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
과거 단순하게 정부의 역할이 국방, 치안, 외교, 사법 등에 한정되던 시절에는 세금을 걷어 그해 지출에 충당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예산을 들여다보면 세금과 함께 빚(관리재정수지 -109조원) 비중도 상당하며 지출도 미래기술, 보건복지고용 중심으로 예산 단년도주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국가재정법은 과거 예산회계법 시절보다 기금, 성과관리, 국가채무를 포괄하고 재정운용의 합리성과 투명성, 성과 중심의 효율성이 강화되었다. 하지만 예산 및 기금운용의 비효율성과 재정의 투명성 부족이 지적되곤 한다. 이 중 예산제도의 비효율성에 초점을 맞춰보자. 예산의 분산편성이 초래하는 사회적 폐해, 시설물의 완공 지연, 사업비 증액의 가속화, 완공 시기의 합리적 예측 불가, 정치적 논리에 의한 신규 사업 남발 등을 방지할 수 있는 예산의 전액 편성이 필요하다.
사회간접자본(SOC) 등 자본시설 예산의 중요한 원칙은 해당 사업이 작동할 수 있도록 충분한 예산을 제공해 시설이 짓다 마는 형태로 방치되거나, 완공되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투자가 무용지물이 되므로 설계변경을 계속해 사업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상을 방지해야 한다. 이러한 전액편성원칙은 다년도 사업에서 특히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헌법 55조는 계속비 제도를 인정해 다년도 사업을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계속비 사업이 급감하고 있고 실제로 2026년 예산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 조달청, 연구개발(R&D)예산에 활용되는 데 그치고 있다. 수년에 걸쳐 집행되는 대규모 공사비가 매년 파편적으로 분산될 위험이 있는 장기계속공사 형식으로 집행되고 차수별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다. 장기계속공사는 한정된 예산하에서 다수의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는, 그러나 모든 사업의 완공을 지체하는 예산편성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정치적 요구와 경제적 이익 사이의 상충관계에서 정치적 요구가 과도하게 반영될 위험이 있다.
단년도주의의 예외로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계속비 제도가 2022년을 마지막으로 교통시설 투자에 활용되지 않고 있다. 예산이 정치 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다년도 사업의 재원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사업비 전액편성은 꼭 필요하다. 정치적으로는 수많은 사업을 동시에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이들의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완공해 나가야 한다. 기획예산처가 부활된 2026년, 계속비 제도 혁신부터 다시 시작하자.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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