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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1대당 탄소배출 연 12t 줄인다” 친환경 트럭 낳은 ‘기후 전문 투자’

동아일보 런던·서레이·노팅엄=유근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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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1대당 탄소배출 연 12t 줄인다” 친환경 트럭 낳은 ‘기후 전문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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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후테크’ 키우는 영국



기후테크 VC, 창업 초기~성숙기 지원

자금뿐 아니라 사무공간-교육-유통 도와



英정부의 세금 혜택에 손실 일부 지원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철학 살려
영국의 친환경 냉동운송 시스템 스타트업인 선스왑(Sunswap) 관계자가 지난해 12월 15일 런던 인근 서레이 본사에서 신제품 개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스왑이 아시아 언론에 이 공간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레이=유근형 특파원

영국의 친환경 냉동운송 시스템 스타트업인 선스왑(Sunswap) 관계자가 지난해 12월 15일 런던 인근 서레이 본사에서 신제품 개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스왑이 아시아 언론에 이 공간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레이=유근형 특파원


“영국이 아닌 다른 유럽 나라에 있었다면 우리의 아이디어는 아직 머릿속에서만 존재했을지 모른다.”

영국 친환경 냉동운송 시스템 스타트업인 선스왑의 공동 창업자 앤드루 스시스 최고경영책임자(COO)는 지난해 12월 15일 영국 수도 런던 인근 서레이의 연구개발(R&D)센터를 아시아 언론 최초로 동아일보에 공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선스왑이 2020년 창업 후 5년 만에 트럭 냉동운송계의 ‘게임 체인저’로 성장한 비결은 영국의 기후테크 전문 벤처캐피탈(VC)에 있다는 얘기다. 그는 “기후 테크 VC들은 아이디어의 싹을 틔우는 인큐베이팅 역할을 시작으로 실제 사업성을 갖춰 주는 액셀러레이팅까지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친환경 냉동운송 시스템 스타트업인 선스왑(Sunswap) 관계자가 지난해 12월 15일 런던 인근 서레이의 연구개발(R&D) 센터에서 신제품 개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스왑이 아시아 언론에 이 공간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레이=유근형 특파원

영국의 친환경 냉동운송 시스템 스타트업인 선스왑(Sunswap) 관계자가 지난해 12월 15일 런던 인근 서레이의 연구개발(R&D) 센터에서 신제품 개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스왑이 아시아 언론에 이 공간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레이=유근형 특파원


● 탈탄소 냉동 트럭으로 운송비 81% 감소

선스왑은 디젤 기반 냉동 시스템이 30년 이상 독주하던 트레일러 업계에서 ‘신성’으로 평가받는다. 전기와 태양광으로만 운영되는 ‘탈탄소 냉동 시스템’을 개발해 급성장하고 있다. 트레일러 상부와 측면에 고효율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를 설치하면 운행 중에도 자체적으로 충전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트럭 1대당 이산화탄소 배출을 연간 12t 줄일 수 있다. 냉동 트레일러 운영 비용도 디젤 차량 대비 최대 81%까지 줄었다. 선스왑은 영국을 넘어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국으로 판매처를 확장하고 있다.

선스왑은 앤드루 등 공동 창업자 3명이 시작한 작은 회사였다. 사업이 아이디어 단계에 불과했던 2020년 기후 테크 전문 VC ‘서스테이너블 벤처스’가 전격적으로 15만 파운드(약 3억 원)를 투자하면서 연구개발의 기반이 마련됐다.

서스테이너블 벤처스는 단순 자금 투자뿐 아니라 사무공간을 제공했다. 1년간 재무, 마케팅, 영업, 웹사이트 디자인 등 실무를 돕고, 다양한 교육을 지원했다. 축적된 기후 테크 컨설팅 노하우를 살려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고 유통망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했다.
알렉시스 그레논 오닉스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2월 17일 영국 노팅엄 본사에서 전 세계 풍력발전소 결함을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자동 점검하는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팅엄=유근형 특파원

알렉시스 그레논 오닉스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2월 17일 영국 노팅엄 본사에서 전 세계 풍력발전소 결함을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자동 점검하는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팅엄=유근형 특파원


● 기후 테크 VC의 전문성, 성공의 밑거름

사업이 물꼬를 트자 추가 투자가 이어졌다. 영국 유력 바클레이즈 은행, 정부 기후 펀드 ‘클린 그로스 펀드’, ‘브리티시 그로스 펀드’ 등이 투자를 결정했다. 쉘벤처스의 투자는 선스왑이 유럽 전역의 물류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선스왑은 유럽에서 인지도가 쌓이면서 네덜란드 벤처 캐피털인 무브 에너지의 투자도 얻어냈다.


투자는 ‘기술 혁신’으로 이어졌다. 투자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자체적인 시험 데이터가 쌓이면서 ‘데이터 기반 배터리 관리 소프트웨어 기술’까지 갖추게 됐다. 인공지능(AI) 데이터 기술을 도입해 시간이 지나면서 배터리 기능을 최적화시키는 시스템까지 마련했다. 선스왑 관계자는 “기존 디젤 기반 냉동 운송 체계는 성능이 떨어지고 고장이 나도 왜 그런지 알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배터리와 냉동 수준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3명이 창업을 꿈꿨던 회사는 현재 직원 100명인 중견 기업으로 성장 중이다. 사무실 규모도 6배로 확장했다. 앤드루 COO는 “냉동 트럭업계의 테슬라를 꿈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VC가 스타트업을 직접 인수하며 기술 혁신이 가속화된 사례도 있다. 영국 노팅엄에 본사를 둔 풍력발전기 예측 정비 기업 오닉스는 2024년 세계 금융그룹 맥쿼리가 지분을 100% 확보하며 기술 혁신이 속도를 냈다.


오닉스는 사전에 고장 가능성을 예측하기 힘들고, 한번 고장 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는 풍력발전 터빈을 실시간 점검하는 회사다. 기존에는 풍력발전의 고장 탐지와 진단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맥쿼리의 인수 뒤 감속 운전 여부, 수리 시점, 자원 투입 계획까지 AI로 운영되는 솔루션으로 진화했다. 단순 경보 시스템을 넘어 풍력 발전소의 총운영비까지 줄이는 시스템으로 발전한 것이다. 알렉시스 그레논 오닉스 최고경영자(CEO)는 “맥쿼리의 투자로 자원이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인재들이 합류하면서 개발 역량이 급속도로 커졌다”고 설명했다.
알렉시스 그레논 오닉스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2월 17일 영국 노팅엄 본사에서 전 세계 풍력발전소 결함을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자동 점검하는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팅엄=유근형 특파원

알렉시스 그레논 오닉스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2월 17일 영국 노팅엄 본사에서 전 세계 풍력발전소 결함을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자동 점검하는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팅엄=유근형 특파원


● VC의 투자 손실 지원하는 영국 정부

유럽 지역에서 영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상대적으로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혁신 금융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초기 스타트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SEIS (Seed Enterprise Investment Scheme) 제도가 대표적이다. 영국 정부는 SEIS를 통해 개인 투자자가 소규모 기업에 투자하면 최대 50%까지 소득세를 공제해 준다. 투자 주식을 3년 이상 보유하면 양도소득세를 면제해 주고, 투자에 실패해도 손실을 부분적으로 보전해 투자 리스크를 낮춰준다. 스타트업 컨설팅 전문 기업 도헤 글로벌의 율리아나 이사는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영국의 스타트업 투자가 활발한 건 리스크가 낮기 때문”이라며 “아이디어 단계에서도 민간 VC들이 망설임 없이 투자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을 키우는 제도들도 영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강점으로 평가된다. 영국 정부의 연구개발 보조금 지원 제도인 ‘이노베이트 UK’은 초기 개발 단계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지만, 지분을 취득하지 않는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실제 투자에 적용하는 셈이다.

영국 정부가 기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안정적 투자 환경을 조성하는 비결이다. 오닉스 관계자는 “미국은 정권에 따라 기후 정책이 달라지는데, 영국은 5년 단위 탄소 감축 예산이 법으로 이미 규정돼 있어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런던·서레이·노팅엄=유근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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