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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날것 싣고 뭍에 나와… 통닭 한마리로 마치는 항해[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동아일보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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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날것 싣고 뭍에 나와… 통닭 한마리로 마치는 항해[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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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먹기 좋게 부위별로 찢어 상에 내는 경북 울진군 죽변면 ‘장터옛날통닭’의 통닭. 김도언 소설가 제공

손님이 먹기 좋게 부위별로 찢어 상에 내는 경북 울진군 죽변면 ‘장터옛날통닭’의 통닭.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작가 한승원은 소설 ‘포구’에서 바다의 풍경이 아니라 바다에 오래 몸을 담근 사내들의 마음을 길어 올린다. 밤과 밤을 이어가며 파도 위에서 뱃일하는 남자들이 품게 되는 정한은 종종 아주 사소한 감각으로 환원된다. 특히 육지에 대한 갈망이 그렇다. 소설 속 사내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여자들의 분내지만, 현실의 뱃사람들에게 그것은 꼭 향수나 살냄새만은 아닐 것이다. 비린내가 일상인 삶에서 기름에 튀긴 음식 냄새는 육지 그 자체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우연히 뱃일하는 사람의 입에서 “가장 그리운 건 튀김 냄새”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이상할 만큼 애틋하게 다가왔다. 살아 있는 생물의 냄새에 물린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갈망일 테니까. 생선의 비늘과 피, 바닷물과 디젤 냄새가 뒤엉킨 곳에서 며칠씩 밤을 새우다 보면 바삭하게 터지는 기름 냄새는 차라리 식욕을 넘어 생명에의 희구가 된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경북 울진군 죽변항은 그런 감각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울릉도로 향하는 어장의 전진기지였던 죽변항은 예로부터 소문난 어항이었고, 지금도 그 명성을 잃지 않았다. 첫새벽 빈 배로 나갔던 어선들이 고기를 싣고 항구로 밀려들면 뱃사람들은 다시 육지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그 전환의 순간을 가장 맞춤하게 맞이하는 가게가 있다. 죽변항 중심 시가지 회전교차로 근처의 오래된 ‘장터옛날통닭’이 그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기름솥이 아니라 사람이다. 나이 지긋하고 인상이 푸근한 찬모 두 분이 주방을 나눠 맡고, 초로의 아저씨 한 분이 부지런히 몸을 놀린다. 동작은 빠르지 않다. 주문을 받고, 닭을 손질하고, 접시를 내놓는 모든 과정이 한 박자씩 늦는 듯 보이지만, 그 느림에는 서두르지 않는 삶의 출렁임이 배어 있다. 말수는 적지만 손님들과 눈길이 닿을 때마다 웃음이 잔잔한 파도처럼 따라온다.

며칠씩 밤을 새운 뱃사람들은 항구에 막 들어와 하역을 마치고, 아직 바다 냄새가 가시지 않은 채 자리에 앉는다. 주문은 늘 같다. 1만 원짜리 옛날통닭 한 마리와 생맥주. 찬모들이 튀겨낸 통닭과 맥주잔을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그들은 육지에 발을 디딘 것을 실감한다.

특이한 것은 통닭을 먹기 좋게 부위별로 찢어 손님상에 낸다는 점이다. 냄새에 혹해 성급하게 뜯지 말고 실속 있게 먹으라는 배려일 테다. 꿀꺽꿀꺽 마시는 생맥주 한 모금에는 불안에서 빠져나온 이들의 빠른 말소리가 섞이고, 통닭 껍질을 베어 물 때 나는 바삭한 소리는 경매로 매길 수 없는 노동의 보상으로 다가온다.


죽변항 장터옛날통닭에서 통닭은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에 가깝다. 바다에서 육지로 돌아왔음을 자축하는 소박하지만 확고한 의례다. 어떤 뱃사람들은 바다로 나간 뒤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그에 비해 치킨을 입속에 넣는 자는 분명 살아 있다. 여자들의 분내 대신 튀김 냄새가 있고,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와 바삭한 닭다리 하나가 거들 뿐이지만, 그 효용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 집은 오래 남아 있어야 한다. 죽변항에 어선들이 오고 가고, 밤을 새운 뱃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는 육지를 희구하는 한 그렇다. 이곳은 통닭집이기보다는, 성소라고 해야 마땅하리라.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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