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홍균 기자]
△17일 - '검은 황금'에의 열망이 빚어낸 한바탕 소동
이날 1면 머리에는 '이 땅에도 石油(석유)가…'라는 제하의 기사가 큼지막하게 올라가 있다.
1976년 1월 17일자 1면. |
△17일 - '검은 황금'에의 열망이 빚어낸 한바탕 소동
이날 1면 머리에는 '이 땅에도 石油(석유)가…'라는 제하의 기사가 큼지막하게 올라가 있다.
부제를 '5千年(천년) 民族史(민족사)에 劃期的(획기적) 轉機(전기) 이룰 快報(쾌보)'라고 달만큼 이 보도는 그야말로 국민들에게 엄청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내용은 '마침내 우리 땅에서도 待望(대망)의 原油(원유)가 발견됐다. 늦어도 오는 4~5월께까지는 우리나라에서 埋藏量(매장량)의 經濟性(경제성)이 밝혀질것이며 原油賦存(원유부존)가능성이 매우높은 韓日共同開發區域(한일공동개발구역)인 대륙붕제7鑛區(광구)의 試錐探査(시추탐사)결과도올가을이나 연말에가서는판가름이날것으로 보여 우리나라도 産油國(산유국)이 되어經濟(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약할 靑寫眞(청사진)을 그려보게 되었다. 迎日地區(영일지구) 3개試錐孔(시추공)중 1개孔의 1천5백m 지점에서 채취된 原油의 KIST(韓國科學技術硏究所(한국과학기술연구소)) 분석결과에 따르면 API度(도)가 높아 輕質溜分(경질유분)이 많고 硫黃含有量(유황함유량)이 1.5% 미만인 상당히 良質(양질)인것으로알려졌다. 문제는 經濟性을 가늠할 埋藏量이 얼마인가에 달려있다.(하략)'라고 요약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1975년 경북 포항시 영일만 일대에서 원유가 발견됐다고 1976년 1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발표하며 생긴 해프닝이었다.
그때는 1974년 1차 석유 파동으로 인해 물가상승률이 20%대까지 치솟을 정도로 경제가 어려운 시기였다.
포항은 예전부터 석유 부존 가능성이 제기되던 곳이었고 석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시쳇말로 '꽂힌' 박 대통령의 특별 지시에 따라 중앙정보부(이하 중정)가 포항 석유 시추를 1975년 비밀리에 시작했다.
중정이 영일만 인근에 시추공 3개를 뚫기 시작했지만 파도 파도 계속 화강암층만 나와 결국엔 끝내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면서 시추는 종료되는 듯했다.
그런데 그 해 12월 3일 한 곳에서 원유로 보이는 액체가 나오기 시작했고 시추 현장은 난리가 났다.
그래봐야 드럼통 하나 정도의 양에 불과했지만 이 샘플은 박 대통령에게 전달됐고 기쁨에 겨웠던 그가 보안 사안인 이 사실을 여기저기 공식 행사에서 슬쩍슬쩍 흘리는 바람에 소문은 계속 퍼져갔으며 결국 박 대통령은 1976년 연두기자회견에서 기정사실로 발표를 했다.
하지만 계속된 탐사 결과 더 이상 기름 같아 보이는 액체는 나오지 않았다. 앞서 사람들을 들뜨게 했던 액체도 시추 과정에서 윤활제로 쓴 경유가 냉각수로 쓰인 물과 함께 섞여 고여있다가 우연히 시추기가 그곳을 뚫는 바람에 원유로 착각했거나 소량만 존재했던 특수한 원유일 수 있다는 분석을 끝으로 산유국의 꿈은 말 그대로 꿈으로 지나가 버렸다.
/신홍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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