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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배달, 방과후 교사 모인 서대문 '우생순'···예산 감액·헤체 우려에도 전국 최강 '우뚝'

서울경제 박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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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배달, 방과후 교사 모인 서대문 '우생순'···예산 감액·헤체 우려에도 전국 최강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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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청 여자실업농구단
박찬숙 감독과 선수들 모여 2023년 창단
'비인기' 설움 딛고 12경기 무패 우승
주민들 환호···전국 경기장 찾는 서포터즈도
구의회 예산 삭감···기업 후원으로 버텨
"스포츠엔 빨강·파랑 없어···긍정적으로 보길"


창단 2년여 만에 전국체전 2연패를 이룬 여자실업농구단이 있다. 주축 선수는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방과 후 교사, 택배를 나르면서도 손에서 공을 놓지 못했던 이들. 잇단 승전보에 경기장마다 찾아가 응원하는 서포터즈가 결성되는 등 주민들의 사랑을 받지만, 구단 운영 예산은 2년 연속 삭감. 구단이 해체될 수 있다는 불안에도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처럼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모인 팀. 바로 서울 서대문구청 여자실업농구단이다.

서대문구청 여자실업농구단은 생활체육 활성화와 서대문구 브랜드 가치 제고 등을 목표로 2023년 3월 창단했다. 대한민국 여자농구의 ‘전설’ 박찬숙 감독은 프로 지명에 실패하고 조기 은퇴했거나 팀 해체, 방출을 겪은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초기 성적표는 궁색했다. 첫 출전대회인 ‘2023 전국실업농구연맹전’ 첫 경기에서 서대문구청은 20여 점 차로 대패하며 바로 짐을 쌌다. 일각에선 ‘자치구에 웬 농구단’이라는 냉소가 나왔지만, 박 감독과 선수들은 더 치열하게 몸을 만들었다. 박 감독은 “‘박찬숙과 함께하는데 뭐가 두렵고 무섭냐. 나만 믿고 따라오라’며 선수들을 독려했다”고 말했다.

반전은 빨리 찾아왔다. 농구단은 창단 1년 7개월 만인 2024년 전국실업농구연맹전, 전국체전 등 4개 대회에서 12경기 연속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선수들이 전국체전 시상대에 오른 모습은 영화 ‘우생순’의 한 장면 같았다”고 전했다.

우승 후 열린 카 퍼레이드는 ‘비인기 종목’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큰 환호를 받았다. 서대문구 일대를 도는 오픈버스에 오른 선수들을 향해 주민들은 손을 흔들었고, 아이들은 “언니들처럼 되고 싶다”고 외쳤다. 전국의 경기장을 찾아가는 서포터즈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생겼다. 박 감독은 “시장이나 경로당 앞을 지날 때면 많은 분에게 ‘농구 이겨서 좋다’거나 ‘힘내라’는 격려를 받는다”며 “서대문구에 대한 애정도 더욱 샘솟는다”며 웃었다.



전폭적인 구민들의 응원에 농구단의 승전보는 계속됐다. 지난해 4월 경북 김천에서 열린 2025 전국실업농구연맹전에서 준우승, 6월에 열린 태백시장배 전국실업농구연맹전에서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0월에는 전국체전에 서울시 대표로 출전해 2년 연속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눈부신 성과에도 예산 심의의 벽은 높았다. 서대문구의회 다수당 구의원들은 2024년 말 진행한 2025년 예산 심의에서 농구단 운영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이성헌 구청장은 “구 홍보와 주민 화합에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호소했지만, 다수당에서는 “농구단 운영이 민생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맞섰다.

구의회는 올해 예산도 역시 삭감했다. 빠듯한 살림에 코치 자리는 사라졌고, 박 감독 혼자 구단 전원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구는 준예산과 서울시 지원금으로 겨우 최소한의 인건비를 맞췄다. 그나마 지난해 SM그룹이 농구단 후원을 결정하면서 대회 참가비와 필수 운영비 마련에 숨통이 트였다.



농구단의 활동 무대는 코트에만 그치지 않는다. 틈틈이 관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재능 기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지난해에는 학교 4곳에서 학생 385명을 만났다. 생활체육 활동이 자연스레 주민 삶에 녹아드는 긍정적인 사례다.


물론 농구단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다. 올해 6월 지방선거 결과에 구단 존속 여부가 달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 감독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제가 LA 올림픽에서 은메달 딸 때 국민들이 빨강, 파랑 가려가며 박수 치진 않았거든요. 지금 농구단도 전국에 서대문구를 알리고 구민의 자부심을 높이는 대표 선수라는 마음일 뿐이니 부디 긍정적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박창규 기자 ky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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