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기 정비창. 대한항공 제공 |
대한항공이 ‘K-방산’의 거센 흐름 속에서 여객 운송을 넘어 알짜 방산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간 국방의 한 축을 담당해 온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규모의 군용기 정비 역량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흑자 기조를 안착시켰다. 나아가 미래 전장의 핵심으로 꼽히는 스텔스 무인기(UAV)와 전자전기 개발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토탈 방산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는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 4714억원, 영업이익 166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는 지난 2년간 이어졌던 영업손실의 고리를 끊어낸 성과로, 3분기 말 기준 수주 잔고는 약 3조9260억원에 달한다. 특히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무인기 분야의 수주 잔고는 8000억원을 웃돈다. 방산 부문이 여객 사업의 보조 역할을 넘어 독자적인 이익 창출이 가능한 핵심 사업부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한항공 방산 경쟁력의 근간은 50년 가까이 축적된 독보적인 ‘MROU(정비·개조·업그레이드)’ 역량이 있다. 1978년부터 F-15, F-16, A-10 등 미군 주력 기체의 '아시아 정비 기지' 역할을 수행해 온 대한항공은 단순 수리를 넘어 기체 수명 연장과 성능 개량이라는 고난도 기술을 확보해왔다. 이 MRO 사업은 안정적인 현금창출원(Cash Cow)인 동시에, 최근 미 국방부가 추진하는 ‘지역 거점 운영 유지 체계(RSF)’ 전략과 맞물려 그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다.
이러한 기체 정비 및 개조 역량은 최근 우리 군이 추진 중인 ‘전자전기 개발 사업’의 핵심 경쟁력으로도 작용한다. 전자전기는 적의 레이더와 통신을 무력화하는 현대전의 게임 체인저로, 기존 항공기를 개조해 각종 첨단 장비를 탑재해야 하는 고난도 사업이다. 대한항공은 "뜯어보고 고쳐본 사람이 가장 잘 개조할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수십 년간 다져온 기체 구조 변경 및 체계 통합 노하우로 수주 경쟁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미래 전장의 또 다른 축인 무인기 분야에서도 행보는 공격적이다. 대한항공은 유무인 복합체계(MUM-T)가 필수적인 미래 공중전 환경에 대비해 저피탐(스텔스) 무인편대기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방산 기술 기업 ‘안두릴(Anduril)’과 손잡고 AI 기반 자율 비행 기술 확보에 나서는 등 기술적 해자(Moat)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무인기 플랫폼 개발·운용 경험이 풍부한 체계개발 선도기업으로서 전장 환경과 임무 요구에 맞는 풀 스펙트럼(Full Spectrum)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며 “50년 넘게 쌓아온 군용기 MROU 역량을 바탕으로 미 국방부 RSF의 아태 지역 적임자로서의 면모를 부각하는 한편, AH-6 군용기 동체 납품 등 제작 부문으로도 사업을 확장해 정비를 넘어 ‘제작’까지 세계 무대로 뻗어나가는 비전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대한항공이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과 전방위적으로 협력하며 국내 무인기 시장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학계 교수는 “유인기 분야는 KAI가 국내 유일의 완제기 업체로서 독보적이지만, 무인기 시장만큼은 최소한의 경쟁 구도가 형성돼야 한다”며 “최근 KAI가 성장통을 겪는 사이, 대한항공은 시가총액 20조원 규모의 미국 에어로바이런먼트(AeroVironment)와 MOU를 체결하는 등 사활을 걸고 있어 향후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잉·에어버스 등 글로벌 항공 제조업계의 공급망 불안 이슈와 원자재 가격 상승은 여전히 부담 요인이다. 여객 부문과의 시너지를 통해 확보한 막대한 현금 흐름을 얼마나 과감하게 방산 R&D에 재투자하여 기술적 격차를 벌리느냐가 향후 과제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대한항공 방산 부문이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Valuation)를 받기 위해선 지속적인 수주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분석한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대한항공은 여객운송사업이 메인이고 항공우주사업이 비주력인데, 이 중에서 항공우주사업을 국내향으로만 진행할 경우 시장 확대 지속성에 대해서 보장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오는 2월 말 부산 드론쇼에 참여하면서 항공우주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설명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