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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공천권 쥐고, 지방의원은 이권 챙겼다

조선일보 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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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공천권 쥐고, 지방의원은 이권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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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병기·강선우 공천 헌금이 드러낸 유착 관계
‘국회의원 집사’ 노릇하며 지역 이권 챙기는 지방의원 도마에
사진 왼쪽부터 무소속 강선우 의원과 김경 서울시의원./뉴스1

사진 왼쪽부터 무소속 강선우 의원과 김경 서울시의원./뉴스1


최근 불거진 더불어민주당 김병기·강선우 의원의 ‘공천 헌금’ 수수 의혹은 정치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간 유착 관계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지역 주민을 대변해야 할 지방의원들이 의정 활동을 하는 대신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들의 ‘비서’나 ‘집사’ 역할에 열중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갑을(甲乙) 관계를 넘어 정치 후원금과 이권 등으로 얽힌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의 공천 헌금 수수와 아들 부정 편입 의혹의 ‘키맨’은 이지희 서울 동작구의원이다. 그는 2020년 구의원들에게서 공천 헌금을 걷어 김 의원의 아내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22년 김 의원 차남의 숭실대 편입을 위해 직접 대학을 찾아가거나 입시 브로커를 소개했다는 의혹도 있다. 사실상 김 의원 가족 일까지 도맡아 처리한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구의원이 김 의원 아내의 심복 역할을 했다”며 “시시콜콜한 개인 심부름까지 전담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그래픽=이진영


이 구의원은 2018년 비례대표로 구의회에 입성했다. 2022년 지역구를 받아 재선에 성공했고 부의장까지 됐다. 지역에선 그 배경에 김 의원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김 의원의 아내는 조진희 전 동작구의회 부의장이 갖고 있던 구의회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썼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지난달 3일 서울 강동구의회 본회의에선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 소속 구의원들이 “지역 행사에 참석한 지역구 국회의원의 배우자가 발언 기회를 얻지 못했다”며 구청장에게 항의한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을 받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당협위원장)에게 금품을 전달하는 관행도 여전하다. 공천 헌금에 시세가 있다는 말도 돈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서울 기준으로 구청장은 5000만원, 시의원은 3000만원, 구의원은 2000만원 안팎을 내야 한다”며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금액이 배 이상 뛴다”고 했다. 김경 서울시의원이 2022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 강세 지역인 강서구에 출마하기 위해 강 의원에게 건넸다고 알려진 돈은 1억원이다. 경기도의 한 전직 시의원은 “공천 헌금은 지방의원이 국회의원을 압박할 수 있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며 “공천을 도와주지 않으면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협박하는 지방의원도 봤다”고 했다.


정치권에선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지방의원이 낸 ‘공천 헌금’으로 자기 선거를 치른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그 경로는 후원금, 출판기념회, 경조사 등으로 다양하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2018년 이후 당선된 서울시의원 중 7명은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연간 300만원이 넘는 고액을 후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정치자금법상 허용된 범위 내에서 후원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시의원이 공천권을 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고액을 후원하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병기 의원 지역구의 전직 구의원 2명이 민주당에 낸 탄원서에도 이들이 2020년 총선 전 김 의원의 아내 등에게 공천을 대가로 3000만원을 줬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방의원들이 국회의원에게 수천만원을 상납하다시피 하고 ‘집사’ 역할까지 도맡아 하는 건 누릴 수 있는 권한과 이권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의 한 구의원은 “부동산 사업을 하다 구의원이 되니 구청 공무원들이 인사하는 각도가 달라지더라”며 “단번에 을에서 갑이 됐다”고 했다. 경기도의 한 시의원은 “정치권에선 지방의원을 무시할지 몰라도 지역에선 어디 가나 VIP 대접을 받는다”며 “시장도 자기 공약을 추진하려면 시의원들 눈치를 안 볼 수 없다”고 했다.

지방의원들은 지역의 크고 작은 사업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전북 지역의 한 시의원은 태양광 업체에서 86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징역 5년 6개월에 벌금 9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태양광 사업을 심의하는 시의회 도시계획위원으로 활동했다.


수도권의 한 청소업체 관계자는 “지방의원을 끼지 않고선 지역에서 청소 등 용역을 따낼 수가 없다”며 “작은 입찰, 인허가까지 지방의원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했다.

지방의원은 의정 활동비라고 불리는 연봉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의원은 연 7200만원, 구의원은 연 4000만~5000만원 수준이다. 겸업도 가능해 대부분 당선 전 하던 사업을 계속한다. 수도권의 전직 시의원은 “학원장이 교육위원회, 공인중개사가 도시계획위원회에 들어가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사실상 지방의원이 지역에서 얻은 이익을 국회의원과 공유하는 이권 카르텔이 작동하는 셈”이라며 “국회의원의 지방의원 공천권을 배제하지 않는 한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정 활동 실적과 공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지방의원들이 국회의원보다 주민들을 더 신경 쓰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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