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장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로 히어링루프가 있다. 히어링루프는 마이크로 입력된 소리를 자기장을 통해 보청기나 인공와우로 직접 전달하는 전파 기반 보조기술이다. 별도 수신기 없이 개인 보청기만으로도 명료한 청취가 가능하고 주변 소음을 줄여주기 때문에 공연장, 대중교통 등 소음이 많은 다중이용시설에서 효과적이다. 또 재난·안내 방송 전달 등 안전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국·미국·호주 등은 법과 기술표준을 통해 히어링루프 설치를 의무화하고 성능기준과 검증 절차, 표지 설치, 직원 교육, 정기점검까지 연계해 디지털 접근성 인프라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관리 중이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1월 '장애인등 편의법'을 개정해 공공시설에 보청기기 보조장비 비치를 의무화했다.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과 청각장애인 단체가 공동조사한 결과 설치된 히어링루프 90% 이상이 국제표준을 충족하지 못해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디지털·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정책이 '설치'에만 머물고, 실제 작동과 안전성까지 고려하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기술 기반 인프라는 단순히 장비를 설치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확한 설치기준과 성능 검증, 지속적인 유지관리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정보통신·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인프라는 초기 설계 단계부터 기술적 이해와 운용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렵다. 기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추진된 정책은 결국 예산 낭비와 제도 불신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기술 발전에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다수의 기기에 음성을 동시에 전송하고 히어링루프의 설치환경 제약과 커버리지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블루투스 저전력 기반 오라캐스트(Auracast) 기술은 머지않아 실질적 대안으로 부상할 것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활용 기술이 결합되면 개인의 청력 특성에 맞춘 음성 전달이나 환경별 소음 보정 등 더욱 진화된 서비스도 가능하다. 이 경우 기존 기술 도입을 유보할 것인지, 우선 설치한 뒤 디지털·AI 기반 기술로 단계적 전환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이 판단 역시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공기관과 정책당국은 기술을 '참고 요소'가 아니라 정책 성패와 안전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인식해야 한다. 기술 이해 없이 법을 만들고, 기술 검증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관행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이상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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