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 대신 ‘동네 상권’ 즐기기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타이완 관광객 4명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 한 손에 망원시장에서 팔고 있는 먹거리를 들고 있다. 망원시장은 외국인 관광객 바가지 논란이 있었던 광장시장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
지난 14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에서 온 관광객 11명이 들어서자 시장 상인들이 세숫대야만 한 킹크랩을 들어 보이며 “빅 사이즈! 빅 사이즈!”라고 외쳤다. 관광객들은 킹크랩을 안고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 마이 갓!” “판타스틱!” 곳곳에서 탄성이 나왔다. 가게 안에 들어가니 킹크랩을 뜯는 손님 20명 중 15명이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태국에서 온 피싯퐁 통팽(21)씨는 “서울을 여러 번 둘러본 친구가 수산 시장에 꼭 가보라고 해서 찾아왔다”며 “진짜 서울 사람처럼 생선 구경도 하고 싱싱한 킹크랩 한 마리 사서 바로 쪄 먹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시장에서 사 먹는 수산물이 더 싱싱하고 맛있다”고 했다.
노량진수산시장에는 특히 수산물을 좋아하는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관광객이 많다고 한다. 상인 전모(66)씨는 “동남아에서 먹기 힘든 킹크랩, 꽃게 등을 주로 고른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
비슷한 시각,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닭강정집과 떡볶이집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10명씩 줄을 섰다. 평일 오후인데도 장 보러 나온 사람 3명 중 1명이 외국인이다.
필리핀 관광객 조안 가란자(38)씨는 양손에 약과와 닭강정을 들었다. 그는 “틱톡(소셜미디어)에서 망원시장을 처음 알게 됐다”며 “장바구니를 들고 붕어빵과 귤을 고르는 서울 사람들 사진을 많이 찍었다. 너무 예쁘다”고 했다.
망원시장에서 만난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인들이 뭘 먹고 뭘 입는지 볼 수 있는 망원시장이 유명 관광지들보다 더 흥미롭다” “부담스러운 호객 행위나 바가지가 없어서 좋다”고 했다.
한 중국인 관광객은 딸기와 사과를 샀다. 통역은 ‘스마트폰 번역기’가 한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 외국인 관광객들이 폰 들고 찾아와서 과일도 사고 약과도 사고 다 한다니께.” 상인 김모(61)씨 얘기다.
유명 관광지 대신 동네 시장과 골목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노량진수산시장이 있는 동작구 노량진2동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12만3350명으로 1년 전(8만4369명)보다 46.2% 증가했다. 망원시장이 있는 마포구 망원1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도 같은 기간 27만2154명에서 39만237명으로 11만8083명(43.4%) 늘었다. 서울 전체 외국인 관광객 증가 폭(14.1%)의 3배 수준이다.
서울관광재단이 지난해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2423명을 대상으로 들렀던 곳을 조사해보니 명동이 73.4%로 1위였다. 홍대도 42.8%로 인기가 있었다. 재단은 “전통적인 관광 명소 외에 을지로 골목(17.4%), 고속터미널 지하상가(13.1%) 등 동네 상권을 찾았다는 외국인도 꽤 많았다”며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 곳곳으로 분산되는 추세”라고 했다.
서초구 양재천 카페거리나 송파구 방이동 먹자골목도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한국인의 일상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장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암마르코 카파기(28·이탈리아)씨는 “3주 동안 서울 곳곳을 여행했는데 양재천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아파트 사이로 양재천 산책로를 걸으니 잠시나마 서울 사람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여행 잡지인 론리플래닛은 지난해 ‘한국에서 꼭 해봐야 할 20가지 경험’을 꼽아 소개했다. 노래방에서 K팝 부르기, 찜질방에서 때밀기 등 한국인의 소소한 일상이 여럿 담겼다.
서울에서 가이드로 활동하는 신모(53)씨는 ‘동네 친구 체험’ ‘서울 로컬 투어’를 주제로 서울 관광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을지로 노포 식당에서 한국 회사원처럼 제육볶음을 먹고, ‘소맥’을 마시며 회식 문화도 경험하는 식이다. 신씨는 “단순히 관광지를 둘러보는 대신 서울 사람의 하루를 체험하길 원하는 수요가 많다”고 했다. 서울관광재단도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로컬 상권 투어’ ‘서울 현지 음식 체험’ 등 콘텐츠를 소개하고 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세계적으로 K팝, K푸드 등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인이 사는 방식이나 문화를 궁금해하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다”며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 방식이나 눈에 익은 공간이 외국인에게는 더 특별해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김혜민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