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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신작과 생이별’ 김환기…브라질 흘러간 그림들의 행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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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신작과 생이별’ 김환기…브라질 흘러간 그림들의 행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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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14점의 유화 작품 가운데 일부인 ‘에코(Echo)-1’. 가나문화재단 제공

김환기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14점의 유화 작품 가운데 일부인 ‘에코(Echo)-1’. 가나문화재단 제공


1963~1965년 잇따른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은 오십줄 접어든 김환기 작가에게 미국 뉴욕 진출의 행운과 추상 작업의 심화란 성과를 안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신작과 영영 생이별하는 불운의 빌미 또한 낳게 되었다.



김환기는 이주 직후 뉴욕에서 수개월간 제작한 추상 작품 14점을 1965년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다시 출품해 특별실에서 단독 전시했다. 지난해 3~4월 가나아트센터에서 기획전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전을 꾸린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논고를 보면,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김환기는 비경쟁 작가 자격으로 14점을 출품했다. 당시 도록을 보면, 낸 작품들은 에코 연작에서 보이듯 십자 형식으로 화면을 가르고 길쭉한 세로줄로 울림을 표현하는 등 본격적인 추상회화 단초를 드러냈다. 1970년대 뉴욕 시절 대표작인 전면 점화 이전의 초기작들로, 서정적인 문인 취향의 구상 형식에서 순수 추상으로 진입하는 초기 사례라고 윤 전 관장은 짚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가로 세로로 선과 점의 윤곽이 나타나는 1965년 출품작들은 김환기 화풍의 원숙한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의 푸른빛 전면 점화로 나아가는 디딤돌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환기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유화 ‘에코-1’ 캔버스 뒷면. 작품 제목과 보험 가격, 뉴욕 발송처 등의 작품 정보를 프린트한 종이쪽이 붙어있다. 가나문화재단 제공

김환기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유화 ‘에코-1’ 캔버스 뒷면. 작품 제목과 보험 가격, 뉴욕 발송처 등의 작품 정보를 프린트한 종이쪽이 붙어있다. 가나문화재단 제공


특히 지난해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전에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특별전 출품작 14점의 일부로 처음 공개된 ‘에코(Echo)-1’은 김환기의 뉴욕 시대 초창기를 대표하는 ‘에코’ 연작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14점 전체의 의미를 대변하는 핵심적 작품으로 꼽힌다. 캔버스 뒷면에 비엔날레 출품 당시의 작품 제목과 보험 가격, 뉴욕 발송처 등의 작품 정보를 프린트한 종이쪽(태그)이 그대로 붙어있고,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이 1985년 뉴욕에 거주하던 작가의 부인 김향안한테서 사들여 국내로 들여온 내력도 확인되는 까닭이다. 지금도 ‘에코-1’을 소장하고 있는 이 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시 내력을 털어놓으면서 증언했다. “당시 ‘에코’ 연작 작품들을 각각 1만5000달러의 균일가에 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른 연작들보다 ‘에코-1’만 크기가 훨씬 작고 이미지도 단순하다고 했더니 김향안 여사가 ‘중요한 작품이니 잘 모르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셨어요. ‘에코-1’ 화폭에 그려진 가로 세로의 선과 점에서 뉴욕 시절 김환기 추상회화의 모든 것이 시작됐다는 말씀이 기억나네요. 그 선과 점이 바로 하늘과 땅, 사람, 곧 천·지·인(天·地·人)을 뜻한다고 하시더군요.”



김환기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14점의 유화 작품 가운데 일부인 ‘에코-3’. 가나문화재단 제공

김환기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14점의 유화 작품 가운데 일부인 ‘에코-3’. 가나문화재단 제공


김환기는 국제무대 전시가 하늘의 별따기였던 당시 한국 현실에서 일반 작가는 꿈도 못 꾸던 비엔날레 연속 출품의 특전을 누리면서 뉴욕 시절 초창기 역작들을 상파울루에 공들여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다른 생업도 하며 작품 활동을 부지해야 했던 작가는 남미를 오가는 거액의 작품 운송료·보관료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작품 회수는 제쳐두고 일단 비엔날레 무대에 자신의 화풍을 널리 알려보자는 심산으로 전시를 결행했던 것이다. 결국 대금을 못내 출품작들은 경매 처분되는 비극을 겪는다.



‘이른 봄’이란 제목 아래 크고 작은 점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찍은 초기 점화 출품작 한점은 전시 직후 상파울루시 미술관에 기증하겠다는 뜻이 받아들여져 현지에 남게 됐다.(최근 환기미술관이 현지에 확인한 결과 미등록 상태로 확인돼 현재 작품이 어디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다른 작품들은 뉴욕 항구로 왔으나 세관 창고에 2년 넘게 압류되는 신세가 됐다. 그러다 경매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 경위를 잠자코 지켜봐야 했으니 작가의 마음은 오죽 쓰라렸을까. 실제로 김환기는 1968년 3월7일치 일기에 ‘오늘 내 작품 13점 경매하는 날. 65년 상파울루에 갔던 것’이라고 담담하게 적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석달 뒤엔 경매 처분된 13점을 피터라는 미국 지인이 낙찰받아 입수했음을 알고 빼앗긴 작품들을 실견까지 하게 된다. 1968년 6월21일치 일기에 당시 상황이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김환기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14점의 유화 작품 가운데 일부인 ‘에코-9’. 가나문화재단 제공

김환기가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14점의 유화 작품 가운데 일부인 ‘에코-9’. 가나문화재단 제공


‘참 세상은 재미난다. 우연히 알게 된 피터가 며칠 전 오늘이면 깜짝 놀랄 일이 있을 거라 했다. …그래 오피스에 가서 놀랄 일을 보자고 했다. 상파울루 65년 출품작 13점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터가 경매에서 산 거다. 얼마나 통쾌한 일일까. …누구건 전 작품을 갖기를 바라던 거다. 이로 인해서 피터가 환기갤러리를 가을부터 개설한다고 한다.’



작가가 내심 고대했을 미국 지인의 환기갤러리는 끝내 개설되지 않았다. 이후 김환기는 1974년 작고한다. 이듬해 김향안은 김환기의 점화를 중심으로 50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을 제13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특별 전시로 기획하면서 10년 전 인연을 되살렸다. 하지만 1965년 상파울루 출품작 컬렉션 13점의 구체적 행방은 여전히 묘연했다. 김환기 사후 부인 김향안이 강한 의지를 갖고 김환기의 미국 지인한테서 컬렉션 대부분을 입수해 관리하다 1980년대 이후 화상들의 중개를 거쳐 국내 유력 재벌가 총수 수중에 작품들이 넘어갔고, 그 총수가 가족들에게 고루 나눠줬다는 등의 풍문이 극소수 화랑가 관계자들 사이에 돌았다. 하지만 구체적 입수 경위나 소장처는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특별전시 출품작 14점의 도상을 집약한 김환기의 드로잉 작품. 노형석 기자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특별전시 출품작 14점의 도상을 집약한 김환기의 드로잉 작품. 노형석 기자


이런 상황에서 김환기의 브라질 컬렉션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촉발시킨 것이 지난해 3~4월 김병기(1916~2022) 화백 3주기를 맞아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차린 특별전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였다. 김병기가 커미셔너를 맡았고 국제전 최초의 한국인 심사위원이 되는 기록까지 세웠던 당시 비엔날레 정황들을 복기한 이 전시에서 기획자이자 미술사가인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1965년 출품한 김환기의 유화 ‘에코’ 연작 3점을 발굴해 공개한 것이다.



신세계그룹과 가나아트갤러리가 소장한 것으로 확인된 이 세 작품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근현대 미술사학계에서 다른 작품들의 행방도 추적하는 퍼즐 찾기가 시작됐다. 아쉽게도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특별전 출품작들을 찍은 전시장 사진은 남은 것이 없다. 다만 당시 출품을 앞두고 사전 전시 설계도처럼 출품작 14점의 도상을 작가가 집약해 그린 종이 드로잉만 미술관 소장품으로 전하고 있다. 이를 단서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환기미술관은 본격적인 추적 작업을 벌이는 중이다.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특별전 당시 김환기가 직접 쓰고 서명한 전시 서문. 현재 환기미술관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특별전 당시 김환기가 직접 쓰고 서명한 전시 서문. 현재 환기미술관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노형석 기자


일단 수개월간의 탐문 결과 1984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에 나왔던 당시 호암미술관 소장 1965년 작 ‘무제’와 2023년 호암미술관 회고전에 공개됐던 석점, 리움·개인 소장의 ‘에코’ 연작 두점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새벽 #3’가 1965년 상파울루 출품작이란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새벽 #3’는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단일 작품으로는 역대 최고가인 13억원에 구입해 이듬해 소장품 기획전에 내보이며 화제를 모았는데, 상파울루 출품 컬렉션의 일부라는 사실을 미술관이 처음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관 역대 구입가 중 가장 높은 값인 13억원에 매입해 화제를 모았던 1965년 김환기의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 ‘새벽 #3’(1964~1965). 2023년 호암미술관 회고전에도 나왔으나 상파울루 출품 내력은 일체 언급되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관 역대 구입가 중 가장 높은 값인 13억원에 매입해 화제를 모았던 1965년 김환기의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 ‘새벽 #3’(1964~1965). 2023년 호암미술관 회고전에도 나왔으나 상파울루 출품 내력은 일체 언급되지 않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023년 호암미술관 회고전은 역대 가장 큰 규모의 김환기 전시회로 초창기 화력부터 말년의 푸른빛 점화 대작들까지 일목요연하게 공개하면서 국민 화가임을 각인시켰지만, 작가의 존재를 국제무대에 처음 알린 상파울루 출품작들의 실체와 행방에 대해 미술관 쪽은 어떤 언급조차 하지 않아 배경을 놓고 궁금증을 일으킨다. 어쨌든 1965년 특별전 직후 상파울루 미술관에 기증했으나 관련 기록이 사라져 미아가 되어버린 ‘이른 봄’까지 포함하면 7점의 실체와 행방의 윤곽은 어느 정도 드러난 상황이 됐다. 하지만 다른 7점은 국내 다른 소장가 수중에 있지 않을까 추정할 뿐 소재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65년 상파울루 특별전 출품작 14점 가운데 당시 현지 미술관에 기증했으나 현재 소재를 알 수 없는 ‘이른 봄’의 세부. 환기미술관 제공

1965년 상파울루 특별전 출품작 14점 가운데 당시 현지 미술관에 기증했으나 현재 소재를 알 수 없는 ‘이른 봄’의 세부. 환기미술관 제공


새해 벽두까지 열리고 있는 환기미술관의 신소장품전은 김환기와 브라질의 ‘커넥션-컬렉션’의 연장선상에서 브라질 여성 제자 모레노의 전 소장품과, 김환기에게 1963년 회화 부문 명예상을 안겨준 ‘섬의 달밤’, 회고전에 함께했던 ‘산월’ 등을 내걸었다. 상파울루 아카이브 자료와 김환기·김향안의 기록들도 망라해 내보이는 중이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과 특출한 인연을 맺은 글로벌 작가 김환기의 면모를 새롭게 되돌아보게 하는 자리가 됐다.



지금도 환기미술관에 액자로 끼워진 채 남아있는 1965년 상파울루의 특별실 전시 서문에 김환기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 작품에서 우리 고유의 노래-사계절의 달과 별, 때로는 해도 함께하는 고국 산천의 노래-가 드러나기 바란다. 이 12점의 작품(발송 과정에서 2점 추가해 14점)은 작년부터 뉴욕에서 완성한 최신작으로, 산울림과 각 계절의 새벽별, 때로는 몹시 추운 겨울날 이른 아침의 노래, 그리고 봄날의 뮤지컬 사운드와 같은 나의 노래다. 나는 우리 민족의 시를 캔버스에 담아내고 싶다….’



1984년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 회고전에 당시 호암미술관 소장품으로 선보였던 1965년 상파울루 출품작 ‘무제’. 당시 회고전 도록에 실린 도판의 세부다. 노형석 기자

1984년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 회고전에 당시 호암미술관 소장품으로 선보였던 1965년 상파울루 출품작 ‘무제’. 당시 회고전 도록에 실린 도판의 세부다. 노형석 기자


이 아름다운 소개글의 기억을 안고서 여전히 소재가 드러나지 않은 채 국내외 어딘가에 흩어진 1965년 상파울루 출품작들의 행방을 파악해 한자리에 모으는 건 환기미술관뿐 아니라 국내 미술사학계의 소중한 과제이기도 하다. 60년 전 김환기의 브라질 컬렉션이 새해엔 완전체로 다시 꾸려져 선보일 수 있기를.



2023년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김환기 회고전에 1965년 상파울루 출품작 전체 드로잉 한점과 출품작 일부인 에코 연작 두점이 전시된 모습. 노형석 기자

2023년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김환기 회고전에 1965년 상파울루 출품작 전체 드로잉 한점과 출품작 일부인 에코 연작 두점이 전시된 모습. 노형석 기자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이미지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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