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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종합] 순천 반도체 이야기, 무엇을 말하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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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종합] 순천 반도체 이야기, 무엇을 말하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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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석 기자] [글 싣는 순서]
①서부는 AI·에너지, 동부는 제조·소재
②순천 반도체가 들어오면, 전남은 어떻게 달라질까
③순천에 반도체가 오려면, 지금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까
④반도체가 오면, 순천의 일자리와 생활은 어떻게 달라질까
⑤시민이 묻고, 순천시가 답하다

(종합)-순천 반도체 이야기, 무엇을 말하고 있었나

반도체 연구실 (출처=삼성전자 홈페이지)

반도체 연구실 (출처=삼성전자 홈페이지)


전남 순천시가 반도체 산업 유치를 공식적으로 제안하면서 AI타임스도 이를 계기로 반도체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돕는 기사를 준비했다.

기획 기사를 준비하며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정말 가능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시가 괜히 큰 아젠다만 던지는 건 아닐까?"하는 의문들이 있었다.


이번 기획 시리즈는 이러한 질문에 바로 "된다, 안 된다"를 말하기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만약 반도체 산업을 준비한다면, 순천은 어떤 도시가 되어야 하는가?"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

기획 초반부터 반복해 강조된 내용은 분명했다. 반도체 산업은 건물부터 짓는 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도체 기업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지 ▸물을 계속 사용할 수 있는지 ▸환경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다음에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인지 ▸기술 인력이 머물 수 있는지를 따진다.


이런 점에서 순천과 광양을 잇는 전남 동부권은 재생에너지, 산업용수, 기존 산업 기반을 함께 가진 준비해 볼 만한 지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왜 '대기업 공장'부터 말하지 않았나

이번 기획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일부러 '대기업 반도체 공장' 이야기를 앞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현실적으로 순천이 처음부터 초대형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기획은 ▸반도체에 필요한 소재 ▸가스와 화학 물질 ▸장비 관리와 공정 지원 같은 주변 산업부터 차근차근 키우는 길에 주목했다. 이는 "지금 당장 가능한 것부터 준비하자"는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암코르 테크놀리지 (사진=CFOTO Future Publishing via Getty Images)

암코르 테크놀리지 (사진=CFOTO Future Publishing via Getty Images)


기획 3·4회차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부분은 사실 공장보다 사람과 생활이었다. 반도체 산업은 단순히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산업이 아니다.

대신 기술을 배워 오래 일할 수 있는 일자리, 청년들이 지역에 남을 수 있는 선택지, 도시의 교육·의료·주거 수준을 끌어올리는 압력을 함께 만들어낸다. 그래서 반도체 산업 유치는 경제 정책이면서 동시에 도시 정책이고 생활 정책이다.

이번 기획은 반도체 산업의 밝은 면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전기와 물 사용, ▸환경 문제, ▸집값과 생활비 상승 가능성, ▸주민 갈등 같은 걱정도 함께 다뤘다. 특히 순천만을 비롯한 생태 환경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기준선"이라는 점이 여러 차례 강조됐다.

이 대목에서 기획 기사는 분명히 말한다. 반도체 유치는 시민의 동의 없이 성공할 수 없다. 이번 시리즈를 관통하는 핵심은 반도체 산업은 "공장이 들어오느냐, 안 들어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다.

순천의 반도체 구상은 단기간 성과를 내기 위한 개발 계획이 아니라, 전남 동부권 산업 전환, 청년이 머무는 도시, 환경과 산업이 함께 가는 구조를 동시에 고민하는 중장기 선택에 가깝다. 이 선택의 결과는 금방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

이번 기획 기사는 "반도체가 꼭 와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시민과 행정에 이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어떤 도시를 만들고 싶은가?" "그 도시를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차분하게 준비해 가는 과정 자체가 순천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중심에는 순천시와 그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있다. 반도체는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그 도구를 통해 순천이 어떤 도시로 가고 싶은지, 이번 기획은 그 방향을 묻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제 기사 밖에서, 현실의 순천에서 이어져야 할 차례다.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 내부 (출처=삼성전자 홈페이지)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 내부 (출처=삼성전자 홈페이지)


한편, 지방 반도체 산단 논의의 핵심은 '수도권을 대체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반도체 산업 가치사슬에서 지방이 현실적으로 맡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있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은 기능별로 분화돼 있으며, 모든 공정이 첨단 팹 인근에 집중돼야 하는 구조는 아니다. 국내에서는 충북 청주에 위치한 Amkor Technology 코리아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세계 최대 수준의 반도체 패키징·테스트(OSAT) 거점으로, 수도권 대형 팹과 일정 거리를 두고도 글로벌 반도체 후공정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북 지역 역시 전력반도체와 산업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클러스터 조성이 논의되고 있으며, 대구·경북권에는 반도체 장비의 핵심 부품과 소재 기업들이 분산돼 있다. 이는 '반도체 산업은 팹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단선적 인식을 넘어서는 사례들이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구조는 흔하다. 독일의 Dresden은 수도 베를린이 아닌 비수도권 지역임에도 자동차용·아날로그·전력반도체 중심의 유럽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로 성장했다.

일본 역시 TSMC의 구마모토 공장을 중심으로 규슈 전역에 테스트, 소재, 장비 부품 기업들이 분산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페낭은 글로벌 반도체 패키징·테스트 허브로 자리 잡으며 생산과 후공정의 기능 분업 모델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들은 반도체 산업이 단일 입지에 모든 기능이 집중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지방 반도체 산단의 성패는 삼성이나 SK 같은 대기업 유치 여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5년, 10년 뒤 해당 지역에 어떤 기술과 인력, 어떤 기업들이 축적돼 있느냐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 또한 지역 산업 논의를 멈추게 만든다.

반도체 산단 논의는 이제 '유치 경쟁'이 아니라,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영역을 구분하는 보다 현실적인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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