이라 했던 순욱을 필두로 여러 부하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 자기 계산에 맞지 않으면 맹목적 헌신을 펼쳤던 인물도 제거하는 편협한 성격이 ‘간교함’ ‘잔혹함’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로 남게 됐다는 것이다.

한형수 교수는 융 이론에 비춰볼 때 유비를 ‘내향적 감정형’, 조조를 ‘내향적 사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내향적 감정형은 포용력이 강하고 대인 관계가 원만해 갈등을 잘 조정하고 융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 주위 사람들의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나 심리 상태를 외부로 표출하기보다는 내부로 숨기는 편이고, 일 처리에 있어서 너무나 자세하고 세밀한 성격 때문에 일을 효과적으로 끝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내향적 사고형은 어떤 사람인가. 현실에 구애받지 않고 이상적이고 개혁적인 정책을 선택하고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성향으로 치밀하게 정책을 결정하고 조직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이 부족해 의견에 대한 설득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삼국지의 세계는 이렇듯 깊이를 더할수록 계속 새로운 요소가 나오는 ‘인간 본성과 유형의 바다’와도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마침 초야의 인문학자이자 ‘고전번역계의 최강록’이라 할 수 있는 김영문이 배송지 주까지 번역한 ‘정사 삼국지’도 최근 출간됐다. 분량이 많아 과연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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