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아시아경제 언론사 이미지

[기자수첩]진퇴양난 중견 건설사…희망이라도 품게 해줘야

아시아경제 이정윤
원문보기

[기자수첩]진퇴양난 중견 건설사…희망이라도 품게 해줘야

속보
美대법원, 트럼프 상호관세 위법 여부 금일 판결 안해
정비사업·신사업 등에서 대형사에 밀려
중소 건설사 사라진 채 업계 성장 어려워
"어렵다는 말도 이젠 지겹네요. 일단 올해도 살아남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 중견 건설사 임원은 "내실 경영을 더 공고히 하겠다"는 내용의 올해 신년사를 내놓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초 내놨던 신년사의 키워드도 '내실 경영'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명을 목표로 한다는 그의 말에서 희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중소 건설사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사업성이 보장되는 서울 상급지 정비사업은 이미 대형사들의 전쟁터가 된 지 오래다. 대형사가 아니면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아파트의 브랜드 파워를 만드는 것이나, 수주 마케팅에 나서는 것이나 모두 자금력에서 뒷받침돼야 한다.

신사업 진출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AI), 소형모듈원자로(SMR), 모듈러 주택 등 새로운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여력이 없다. 연구개발(R&D) 비용을 따로 낼 수 있는 대형사와 달리, 생존에 들어갈 비용을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생존을 위해 소규모 정비사업에 참여하거나 공공 재개발사업을 따내는 것 정도가 중소 건설사들이 할 수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난해 정부가 안전 규제를 강화하면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사는 중단해야 하고 제재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상대적으로 안전에 투자할 자본·인력을 갖추고 있고, 공사가 중단되더라도 버틸 수 있는 대형사와는 사정이 다르다.

안전·생명이라는 기본 가치를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부 규제에 대응하는 운신의 폭이 대형사냐 아니냐에 따라 크게 갈린다. 정부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수록 1군 건설사 위주로 건설산업이 재편되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소 건설사 생존에 힘을 보태려면 초토화한 지방 부동산을 살리고, 민간 주택 공급 기능을 부활시켜야 한다. 이는 단순히 명을 연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중소 건설사들의 생존은 건설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정부 경제성장 목표 달성에 밑거름이 된다.

공공 발주와 집행 가속화, 민간 프로젝트 착공 촉진과 유동성 지원, 지역·중소 건설사 중심의 지원책 등도 필요하다. 이 정책들을 모두 구사하지 않더라도, '올해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중소 건설사가 자취를 감춘 시장에서 온전한 성장은 불가능하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