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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뒤집으니, 조종사가 비명을 지르네...레고, 반 세기만의 디지털 혁신

조선일보 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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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뒤집으니, 조종사가 비명을 지르네...레고, 반 세기만의 디지털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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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비즈니스 인사이트
그래픽=김의균

그래픽=김의균


자동차 모양으로 조립된 레고 블록에 작은 사각형 ‘스마트 브릭’을 결합시키자, ‘부앙’ 하고 시동 거는 소리가 난다. 자동차를 들어 이리저리 코너링 흉내를 내니 ‘끼익’ 타이어 마찰음이 들린다. 이번엔 ‘스마트 브릭’을 비행기에 결합시킨 뒤 조종사를 앉히고 비행기를 뒤집었더니 조종사가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른다.

지난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에서 덴마크 완구 회사 레고가 공개한 신기술이 세계인의 동심을 자극하고 있다. 줄리아 골딘 최고제품·마케팅책임자(CPO)는 ‘스마트 브릭’을 공개하며 “이제 우리는 단순히 장난감을 파는 회사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특별한 체험과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회사가 됐다”고 말했다.

스마트 브릭이란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하던 기존의 레고 블록에 최첨단 스마트 기술을 더해 소리와 빛,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도록 진화시킨 제품을 말한다. 블록 내부에 빛과 색, 소리 등에 반응하는 센서를 넣어 상황에 맞게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이처럼 가전·전자 기업들의 무대였던 CES에 올해는 전통의 장난감 회사 레고가 깜짝 등장해 기술력을 과시했다. 해외 테크 매체들은 이를 두고 “레고의 디지털 혁신은 창의적 사고만 있으면 전통적 제조 기업도 충분히 디지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50년 만의 혁신...“우리도 테크 기업”

레고의 스마트 브릭은 또 한 번 인류의 놀이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이 기술은 1978년 레고 미니피겨가 처음 등장한 이래 레고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진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골딘 CPO는 스마트 브릭이 ‘미니피겨’ 탄생 이후 약 50년 만의 가장 큰 혁신이란 점을 내세웠다. 미니피겨는 레고를 상징하는 노란색 사람 모양의 작은 인형을 말한다.

레고의 역사는 90여 년 전인 193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 빌룬의 작은 목공소로 출발한 레고는 1958년에 접착제 없이도 단단하게 조립되는 블록 조각을 세상에 내놓으며 목공소에서 ‘레고 중심의 회사’로 탈바꿈한다. 이후 1978년 레고 미니피겨가 나오며 아이들은 역할극을 통해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놀이 단계를 맞이했다. 레고 측은 이번 스마트 브릭이 이와 맞먹는 수준으로, 거의 반세기 만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혁신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은 아니다. 레고는 이미 아이들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내는 흐름을 읽고 있었다. 그 결과 등장한 전략이 바로 디지털과 물리적 놀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략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아이들이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해 디지털 세계에 몰입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됐으니, 이를 거스르기보다는 기술의 혁신을 오프라인 환경의 놀이로 가져와 새로운 차원의 놀이 문화를 창조하자는 차원이다. 레고의 최고경영자(CEO) 닐스 크리스티안센은 “9~12세 아이들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내고 있는 만큼 디지털과 현실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경험을 더 많이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레고는 이미 2022년 이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수를 세 배로 늘렸고,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와 제휴를 맺기도 했다.

이번 스마트 브릭 역시 이런 장기 전략의 결과물이다. 실제로 골딘 CPO는 “사실 이 프로젝트(스마트 브릭)는 8년 전에 시작됐다”면서 “정말 훌륭한 혁신을 통해 준비가 완료됐기 때문에 이번에 (CES를 통해) 소개하게 됐다”고 했다.

◇이야기가 담긴 협업

레고가 단순한 완구 회사를 넘어 꾸준히 성장해온 비결로는 디지털 혁신과 함께 ‘이야기의 힘’을 믿어온 전략이 꼽힌다. 실제로 레고는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과 협업해 ‘레고 스타워즈’ ‘레고 해리포터’ 시리즈를 선보이며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해 왔다.


최근 레고 실적을 끌어올린 1등 공신 가운데 하나는 F1(포뮬러원)이다. 레고 그룹은 지난해 F1 월드 챔피언십 시즌 개막에 맞춰 ‘레고 스피드 챔피언 F1’ 시리즈를 출시했다. 각 팀의 고유한 레이스카와 팀 유니폼을 입은 미니피겨로 구성된 이 제품들은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 레이싱 팬까지 끌어들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꽃다발을 레고로 표현한 ‘레고 보태니컬’, 세계 각국 도시 풍경을 구현한 ‘레고 시티’ 등 자체 개발 및 라이선스 테마 제품들까지 인기를 얻으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전했다. 발렌타인데이 등 특별한 날에 레고 보태니컬 세트가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어린이 소비층만 주요 타깃으로 한 게 아니라 다양한 세대와 취향의 고객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해석이다.

아울러 높은 인플레이션이 다소 진정되면서 소비자들이 필수품이 아닌 장난감과 같은 품목에도 다시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는 점이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소비재 시장 조사 기관 서카나에 따르면 세계 장난감 시장은 지난해 상반기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이처럼 ‘이야기를 입힌 제품 전략’과 시장 환경이 맞물리면서 레고의 실적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레고의 실적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12% 늘어난 346억 덴마크크로네(약 7조9000억원)를 기록했다. 상반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이다.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도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약 10% 늘어난 90억 덴마크크로네를 기록했다. 크리스티안센 CEO는 실적 발표에서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모두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아직 연간 실적이 최종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레고의 지난해 한 해 전체 매출도 전년 대비 5~7% 정도 성장했을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플라스틱이지만…

레고는 자사 제품의 ‘약점’으로 꼽혀온 소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환경 혁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레고 블록이 기본적으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환경 악화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이를 개선하겠다는 뜻이다. 앞서 영국 플리머스대 연구진이 2020년 환경 학술지 ‘환경오염’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레고 블록이 바다에서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100년에서 최대 1300년까지 걸릴 수 있다고 추정됐다. 영국 남서부 해안에서 발견된 페레고 조각 50개를 비교적 깨끗하게 보존된 동일 제품과 크기와 무게 등을 비교·분석한 결과 내린 결론이다.

이에 레고는 제품에 더 친환경적인 소재를 적용해 환경 영향을 줄이겠다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원유 기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재생 가능하거나 재활용된 소재로 만든 수지를 점차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레고의 지난해 상반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회사는 지속 가능한 원료로 만든 소재 구매를 전년 동기 대비 두 배로 늘렸다. 예를 들어 폐어망과 밧줄, 엔진오일을 재활용해 만든 새로운 소재를 레고 자동차 타이어에 사용하고, 바이오 폐기물에서 나온 원료를 미니피겨 손처럼 단단한 부품에 적용할 계획이다. 레고는 이를 통해 지난해 연간 목표였던 ‘구매하는 소재의 60%를 지속 가능한 원료로 조달한다’는 목표를 차질 없이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크리스티안센 CEO는 실적 발표에서 “레고는 ‘전 세계 아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성장하도록 돕는다’는 사명에 계속 집중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다음 세대가 건강한 지구를 물려받도록 하는 것도 포함된다”며 “현재와 미래를 위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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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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