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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노무현의 꿈 ‘동북아 균형자’…이재명의 외교가 그 길을 걷고 있다

프레시안 황태규 우석대 미래융합대학장(전 청와대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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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노무현의 꿈 ‘동북아 균형자’…이재명의 외교가 그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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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규 우석대 미래융합대학장(전 청와대 비서관)]
대한민국 외교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일본을 찾았다. 두 나라를 연이어 방문한 것 자체가 중요한 메시지다. 세계가 흔들릴수록 외교는 상징이 아니라 구조가 되고, 그 구조는 결국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지금 한국은 ‘중간에 끼인 나라’가 아니라 ‘중심을 설계하는 나라’로 이동하고 있다.

이번 일본 방문은 특히 눈여겨볼 지점이 많다. 단순히 정상회담의 결과만이 아니다. 정상회담이 열린 장소, 그리고 그 장소가 품고 있는 역사적 맥락 자체가 이번 외교의 성격을 강하게 규정한다. 회담 장소로 선택된 나라현은 오래된 동아시아 교류의 원형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말 그대로 한일 교류의 상징지이며, 과거를 넘어 미래를 이야기하기에 가장 적절한 현장이다. ‘역사는 대립만으로 설명될 수 없고, 교류와 이동의 층위에서 다시 읽혀야 한다’는 메시지를 장소가 먼저 말해준다.

무엇보다 이번 방문이 던지는 핵심 키워드는 ‘미래’였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과의 관계를 둘러싼 ‘사과’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지만, 그 문제에만 갇히는 것 또한 경계했다. 그는 과거의 책임을 묻되, 동시에 다음 세대가 살아갈 시대의 질서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의 승리를 외교의 목표로 삼지 않고, 구조적 협력의 틀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관점에서 탄생한 것이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었다.

당시 균형자론은 오해도 많이 받았다.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자는 소극적 외교로 읽히기도 했고, 현실성이 부족한 이상론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다시 보면 그 핵심은 명료하다. 균형자론은 ‘중립을 선언하는 외교’가 아니라 ‘협력의 무대를 만드는 국가 전략’이었다. 갈등이 폭발하지 않도록 조정하고, 갈등이 협력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역할, 이것이 균형자의 본질이다.

오늘날 그 구상이 현실이 될 조건이 성숙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 한국은 중진국이었고, 동북아의 구조를 ‘설계’하기보다 ‘대응’해야 하는 입장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다르다. 이미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이며, 기술·문화·경제를 함께 보유한 강대국 대열에 올라와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은 이제 동북아 질서의 수동적 참가자가 아니라 능동적 설계자가 될 수 있는 위치에 들어섰다. ‘동북아 균형자’는 더 이상 꿈이 아니라 실천의 과제가 되었다. 외교는 이제 반응의 기술이 아니라 창조의 전략이 되어야 한다.

이번 일본 방문에서 보여준 장면들은 그 실천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외교는 때로는 공식 발언이나 문서보다, 정상들이 함께 만드는 ‘한 장면’이 더 큰 메시지를 전한다. 일본 정상과 함께 드럼을 연주하고, 중국 정상과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선물 받은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는 장면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동북아의 긴장된 공기를 완화하고, 신뢰의 접점을 넓히며,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외교적 언어다. 균형자는 갈등을 키우는 언어가 아니라 관계를 복원하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외교는 ‘동북아 균형자의 복귀’가 아니라 ‘동북아 균형자의 실현’에 가깝다.

그렇다면 동북아 균형자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동아시아 역사, 해석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
우리의 역사 서술은 지나치게 전쟁사 중심이다. 침략과 전쟁의 기억을 잊을 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진실을 잃는다. 동아시아는 오래전부터 인적·물적 교류가 밀도 높게 형성된 문명권이었다. 기술이 이동했고 학문이 이동했으며 신앙가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지식과 생활양식이 오고 갔고, 동아시아 문명의 공통 기반이 형성됐다. 이제는 분노와 증오의 역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교류를 통해 문명이 융성한 역사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것이 동북아 균형자론의 첫 출발점이다.

둘째, ‘공동의 문화유산’을 만들어야 한다.
동북아의 갈등은 정치적 선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화는 선언을 넘어선다. 한‧중‧일은 문화적 뿌리가 서로 얽혀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준 것이 있고, 서로에게서 받은 것이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또한 경쟁만 할 일이 아니라, 공통 기반을 가진 유산을 공동 등재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야 한다. 공동 등재는 단순한 문화행정이 아니라 동북아 협력의 신뢰를 제도화하는 작업이다. 한국이 중심이 되어 이 흐름을 주도할 수 있다. 경쟁의 논리로 문화가 분절될수록 갈등은 깊어지지만, 공동의 기억을 공유할수록 협력은 제도화된다.

셋째, ‘지역 외교’로 확장해야 한다.
국가 간 협력의 기반은 결국 사람과 생활 속에서 구축된다. 중앙정부 중심의 외교는 정교하지만, 국민의 삶으로 내려오지 못할 때 그 외교는 오래 가지 못한다.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양국간 공통의 관심사인 인구 감소 문제는 매우 상징적이다. 한국과 일본 모두 지방이 흔들리고 있다. 그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중앙의 보고서가 아니라, 지역과 지역이 직접 연결되는 교류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학생 교류, 수학여행, 지역 축제 연계, 대학·기업 간 공동 프로젝트 등은 지역이 외교의 주체가 될 때 훨씬 빠르게 확산된다. 이를 위해 출입국, 통관, 행정 지원 등에서 지역이 더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제도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지역 간 교류를 ‘부가적 활동’이 아니라 동북아 평화의 핵심 인프라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

결국 동북아 균형자의 과제는 한 가지로 모인다.
“대한민국이 평화를 말하는 나라를 넘어, 평화를 설계하는 나라가 되는 것.”

▲황태규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장. ⓒ

▲황태규 우석대학교 미래융합대학장. ⓒ


지금은 전 세계가 불안정하다. 특히 동북아는 언제든 긴장이 폭발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럴수록 한국은 단순히 강대국의 경쟁에 편승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협력을 촉진하고 갈등을 완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 중심에 서는 것이 바로 동북아 균형자의 역할이다. 균형자는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설 수 있는 판을 만들어 내는 국가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길을 먼저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제 이재명 대통령이 그 길을 실제로 걸어갈 조건을 얻었다.

오늘의 외교는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동북아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다.
우리는 그 시도가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국의 국익을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여는 길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

[황태규 우석대 미래융합대학장(전 청와대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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