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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굿’과 미국 민주주의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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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굿’과 미국 민주주의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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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현지시각)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마크 러팔로(왼쪽)와 이날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진 스마트. 둘 다 ‘비 굿’(BE GOOD)이라고 쓰인 배지를 달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11일(현지시각)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마크 러팔로(왼쪽)와 이날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진 스마트. 둘 다 ‘비 굿’(BE GOOD)이라고 쓰인 배지를 달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얼마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제83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2관왕이 되었다는 소식 외에도 주목할 지점이 또 있다. 영화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헐크 역을 맡았던 마크 러팔로의 턱시도 위에, 이날 여우주연상을 받은 진 스마트의 드레스 위에도 작은 배지가 달렸다.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비 굿’(be good)이라는 단 두 단어가 적힌 배지다. 몇몇 국내 언론에서 ‘착하게 살자’로 번역해 보도했다. 틀린 건 아니지만 적절하진 않다. 같은 시상식에서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는 ‘아이스 아웃’(ICE OUT)이 적힌 배지를 달았다. 여기서 ‘굿’은 지난 7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총에 사망한 러네이 니콜 굿을 추모하고, 왕처럼 군림하며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트럼프에 대한 저항을 촉구하는 구호다.



러네이 니콜 굿은 미국 시민권자였고, 동성 결혼을 한 레즈비언이었으며 아내와 함께 아들을 등교시키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도로에 멈춰 섰을 때 복면을 쓰고 총을 든 단속 요원들이 차로 다가왔고, 몇마디 대화가 있은 뒤 차를 돌리려 했을 뿐인데 갑자기 세발의 총성이 울렸다. 놀랍게도 단속 요원들은 피를 흘리는 굿을 살리기 위한 그 어떤 응급조처도 하지 않았다. 길을 가던 의사가 달려와 도우려 했지만 이를 저지할 뿐이었다. 끝내 굿은 사망했고, 몇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기자들과 인터뷰 중이던 트럼프 대통령은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그저 화질이 좋지 않은 현장 영상 몇개가 인터넷에 떠돌던 때였다. 그뿐인가.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아무 근거도 없이 굿을 좌익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며 피해자를 비난했다. 하지만 굿이 “괜찮아요. 당신이 나를 화나게 하지 않았어요”라고 미소를 띠며 말하는 마지막 모습은 총을 쏜 조너선 로스의 휴대폰에 남아 있었다. 즉, 로스는 한 손으론 휴대폰을 들고 촬영하면서 또 한 손에 총을 쥐고 있었다. 누가 이것을 흉악한 테러리스트를 대하는 자세라 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공무원이 비무장 시민을 상대로 경고 사격이 아니라 바로 얼굴을 향해 총을 쐈다. 결코 정당방위도 과잉 방어도 될 수 없다. 상대를 멸시하는 처벌에 가깝다. 로스의 영상엔 총을 쏜 후 여성 비하 욕설을 내뱉는 소리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건 현장엔 러네이 굿의 아내인 리베카 굿도 있었다. 트럼프는 응당 유족에게 해야 할 사과의 말 대신 리베카를 ‘친구’라고 지칭했다.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적인 단어 선택이다. 미 법무부는 총을 쏜 로스를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오히려 러네이와 리베카가 좌익인지 조사하기로 했다고 한다. 법무부 민권국의 검사 4명은 이런 부당한 결정에 항의하며 자진사퇴했다. 지금 미 전역에선 러네이 굿을 추모하고 트럼프 행정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점점 더 퍼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착하다는 건 힘 있는 자에게 순응하는 것이 아니다. 이웃의 피부 색깔, 출신 국가, 성적 지향 등에 상관없이 다정하고 친절하게 서로를 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저항하고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선한 인간이 되자는 구호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이 되길 바란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리베카 굿이 아내를 잃은 큰 슬픔 속에서도 남긴 말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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