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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바둑의 영웅’ 녜웨이핑 9단, 향년 74세 일기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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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바둑의 영웅’ 녜웨이핑 9단, 향년 74세 일기로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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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74새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녜웨이핑 9단.  한국기원 제공

향년 74새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녜웨이핑 9단. 한국기원 제공


중국 바둑의 전설 녜웨이핑 9단이 향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중국바둑협회는 15일 “협회 명예 회장이자 중국 바둑계 대부로 불리는 녜웨이핑이 전날 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52년 중국 허베이성 선저우에서 태어난 녜웨이핑은 중국 바둑 역사를 논할 때 절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9살 때 바둑을 시작한 녜웨이핑은 1975년 중국바둑선수권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79년까지 5번 우승했고, 1982년에는 ‘입신(9단)’의 경지에 올랐다.

녜웨이핑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1985년부터 열린 중·일 슈퍼대항전이다. 녜웨이핑은 1회부터 4회 대회까지 무려 11연승을 질주하며 ‘철의 수문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현대 바둑의 중심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1회 대회 때 일본 기사들이 “지고 돌아오면 삭발을 하겠다”고 하자 “삭발을 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응수한 뒤 일본 기사들을 모조리 제압, 기어코 삭발을 하게 만든 일화는 유명하다. 이는 지금도 일본 바둑 최대 흑역사로 남아있다.

향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녜웨이핑 9단.  한국기원 제공

향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녜웨이핑 9단. 한국기원 제공


이런 녜웨이핑이 한국 팬들에 친숙해진 계기는 1989년 열린 제1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이다. 당시 결승 5번기에서 조훈현 9단을 상대한 녜웨이핑은 5국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했다. 이 일을 시작으로 유창혁 9단, 이창호 9단, 이세돌 9단 같은 천재 기사들이 연이어 세계 무대를 제패하면서 한국 바둑은 세계 중심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1986년 중국 바둑국가대표팀 총감독을 맡기도 했던 녜웨이핑은 이후 후학 양성에도 힘을 써 마샤오춘 9단, 창하오 9단, 구리 9단 등 걸출한 기사들을 길러내기도 했다.


중국 바둑 부흥의 핵심 인물인 녜웨이핑은 바둑을 좋아하는 시진핑 주석과의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1966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문화대혁명 시절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던 둘은 대학 졸업 후에도 축구 경기를 같이 보러 다니는 등 친분을 유지했다. 시진핑 주석은 공식 석상에서 녜웨이핑을 만날 때마다 ‘중국 바둑의 자존심’, ‘중국 문화의 대표 인물’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젊은 시절의 녜웨이핑 9단.  한국기원 제공

젊은 시절의 녜웨이핑 9단. 한국기원 제공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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