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025년 12월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발표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기술로 만들었는가.”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국가대표 인공지능(AI)’ 선발전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질문이다. 국가대표 AI는 해외 빅테크 의존을 줄이고, 공공·금융·국방 등 민감한 분야에 쓸 수 있는 국산 AI 모델을 키우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국책 사업이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기술을 베끼거나 속이는 일은 철저히 걸러야 한다.
이번 선발전에서 논란이 불거진 배경엔 불분명한 ‘독자 개발’ 기준이 있다. 정부는 이번 사업의 전제 조건으로 ‘프롬 스크래치’(처음부터 끝까지 자체 개발·구축)을 걸었다. 외국 기술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건 당연히 문제가 된다. 다만 AI는 본래 전 세계가 쌓아온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발전해 온 분야다.
구글·메타·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공개 논문과 오픈소스 기술을 활용해 자신들만의 모델을 만들었다. 자동차를 제작할 때 엔진은 직접 설계하더라도 타이어나 나사까지 모두 자체 제작하지 않는 것처럼, AI 역시 검증된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재 검증 과정은 이런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코드를 참고했는가’, ‘가중치를 직접 만들었나’ 등 세부 논쟁이 길어지면서 산업 발전 속도만 늦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AI의 6개월은 반도체 산업의 2년과 같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기술 진전이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는 만큼 검증 공방이 길어질수록 시장 기회는 줄어든다.
‘베끼기’와 ‘활용’은 엄연히 다르다. 남의 기술을 모방해 자기 것처럼 내세우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그러나 이미 공개된 기술을 참고해 더 나은 모델을 만들어내는 시도까지 문제 삼는다면 현실성,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혼란은 이 경계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정부의 책임이 가볍지 않은 상황이다. 국가대표 AI를 뽑겠다고 선언했지만, 무엇이 허용되고 어디까지 독자 기술로 인정할지 세부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명확한 규칙 없이 경기가 열린 셈이다. 그 결과 기업 간 불신이 커지고, 불필요한 폭로전까지 이어졌다.
1월15일 다섯 팀 중 일부는 탈락한다. 경쟁 구조상 누군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 이유가 기술력 부족이 아닌, 모호한 기준 탓이라면 논란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탈락자는 물론 남은 기업들 역시 뒷맛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순위 경쟁이 아니다. 국내 기술 자립이라는 목표를 지키면서, 산업의 발전 속도를 늦추지 않을 명확한 검증 기준이다. 기준이 분명해야 모두가 납득하고, 논쟁은 비로소 생산적인 방향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AI 경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검증을 이유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이, 국내 시장과 수요가 해외 모델에 넘어간다면 그 피해는 결국 우리 산업이 떠안게 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1등을 하느냐가 아니라, 한국 AI가 세계와 맞설 속도와 신뢰를 함께 확보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