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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예감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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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예감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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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양해각서(MOU) 체결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양해각서(MOU) 체결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길윤형│논설위원



이토 스케유키(1843~1914) 사령관이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청의 북양함대와 조우한 것은 평양성 전투가 끝난 지 불과 이틀 뒤인 1894년 9월17일이었다. 전날 오후 5시께 황해도 장산곶 주변의 정박지를 출발한 연합함대는 북서쪽에 자리한 하이양다오(해양도) 쪽으로 나아가다 오전 10시23분 북동쪽 수평선에서 상대 함선이 내뿜은 검은 연기를 발견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두 함대는 압록강 하구 부근 해역에서 근대 해전사에 길이 남을 대결전에 돌입하게 된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쪽이 서해의 제해권을 확보하며 마침내 한반도를 손아귀에 틀어쥐게 될 터였다. 상대를 향해 달려들던 북양함대의 기함인 정원(배수량 7335t)이 오후 12시50분께 5800m 정도 떨어진 연합함대의 함선 요시노(4216t)를 향해 30.5㎝ 주포로 첫 포격을 가했다. 황해해전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실제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당대 동양 최대의 전함인 정원·진원을 갖춘 북양함대가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듬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딩루창(1836~1895)의 북양함대가 배를 쭉 옆으로 배치한 뒤 일제히 적에게 달려드는 ‘횡진’(line abreast)을 채용한 데 견줘, 연합함대는 함선을 앞뒤 일렬로 늘어놓는 ‘단종진’(line ahead)을 택했다. 승부를 가른 것은 배의 속도였다. 쓰보이 고조가 이끄는 선두 네 척으로 구성된 유격대가 빠른 속도로 북양함대의 정면을 지나쳐 오른쪽으로 크게 선회하는 데 성공하며 승부가 갈렸다. 그로 인해 북양함대의 최우익에 자리한 양위와 초용이 전투가 시작된 지 30여분 만에 상대의 집중포화를 맞고, 결국 침몰했다. 전투 능력을 잃은 북양함대는 사령부가 위치한 산둥성 웨이하이웨이에 틀어박히게 된다.



중국인들은 이 싸움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8년 6월12월 옛 북양함대의 사령부를 방문한 뒤 “두껍고 무거운 역사의 문을 열고 전쟁이 주는 경고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스즈키 다카시 일본 다이토분카대학 교수의 역저인 ‘시진핑 연구’(2025)에 따르면, 그는 2017년 5월 해군의 대교(대령과 준장 사이 계급) 이상 고급 장교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갑오전쟁(청일전쟁)의 예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었다. 북양함대의 전멸로 우리 나라의 바다를 막는 대문이 부서지고, 침략자가 마음대로 들락날락거리며 우리 영토를 침략·점령했다. 이후 체결된 마관 조약(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통치를 승인하고, 랴오둥반도, 대만성, 펑후열도를 할양했다. 대만 문제는 실제로 이때부터 화근이 심어지게 된 것이다. 이 역사는 마음속 깊이 상처를 남긴 문제다.”



문제는 이런 ‘역사적 트라우마’를 간직한 중국이 앞으로 만들어갈 국제 질서의 모습이다. 2013년 3월 중국의 1인자가 된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일관된 국가 목표를 제시해왔다. 그리고 이 ‘위대한 부흥’의 구체적인 모습은 아마도,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청일전쟁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려면 대만을 흡수해 ‘통일’을 완수하고, 옛 속방이던 조선(한반도 전체)을 다시 중국의 세력권 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 그랬기에 시 주석은 2017년 4월6~7일 난생처음 얼굴을 마주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이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는 ‘극언’을 쏟아냈던 것은 아닐까. 동아시아 역사에 별다른 견식이 없었을 트럼프 대통령마저 며칠 뒤인 12일치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10분 정도 얘기를 듣고 나는 이게 쉽지 않은 문제임을 깨달았다”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결국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라”는 시 주석의 5일 주문은 결코 예사로 넘길 말이 아니다. 어느새 G2라 불리게 된 미·중이 태평양을 분할하는 ‘그랜드 바겐’을 결행한다면, 자신들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중국인들의 정념과 민주 국가의 시민으로 우리 삶을 개척해온 한국인의 정체성이 정면충돌하게 된다. 저항한다면, 지금 일본이 받는 것보다 더 심한 수모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방중·방일은 매우 성공적이었지만, 동아시아 전체가 19세기 말과 같은 살벌한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 묘한 감정을 일단 ‘음울한 예감’이란 말로 표현해두겠다.



charisma@ha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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