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열린 ‘윤 어게인 사이버 행진’. 유튜브 갈무리 |
정봉비 | 이슈팀 기자
“공~소 기각~! 유운 어게인~!”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이 열리던 지난 13일 저녁 서울중앙지법 앞.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도 태극기를 든 60~70여명의 무리가 법원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검찰의 구형 발표 시 법원 앞 풍경 스케치를 지시받았다. “하 내가 여길 또 오다니.” 감상에 젖을 틈이 없다. 그들 틈으로 들어가 빠르게 스캔하며 복장, 행동, 피켓 문구, 구호 등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나갔다. 너무 몰두하면 안 된다. 정체가 들통날 수 있다. 이런 때를 대비해 준비해둔 휴대폰 사생활 보호 필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래도 의심의 눈초리가 느껴질 때는 구호 타이밍에 맞춰서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올린다. 차마 구호를 따라 하진 못했다.
2024년 1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숱한 탄핵 집회를 겪으며 신분 위장 스킬을 익혔다. 나의 눈치보기는 취재 중에 공격당할 수 있다는 무의식적 공포에 기인한 것일 테다. 특정 집단을 향한 쌍욕이 난무하고 타인을 미워하는 ‘혐오’ 에너지가 가득한 극우 집회에 가면 지금도 몸이 움츠러든다.
가끔 재밌는(?) 풍경도 보인다. 지난해 1월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서 윤 전 대통령의 체포 영장 기각 소식이 들리자 한 어르신이 활짝 웃으며 ‘탄핵하라’ 피켓을 든 여성에게 “기각됐대요∼ 기각됐대요∼ 중국인들 억울하지” 하는 모습을 봤다. 그것도 혀를 내밀며.(어르신의 메롱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남태령 집회 땐 경찰이 버스로 차 벽을 세워 탄핵 ‘반대’와 ‘찬성’ 쪽의 동선을 분리했는데 버스 틈 사이로 누군가 던진 사탕에 이마를 맞은 적이 있다. 범인을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니 버스 틈 사이로 ‘탄핵 반대’ 쪽 중년 남성이 통쾌해하며 주위 사람들과 ‘푸헤헤’ 웃는 모습이 보였다. 해맑게 웃는 그들을 생각하면 “혐오는 때론 동심의 형태로 발현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정도면 다행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난동 당시 공덕역 인근은 내가 아는 대한민국과 달랐다. 법원 근처에서 사람을 밀치거나 멱살을 잡는 등 물리적인 충돌이 빈번했다. 수십명이 경찰차를 둘러싸고 태극기 등으로 차를 쾅쾅 치고 있었다. 동료 기자도 그날 밤 법원 앞에서 핸드폰을 빼앗겨 초기화 당하고 멱살을 잡히는 등 폭행당했다고 털어놨다. 혐오는 때론 ‘법치’를 잊게 할 정도로 강력한 감정임을, 그날 봤다.
이제 윤 전 대통령은 ‘사형’을 구형받았고 선고 재판은 다음달에 열린다. 내란에 연루된 인물들의 재판이 속속 진행되고 있고 곧 마땅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딘가 찜찜한 기분은 남아 있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특정 동물을 정치인에 합성하거나 ‘일베’에서 자주 쓰이는 혐오 언어를 노래로 만든 게시물들이 자주 보인다. 중국인 관광객들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퍼지며 초중학생들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공유하는 추세가 확인돼 기사화된 적도 있다. 교실에도 극우의 밈이 침투한 지 오래라고 교사들은 증언한다. 섬뜩했던 지난해 초의 한남동 관저, 헌법재판소, 서부지법 앞 극우들의 풍경. 다시는 재현되지 않는다고 확신이 서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미디어사회학자 박권일의 한겨레 연재 이름대로 ‘우리 안의 극우’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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