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남정훈 기자] ‘클러치육’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활약이었다. IBK기업은행의 토종 에이스 육서영이 경기 막판 클러치 상황에서 연속 득점으로 팀에게 승점 3을 온전히 챙겨줬다. 시즌 초반 1승8패라는 최악의 출발을 보였던 IBK기업은행은 5연승을 달리며 5할 승률(11승11패)로 올라섰다. 이제 상위권 도약도 정조준하는 IBK기업은행이다.
IBK기업은행은 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GS칼텍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1(25-21 25-15 17-25 25-23)로 이겼다. 5연승을 달린 IBK기업은행은 승점 3을 추가해 승점 35(11승11패)가 되며 2위 현대건설(승점 39, 13승9패), 3위 흥국생명(승점 39, 12승10패)와의 격차를 줄였다. 18일 예정된 흥국생명과의 4라운드 홈경기에서 승리하면 단숨에 상위권 도약도 바라볼 수 있는 IBK기업은행이다.
반면 GS칼텍스는 순위 경쟁팀인 IBK기업은행과의 ‘승점 6’짜리 맞대결에서 세터진의 경기 운영 및 리시브 난조, 세트별 기복으로 인해 2연패에 빠졌다.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겸 구단주가 올 시즌 처음 장충체육관을 찾았지만, 패배를 지켜봐야만 했다. 승점 추가에 실패한 GS칼텍스는 승점 30(10승12패)에 그대로 머물며 중위권 싸움에서 한 발 떨어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GS칼텍스다.
리시브 양상에 따라 세트별 경기력이 요동친 이날 경기였다. 1,2세트는 IBK기업은행이 어렵지 않게 따냈다. 심지어 GS칼텍스의 2세트 리시브 효율은 0%였다. 3세트는 GS칼텍스의 리시브가 어느 정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며 영패는 면했다.
이날 승부를 가른 4세트. 세트 초반부터 IBK기업은행이 치고 나가며 11-3까지 앞서나가며 낙승이 예상됐다. 그러나 실바를 중심으로 GS칼텍스가 무서운 추격전을 벌였고, 결국 17-17 동점이 됐다. 이어 GS칼텍스의 ‘쿠바 특급’ 실바가 IBK기업은행이 자랑하는 ‘최리’(최고의 리베로) 임명옥을 무너뜨리는 서브득점을 터뜨리며 21-19로 달아나며 승부가 5세트로 향하는 듯 했다.
영웅은 난세에 나타난다고 했던가. IBK기업은행의 ‘내딸 서영이’ 육서영이 위기 상황에서 분연히 나섰다. 오픈 공격을 성공시켜 분위기를 바꿔낸 육서영은 21-22에서 동점 퀵오픈을 성공시켰다. 박은서가 GS칼텍스 리베로 한수진을 무력화시키는 서브득점으로 23-22를 만들었고, 육서영의 퀵오픈이 꽂히며 IBK기업은행이 매치포인트를 만들었다. 이후 24-23에서 경기를 끝내는 득점도 육서영의 몫이었다. 길었던 랠리를 끝내는 회심의 오픈 공격이 GS칼텍스 코트를 폭격하며 IBK기업은행은 승부를 5세트까지 가는 것을 막아내고 승점 손해없이 경기를 끝냈다. 경기 막판 IBK기업은행이 낸 6점 중 혼자 4점을 책임진 육서영은 4세트에만 7점(공격 성공률 63.64%)을 책임졌다. 이날 총 득점이 15점이었으니 절반 가까이를 4세트에 집중시킨 셈이다. 그야말로 ‘클러치육’이라고 불러될 만한 이날 활약이었다.
경기 뒤 세터 박은서와 인터뷰실을 찾은 육서영은 “오늘 경기를 준비하면서 코칭스태프, 팀 동료들과 4위 굳히기 경기라 중요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기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됐다. 어려운 승부였지만, 다같이 잘 이겨낸 경기였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클러치육’이라는 수식어로 불러도 되겠느냐 묻자 육서영은 쑥스럽게 웃으며 “조금 부끄럽긴 한데...”라면서 “4세트 저희 경기력이 불안불안했다. 19-19에서 후위 세 자리를 맡아준 (황)민경 언니가 교체돼 코트에 다시 들어서기 전에 여오현 감독님께서 ‘서영아, 들어가서 끝내고 나와’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때 의지가 좀 타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박)은서 언니한테 ‘나한테 공 몰아줘’라고 얘기했는데, 은서 언니도 이미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저를 믿고 올려준만큼 보답하려고 열심히 때렸던 것 같다”라고 4세트 막판을 돌아봤다.
시즌 시작 전만 해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혔던 IBK기업은행이지만, 공수 핵심 연결고리 이소영의 어깨 부상으로 인한 시즌 아웃, 주전 세터 김하경의 부상 등이 겹치며 1승8패라는 최악의 출발을 보였다. 7연패에 빠지자 김호철 감독은 자진사퇴하며 선수단을 일깨웠다. 여오현 감독대행 체제로 재편한 뒤 IBK기업은행은 10승3패를 거두며 드디어 5할 승률 회복에 성공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시즌 초반을 돌아봐달라는 질문에 육서영은 “제가 더 잘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자책도 많이 했었고요. 어떻게 하면 팀을 살릴 수 있을까 언니, 동생들이랑 얘기도 많이 했는데, ‘어차피 바닥에 있으니 한 경기, 한 경기 이기는 데 집중하면 언젠가 위에 있을거다’라고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했어요. 경기를 이겨나가다보니 버티는 힘도 생긴 것 같아요. 다 같이 노력한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지난 시즌 커리어하이를 찍은 뒤 생애 첫 FA 자격을 얻어 IBK기업은행에 잔류한 육서영은 비시즌 동안 대표팀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팀에 복귀해 치른 통영 KOVO컵에서 MVP에 오르며 ‘육서영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그러나 막상 2025~2026시즌이 시작되자 상대 목적타 서브에 리시브 약점이 두드러졌고, 강점인 공격력도 무뎌졌다. 육서영은 지금도 100% 컨디션은 아니라고 자가진단하고 있다. 그는 “리듬은 아직도 찾아가는 중인 것 같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리시브에 대한 불안함이 없다면 거짓말인 것 같다. 그래서 정확하게 보내는 걸 목표로 하기보다는 범실 없이 올려만 놓으면 동료들이 이단으로 올려줄테니, 그걸 잘 처리하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옆의 동료들이 힘들겠지만, 저 역시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육서영은 매세트 중반 후위 세 자리 때 황민경과 교체된다. 한창 경기를 뛰다 코트에서 물러났을 땐 무엇을 보고 있을까. 육서영은 “아웃사이드 히터 전위에 빅토리아가 있으니 빅토리아의 공격에 대한 상대 블로킹이나 수비 대응을 유심히 지켜본다. 지켜보고 전위 때 코트에 복귀하면 공격 작업에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제 IBK기업은행은 18일 흥국생명을 상대한다. IBK기업은행으로선 상위권 도약을 위해선 반드시 이겨야할 상대다. 육서영은 “해볼만한 상대라고 생각한다. 꼭 이겨야 한다. 그래야 봄 배구 희망을 이어갈 수 있다. 이틀밖에 시간이 없어 휴식 시간이 부족하지만, 최대한 회복을 해서 철저히 준비하고 나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장충=남정훈 기자 che@segye.com[현장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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