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항 개수와 순서도 동일
“시험 여러 번 치르다 보니 문제만 봐도 정답 떠올라”
“시험 여러 번 치르다 보니 문제만 봐도 정답 떠올라”
3일 오전 대전 동구 도로교통공단 대전운전면허시험장 강의실에서 75세 이상 운전자들이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신현종 기자 |
서울 관악구에 사는 진모(78)씨는 지난달 운전면허를 갱신하기 위해 치른 치매 검사에서 30점 만점에 27점을 받았다. 3년 전 검사 때보다 3점 더 높았다. 75세 이상 운전자는 3년에 한 번 치매 안심센터를 찾아 치매 검사를 통과해야 면허가 갱신된다. 그런데 진씨는 매년 치매 검사를 치르고 있다. 정작 갱신해야 할 때 치매 검사를 통과하지 못할까 봐 매년 일종의 ‘모의고사’를 보는 것이다. 진씨는 “3년 전보다 기억력은 더 안 좋아진 것 같은데, 시험을 여러 번 보다 보니 문제만 봐도 정답이 바로 떠오른다”고 했다.
진씨가 치른 시험은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운전 자격 검증에 필요한 ‘치매인지적성검사’다. 문답식인 이 검사는 치매 안심센터에서 치른다. 그런데 2021년 처음 검사가 도입된 이래 6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고 같은 유형으로 출제돼 면허 갱신을 위한 치매 검사가 형식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년 문항 개수와 내용은 물론 순서까지 같다 보니, 면허를 유지하려는 노인들이 치매안심센터를 매년 찾아 모의고사 보듯 예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75세 이상 운전자가 치르는 치매 시험은 30점 만점이다. 주의력, 시공간 능력 등을 평가하는 이 검사는 인쇄된 그림을 보고 점선을 따라 그리거나 도형이 회전하는 방식을 보고 다음 도형을 유추하는 등의 문제로 구성된다. 검사엔 15~20분 정도 소요된다. 검사 통과 기준은 응시자의 연령과 학력에 따라 10~27점으로 다르다. 노년층은 면허 발급·갱신과 별도로 센터에서 매년 1번씩 무료로 이 검사를 할 수 있다.
충남 천안에 사는 이모(83)씨는 작년 말 운전면허를 갱신했지만 올해도 치매안심센터를 찾아 치매 검사를 해볼 예정이다. 물건을 깜빡하는 일이 부쩍 늘었고, 얼마 전엔 저녁 시간 텃밭에 가는 길에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치매 예방·치료보다는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치매 검사를 매년 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고령 운전자 사고를 줄이기 위해 검사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문제은행 방식을 도입해 문항을 다양화하고, 전문 의료진이 주행 적합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 출제를 주관하는 국립의료원 중앙치매센터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보완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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