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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특허 사냥꾼’된 램리서치...소부장 기업들 떨고있다

조선일보 오로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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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특허 사냥꾼’된 램리서치...소부장 기업들 떨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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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 특허 침해 경고·소송 제기
잇따른 패소에 ‘시간끌기 전략’ 지적도
소부장 기업들 “韓 기술 보호해달라”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램리서치 R&D 센터./램리서치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램리서치 R&D 센터./램리서치


글로벌 4대 반도체 장비기업 중 한 곳인 미국 램리서치가 최근 1~2년 사이 한국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름이 됐다. 반도체 장비를 만드는 국내 중견·중소 기업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특허 침해 경고장을 날리고, 실제 소송까지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법원이 특허 침해를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데도 공격적인 ‘특허 사냥’은 이어지고 있다. 소부장 업계에선 “최근 우리나라 기업들이 반도체 장비 국산화에 성공하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칩 제조사로 판로를 확대해가는 중요한 시점인데 소송에 휘말리며 피해를 보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을 보호해줄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13일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실이 지식재산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램리서치는 일본과 반도체 소재 무역 갈등 직후인 2020년부터 올해까지 국내 기업을 상대로 총 12건의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 중 9건이 램리서치가 경기도 용인시에 R&D(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한 2022년 이후에 이뤄졌다. 램리서치가 국내에서 등록한 특허 건수는 2020년 68건에서 2025년 344건으로 크게 늘었다. 한국 특허법은 국내에서 특허 등록이 된 기술에 대해서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 “특허 등록이 앞으로 무더기 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사전 작업 차원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경기 과천시 과천국립과학관 미래상상 SF관에서 반도체 웨이퍼가 빛을 반사하고 있다./뉴스1

경기 과천시 과천국립과학관 미래상상 SF관에서 반도체 웨이퍼가 빛을 반사하고 있다./뉴스1


◇램리서치 ‘소송 갑질’ 신음하는 韓 기업들

램리서치가 국내 기업을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재판 결과가 나온 사례는 거의 없다. 특허 소송은 특허권자가 가진 고유 권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업계에선 램리서치가 승소를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자금력을 바탕으로 무차별 소송을 제기해 일부라도 승소하면 배상을 받고, 지더라도 소송이 진행되는 수년 동안 후발 주자들의 기술 개발이나 제품화를 지연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금력을 앞세운 대기업의 ‘소송 갑질’인 셈이다. 한 반도체 장비 업체 관계자는 “램리서치가 사실상 독점해오던 장비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기술적 돌파구를 만들어 내자 이를 실질적 위협으로 보고 지연시키기 위해 특허 소송을 핑계로 딴지를 걸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중견·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소송 대비에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경영상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램리서치는 지난 2024년 국내 반도체 장비 부품 업체인 CMTX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7월 1심에서 패소했다. 이후 CMTX가 역으로 램리서치를 상대로 특허 무효 심판을 제기해 무효 판정을 받아냈다. 램리서치가 특허권이 없는데도 특허 침해를 이유로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양사의 쟁점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웨이퍼를 둘러싸 손상을 줄여주고, 고주파 전류 흐름을 좌우하는 링 모양의 구조물이었다. 특허심판원은 램리서치의 관련 특허가 ‘진보성이 결여된다’고 봤으나, 램리서치는 항소해 재판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CMTX 관계자는 “기술 도용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수년째 법정 공방이 이어지며 기술 개발과 판매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램리서치는 소부장 업체 PSK가 개발한 베벨 에처(웨이퍼의 가장자리만 골라 식각·세정하는 장비)가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해당 소송과 관련해 램리서치가 자신의 특허라고 주장한 2건은 무효 판결이 내려졌다. 지식재산정보 검색 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램리서치 특허 6건이 무효로 판정났다.

◇기업들, “국산 기술 보호해달라”

특허 소송으로 피해보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6년간 램리서치에 소송을 당한 기업은 중견기업 3곳, 중소기업 5곳이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램리서치가 대형 로펌을 앞세워 특허 침해 경고장을 보내 압박한 사례는 더 많다”며 “구매자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고 했다.


지식재산처는 현재 특허 분쟁에 휘말린 국내 기업들을 위해 개별 기업당 연간 최대 2억원 규모의 법률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램리서치에 피소된 기업 중 5곳이 자문을 받았다. 하지만 램리서치처럼 광범위하게 경고장을 보내고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업체가 갈수록 많아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구자근 의원은 “유례없는 반도체 호황은 우리 중소·중견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이를 위해 정부는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되는 것을 방지하고, 국내 기업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램리서치 측은 “특허의 유효성과 ‘모방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며 “특허 침해 여부는 특허심판원이 아닌 법원에서 결정될 것이며, 소송은 여전히 계류 중”이라고 했다. 1심에 항소를 한 이상, 최종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램리서치는 이어 “CMTX 등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송의 판결 결과는 당사에 불리했지만, 특허심판원이 여러 쟁점 중에서 램리서치의 입장을 받아들인 부분도 있다”며 “상대 회사들의 주장만을 전면 수용한 것으로 볼 순 없다”고 했다.

[오로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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