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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삼국지’ 개막…온화한 정명훈 vs 지적인 아바도 vs 뜨거운 츠베덴 [2026 클래식]

헤럴드경제 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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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삼국지’ 개막…온화한 정명훈 vs 지적인 아바도 vs 뜨거운 츠베덴 [2026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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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의 KBS교향악단은 ‘온화한 관조’
국립심포니가 품은 아바도 ‘지적인 탐구’
3년차 서울시향의 츠베덴 ‘뜨거운 집념’
지휘자 정명훈이 KBS교향악단의 제10대 음악감독으로 선임됐다. [KBS교향악단 제공]

지휘자 정명훈이 KBS교향악단의 제10대 음악감독으로 선임됐다. [KBS교향악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2026년 한국 클래식 음악계는 바야흐로 ‘거장 삼국지’가 개막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을 맡았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이탈리아 음악 명가 ‘아바도 가문’을 잇는 로베르토 아바도를 품으면서다. 여기에 3년 차를 맞은 얍 판 츠베덴 감독의 서울시향은 ‘츠베덴 사운드’가 안착을 선언했다.

포디움에 선 세 거장과 함께 한국 클래식 지형도는 다시 그려지고 있다.

온화한 관조 vs 지적인 탐구 vs 뜨거운 집념
국내 대표 3대 악단은 올 한 해 각기 다른 키워드로 정체성을 재정립한다.

‘거장 삼국지’의 중심에 선 첫 퍼즐의 주인공은 단연 정명훈. ‘오페라 본토’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가 선택한 최초의 동양인 음악감독(2027~2030년)이 될 그는 올해부터 KBS교향악단도 함께 맡으며 역설적으로 ‘거창한 프로젝트의 부재’를 선언했다. 대신 ‘창단 70주년’이라는 무게를 안고 있는 이 악단과 함께 ‘사랑과 경험의 공유’라는 인본주의 철학을 내세웠다.


취임을 앞둔 정 감독은 “오케스트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올림픽 팀’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보단 음악가들을 더 사랑해 주고 단원들이 이 일을 더 사랑하게 만들도록 돕겠다”며 온화한 리더십을 예고했다. 무엇보다 정 감독은 “KBS교향악단은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이고, 그렇게 시작된 만큼 그래야만 한다”며 “그것을 목표로 삼아 계속 열심히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가 밀라노로 향할 때, 밀라노가 자랑하는 ‘음악 DNA’는 한국으로 왔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8대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로베르토 아바도 이야기다. ‘아바도 가문’의 유산을 품은 그는 취임 첫 해 ‘이성적 낭만’의 시대를 천명했다.

아바도 감독은 ‘청취의 미덕’을 강조하며 “지휘자와 단원 사이의 대화, 관객과의 소통이 음악의 본질이자 특수성”이라며 “‘극장 오케스트라’이자 심포니 오케스트라라는 이중 정체성을 유연하게 키워갈 것”이라고 했다.


임기 3년 차가 된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은 지난 시간의 호흡을 발판 삼아 서울시립교향악단에 ‘뜨거운 집념’을 이식 중이다. 올해에도 강력한 리더십으로 ‘츠베덴 사운드’를 더욱 굳건히 다진다.

츠베덴 감독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도약하기 위해선 렘브란트 같은 무거운 색채도, 반 고흐의 화려한 색채도 다양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며 올해 음악적 비전을 보다 구체화할 전망이다.

말러로 대동단결한 2026년

로베르토 아바도를 8대 음악감독으로 맞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11일 이탈리아 음악으로 신년 음악회를 꾸민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로베르토 아바도를 8대 음악감독으로 맞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11일 이탈리아 음악으로 신년 음악회를 꾸민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이와 함께 올해는 ‘대작 전문’ 말러의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길고 방대한 데다, 어렵기로 정평이 난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최근 KBS교향악단과 서울시향의 중심 레퍼토리로 자리했다. 특히 4번 교향곡은 두 악단이 선택한 ‘필수템’이다.

정명훈 감독은 ‘말러 시리즈’의 연속성을 강화한다. 지난해 계관 지휘자로 KBS교향악단과 함께 말러 1, 2번을 연주한 데 이어 올해는 4번(10월), 5번(3월)으로 관객과 만난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와 너그러움이 묻어난 그의 말러는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소프라노 크리스티아네 카르크와 함께 또 한 번의 예술적 성취를 만들어간다. 5월에는 객원 지휘자 요엘 레비와 함께 6번을 연주한다.

츠베덴과 서울시향도 이번 시즌 핵심 과제로 ‘말러 전곡 녹음 프로젝트’를 선택했다. 지난 2024년 1월 취임 연주회 당시 말러 교향곡 1번 연주를 녹음하며 이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린 서울시향은 지난해 2, 7번에 이어 올해는 4, 6번으로 향한다. 4번(11월)에선 소프라노 황수미가 함께 한다. 6번(3월)은 지난해 5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말러 페스티벌 당시 츠베덴 감독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해 호평받았다.

오페라의 미학 vs 문학의 선율 vs 모차르트 축제
그렇다고 비슷한 공연만 내오는 건 아니다. 각 악단의 특성이 뚜렷한 만큼 ‘3악단 3색의 무대’가 펼쳐질 전망이다. 정명훈 감독의 경험적 리더십은 따뜻한 관조로 악단을 물들이고, 아바도 감독의 지적인 탐구는 문학의 선율을 노래한다. 츠베덴 감독의 정밀한 사운드의 기반을 다질 또 다른 음색도 기다린다.

클래식 음악계 관계자는 “각기 다른 세 음악감독의 철학이 투영된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통해 한국 오케스트라가 높은 수준의 음악성을 이뤄낼지 지켜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라고 했다.

우선 정명훈을 얻은 KBS교향악단은 올해 오케스트라 중심의 ‘오페라 미학’을 다시 한번 구현한다.

1997년 베르디 ‘오텔로’를 통해 한국 최초로 ‘콘서트 오페라’를 선보인 정명훈 감독은 29년 만에 KBS교향악단과 오페라 무대를 만든다. KBS교향악단은 “오페라 지휘자로서 정명훈의 예술적 통찰과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앙상블이 결합된 무대가 될 것”이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메조-소프라노 알리사 콜로소바 (카르멘), 테너 갈레아노 살라스 (돈 호세), 소프라노 김순영 (미카엘라), 베이스 바리톤 김병길 (에스카미요) 등이 함께한다.

KBS교향악단은 정명훈뿐만 아니라 엘리아후 인발의 쇼스타코비치 13번 ‘바비 야르’, 마렉 야노프스키의 브루크너 4번 등 거장들의 시그니처 레퍼토리를 전면에 배치하며 70년의 역사를 집대성하는 화려한 라인업을 완성했다.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서울시향 제공]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서울시향 제공]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로베르토 아바도 감독과 함께 ‘이성적 낭만’의 시대를 연다. 그의 시즌은 초기 낭만주의, 이탈리아 음악, 20세기 교향악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정교하게 설계됐다. 멘델스존과 슈만으로 대표되는 정제된 형식미가 아바도의 구조적 음악관과 만나 국립심포니와 명징한 이탈리아 사운드를 가꿔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괴테와 음악’, ‘셰익스피어와 음악’ 등 문학적 가이드라인을 따라 3년의 임기를 정교하게 설계했다. 아바도 감독은 “독일과 영국의 위대한 두 문학가와 음악, 이들에게 영감을 받은 방대한 음악을 3년간 조금씩 나눠 만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올해는 상주 작곡가로 그레이스 앤 리를 발탁한 만큼 한국적 정체성을 담은 신작을 세계 초연하며 현대음악 레퍼토리 확장에도 앞장선다.

‘빛과 그림자’를 주제로 한 서울시향의 2026년은 말러를 비롯해 모차르트, 브루크너 등 고전과 현대를 아우른다. 올해 핵심 과제는 오는 10월 2주간 이어질 ‘모차르트 페스티벌’이다. 르노 카퓌송, 유센 형제 등 정상급 아티스트들과 함께 교향곡 41번 ‘주피터’와 ‘레퀴엠’을 연주하는 축제의 장이다. 이와 함께 해설이 있는 ‘체임버 클래식스’를 통해 실내악의 정교한 매력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했다.

세 악단이 불러모은 ‘별들의 전쟁’
정명훈과 함께 KBS교향악단은 엘리아후 인발(쇼스타코비치 13번 ‘바비 야르’), 마렉 야노프스키(브루크너 4번), 요엘 레비(말러 6번), 장한나(베토벤 9번) 등의 지휘자 라인업을 구축했다. 협연자들도 화려하다. 정 감독의 취임 연주회(1월 16일)에서 함께하는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를 시작으로 ‘쇼팽 콩쿠르’ 준결승에 진출한 피아니스트 이혁·이효 형제(5월 28일), 브루스 리우(6월 18일), 김세현(8월 27일), 보리스 길트버그(9월 10일),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11월 28일) 등 다양하다.

국립심포니 역시 신임 감독을 등에 업고 다양한 협연자와 지휘자 라인업을 구성했다. 올라리 엘츠 지휘자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와 시벨리우스(3월 7일)를 들려주고, 한국인 지휘자 이승원은 첼리스트 알반 게르하르트와 바버 ‘첼로 협주곡’(5월 17일)을 펼쳐낸다. 아바도 감독은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과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9월 13일),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로 부소니(12월 3일)도 들려준다.

서울시향을 찾아올 특급 지휘자도 대기 중이다. 파리 오페라 음악감독과 빈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한 필리프 조르당(1월 29~30일), 독일 밤베르크 심포니 상임 지휘자로 16년 동안 활동한 뒤 현재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재직 중인 조너선 노트(6월), 헬싱키 필하모닉 명예 감독인 핀란드 출신 여성 지휘자 수산나 멜키(7월)를 비롯해 마르쿠스 슈텐츠와 한누 린투, 한국의 젊은 지휘자 최수열, 김선욱의 무대도 기다린다.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 알리사 사라 오트,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 첼리스트 한재민도 올해 서울시향과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