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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칼럼]반도체 특수로 법인세 더 걷히는데, 이젠 세율 낮출 건가

동아일보 박중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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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칼럼]반도체 특수로 법인세 더 걷히는데, 이젠 세율 낮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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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조로 줄었다”던 법인세수 80조 원 넘겨

정부·여당의 세율 1%P 인상 근거 무너져

‘친기업 성장’하자며 기업 세금 높이는 모순

앞뒤 안 맞는 세금정책 이제 ‘정상화’해야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한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삼성전자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이 20조 원을 넘겼다는 소식에 투자자들 이상으로 환호했을 이들은 재정경제부 관료들일 것이다. 삼성전자의 작년 영업이익이 43조5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33% 증가하면서 법인세수도 크게 늘기 때문이다. 올해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올라탄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나란히 영업이익 100조 원을 크게 넘길 거란 전망까지 나온다. 이대로라면 향후 2∼3년간 이재명 정부가 재정적자 부담을 크게 덜면서 돈을 더 쓸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더욱이 정부와 여당은 작년 말 세제를 고쳐 법인세율을 1%포인트 올렸다. 최고세율은 25%가 됐다. 전임 윤석열 정부가 ‘부자 감세’를 해 재정에 구멍이 났으니, 원상복구해 세제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작년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부 곳간을 책임지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도 “법인세가 100조 원에서 거의 60조 원으로 40%나 빠졌다. 그냥 감세를 해준다고 (기업이) 투자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세율 인상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거들었다.

정부 여당이 세율 인상을 추진하는 동안 법인세수는 이미 늘고 있었다. 작년 1∼11월 법인세수는 82조4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조2000억 원 급증했다. 정부 교체로 세수가 회복된 게 아니다. 구 부총리가 비교 기준으로 거론한 2022년의 103조6000억 원 법인세수가 워낙 특출난 거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 안에 틀어박힌 선진국 소비자들이 2021년 전자제품을 사들이면서 한국 반도체, 가전이 특수를 맞았기 때문이다. 반면 법인세수가 낮았던 2024년 62조5000억 원은 급격한 경기악화로 삼성전자가 세금을 못 낸 해였다.

한국의 평년 수준 연간 세수는 그 사이인 2023년의 80조4000억 원 정도로 보는 게 타당하다. 대표 기업들의 실적이 회복된 작년 법인세수가 이 숫자를 뛰어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작년 기업의 성적을 근거로 세금을 걷는 올해, 올해 기업들 실적이 반영되는 내년 세수는 더 많이 늘어날 공산이 크다. 새 정부의 법인세율 인상은 전 정부 세금정책의 실패를 강조하느라, 글로벌 경기변동 요인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이뤄졌다.

법인세 인상이 구 부총리나 민주당 의원들만의 생각일 리 없다. 친(親)기업 이미지를 강조하며 집권한 이 대통령은 법인세 인상 논의에선 한 발짝 떨어져 있었는데, 슬쩍 속내를 드러낸 게 작년 11월 7대 그룹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이 대통령은 “기업 활동의 장애가 최소화되도록 정말 총력을 다할 생각”이라면서도 “제가 ‘세금 깎아 달라’ 이런 얘기는 별로 안 좋아하긴 하는데…”라고 했다. 농담이었지만, 현 정부 임기 중 대통령 앞에서 법인세 문제를 대놓고 거론하는 간 큰 대기업 총수는 보기 힘들게 됐다.

게다가 이 대통령 머릿속에는 한국의 세금이 지나치게 적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달 크리스마스이브에 한 병원을 찾은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선진국보다 매우 낮다. 사회구성원 사이에 협의를 거쳐서 늘려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수 비중을 보여주는 조세부담률은 한국이 2023년 19%, 법인세수가 급감한 2024년 17.6%였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5.3%보다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낮은 조세부담률의 주요 원인은 선진국의 절반 수준의 부가가치세율, 근로자 3분의 1이 소득세를 안 내는 높은 면세자 비율이다. 법인세만 떼어 보면 세수 중 법인세 비중은 한국이 14.4%로 OECD 평균 11.9%를 크게 웃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수 비율, 법인세 최고세율 등에서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상위권이다. 선진국들이 법인세 비중을 적정 수준에서 억제하는 건 경기변동에 따른 진폭이 너무 커 나라살림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장애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장률 회복’을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면서 법인세율을 높여 기업의 투자·배당·임금을 제약하는 선진국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공지능(AI) 버블 붕괴 같은 대내외 경제충격은 앞으로도 한국의 법인세수를 출렁이게 만들 것이다. 게다가 우리 기업들은 밖에선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약속한 1500억 달러(약 221조 원) 대미투자, 안에선 반도체·AI 등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 압박을 받고 있다. 지금은 더 걷힌 법인세를 놓고 어디에 쓸지 정부가 행복한 고민에 빠질 때가 아니다. 경쟁력 확보와 생존을 위해 번 돈을 어디에 투자할지 기업들에 결정할 자유를 줘야 한다. 그릇된 세수예측, 정치적 이유에서 출발한 법인세율 인상은 실착이었다. 다시 ‘정상화’하는 걸 고려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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