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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양난 빠진 한은, 기준금리 5연속 동결

조선일보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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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양난 빠진 한은, 기준금리 5연속 동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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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금통위, 기준금리 연 2.5%로 유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15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하기로 했다. 한은은 지난해 5월 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후 8개월째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금통위 기준으론 5연속 동결이다.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이 이어지면서 시장에선 한은의 추가 금리 인하가 없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기준금리가 2.5%에 고정된 지금의 상황은 이 수준으로 경제가 잘 돌아가 바꿀 필요가 없는 ‘골디락(goldilocks·이상적 상태)’과는 거리가 멀다. 금리를 내리기엔 높은 환율과 진정되지 않는 부동산 시장이 발목을 잡고, 그렇다고 금리를 올리기엔 반도체 혼자 이끄는 한국 경제에 여전히 불안 요소가 많은 실정이다. 한은으로선 금리를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상태에 빠진 셈이다.

한은의 이번 통화정책방향 의결문 중 추후 금리 결정 방향에 대한 마지막 문구엔 ‘기준금리 인하’가 사라졌다. 지난해 10월 회의 때는 경제 여건을 점검하며 ‘기준금리 인하 시점과 속도’를 결정하겠다고 했다가 이 문구가 11월엔 ‘기준금리 인하 여부’로 바뀌었는데 이달 금통위에선 표현이 기준금리 인하 언급 없이 ‘(경제 상황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결정하겠다고만 언급했다. 이로써 한은 2024년 11월 이후 이어져온 금리 인하 사이클이 종료됐다는 전망이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고환율·고물가·부동산 부담 “내릴 수가 없다”

한은의 기준금리가 어려워진 배경엔 한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고환율과 고물가 있다. 지난해 9월 달러당 1400원을 넘어선 환율은 정부의 여러 조치에도 내려오지 않는 상황이다. 환율은 지난해 연간 평균 기준 사상 최고를 기록한 후 1월 들어서도 계속 올랐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구윤철 경제부총리를 만나 최근의 원화 약세가 과도하다고 발언한 후 15일 외환시장에선 달러당 환율이 12원 넘게 하락해 거래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달러당 환율은 1465원선을 오가고 있다.

높은 환율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한미 금리 역전 장기화 또한 금리 인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보다 안전한 미국의 금리가 더 높으면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며 원화 약세(환율 상승)가 심화할 위험이 커진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3.5~3.75%로 한국보다 1.25%포인트 높다. 지난해 한국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뿐 아니라 미국 채권도 많이 샀는데, 한은이 금리를 내리면 금리 차가 확대되며 더 많은 투자금이 미국으로 향할 가능성이 생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고환율이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안 그래도 높아진 물가가 더 오를 위험이 커졌다는 점도 부담이다. 지난달 수입 물가는 전월 대비 0.7% 오르며 6개월 연속 상승했다. 최근 유가가 내려간 영향으로 달러 등 계약 통화 기준 수입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4% 하락했지만 환율이 오르며 결과적으로 원화 기준 물가가 올라갔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 또한 전년 동월 대비 2.3%로 한은의 목표인 2%를 웃돌았다. 1년 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전망한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지난달 2.6%까지 올라갔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높으면 사람들이 추후 가격 상승을 우려해 소비를 당겨 하면서 물가가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


금통위는 기준금리 동결 결정 후 발표한 통화정책방향 자료에서 “앞으로 물가 상승률은 국제유가 안정세 등으로 점차 2% 수준으로 낮아지겠으나 높아진 환율이 상방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에도 꺾이지 않는 부동산 가격도 골칫거리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잇달아 대책이 나왔음에도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률은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3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은이 집계한 지난해 12월 ‘주택 가격 전망 소비자심리지수(CSI)’는 121(100 이상이면 상승 전망 우세)로 전월보다 2포인트 올랐다. 한은은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서울로의 쏠림이 심해지며 주택 가격 상승세가 잡히지 않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상황만 놓고 보면 한은이 금리를 분명히 내려야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못하고 동결만 반복하고 있다”며 “환율·물가·부동산 문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은의 금리 딜레마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도체 빼면 부진한 경제 “올릴 수가 없다”

금리 인하가 어려워졌다 해서 인상 여건이 조성된 것도 아니다. 인상을 못할 악재도 적지 않다. 최근 한국의 수출이 늘며 지난해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지만 거의 대부분을 미국 AI(인공지능) 산업 성장에 따른 반도체 호황이 이끌었다. ‘반도체 효과’를 걷어내고 나면 석유·화학, 철강, 건설 등 이른바 구(舊)경제 중엔 고전하는 업종이 적지 않다. 반도체는 올라가고 나머지는 내려가는 이른바 ‘K자형 회복’이다. 관세청이 집계한 연간 수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21.9% 증가한 반면 반도체를 제외한 상품의 수출은 미국 관세 인상 등의 영향으로 전년보다 1.0% 감소했다.

한국의 지난해 수출은 전년보다 늘었지만 반도체 부문을 제외한 수출은 오히려 줄었다. 사진은 최근 이날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수출용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뉴스1

한국의 지난해 수출은 전년보다 늘었지만 반도체 부문을 제외한 수출은 오히려 줄었다. 사진은 최근 이날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수출용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뉴스1


올해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좋아질 전망이라 하지만 이 또한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1.8%로 지난해 0.9%보다 높긴 하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인 2%보다 여전히 낮고, 이마저도 지난해 성장률이 워낙 부진한 데서 기인한 기저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1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당시 회의 때 “2026년 성장세 확대의 상당 부분이 2025년 저성장에 따른 기저효과에 기인하고 있고 반도체 이외 부문은 여전히 더딘 회복이 예상된다”는 의견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올해 신년사에서 “한국 경제는 전년보다 성장률이 높아질 전망이나 IT(정보기술) 부문을 제외하면 성장률이 1.4%로 나타나 부문 간 회복 격차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앞서 고환율이 수출 대기업의 수익을 늘리는 반면 원자재 수입이 많은 중소 기업엔 큰 부담이 된다는 점도 ‘K자형 회복’을 우려하는 원인으로 지목했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 총재는 당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8%로 예상되지만 IT 부문을 제외하면 성장률이 1.4%로 내려갈 전망"이라고 했다. /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이 총재는 당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8%로 예상되지만 IT 부문을 제외하면 성장률이 1.4%로 내려갈 전망"이라고 했다. /한국은행


가계 부채 규모가 세계 최대로 불어난 가운데 최근 대출 연체율이 올라가는 상황도 한은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지 못하는 요인이다.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 안 그래도 부진한 소비가 더 식으며 경기를 끌어내릴 위험이 커진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마지막 수치를 집계한 지난해 11월 대출 연체율은 0.58%로 같은 달 기준으론 2018년 이후 가장 높았다.

지난해 3분기 한국의 가계 대출은 약 1845조원으로 이 중 53.1%가 기준금리 인상에 영향을 받는 변동금리 대출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고 대출 금리가 이에 따라 상승할 경우 가계대출의 연간 이자 부담만 약 2조4500억원이 늘게 된다.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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