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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원형' 잃은 관광 개발, 누구를 위한 파괴인가

파인드비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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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원형' 잃은 관광 개발, 누구를 위한 파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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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무너지면 복구 불가, '편의'보다 '보존'이 가장 강력한 콘텐츠가 된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현수교 공사로 파괴되고 있는 영월 낙화암을 모습

관광객 유치를 위한 현수교 공사로 파괴되고 있는 영월 낙화암을 모습 


최근 제주 서귀포시 신양 해안사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데크 시설이 바람의 길을 막아서면서 모래가 쌓이지 못하고 깎여 나가는 침식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모래 언덕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염생식물의 자생지는 이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자연이 수만 년간 빚어낸 정교한 생태계가 인간이 깔아놓은 몇 미터의 나무 데크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순환을 막아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숴버리는 현장도 있다. 단종의 애사가 서린 강원도 영월의 낙화암이 부서지고 있다. 영월군은 이곳을 '봉래산 명소화'라는 명목으로 동강을 가로지르는 현수교를 놓기 위해 낙화암 한복판을 관통하는 공사를 강행했다. 스스로 '단종의 고장'임을 자처하며 역사적 정체성을 브랜드화했던 영월이, 역설적이게도 그 정체성의 핵심인 유적을 관광객 유치라는 미명 하에 훼손한 셈이다.

이러한 풍경은 제주와 영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지자체들은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만능 치트키를 앞세워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며, 오래된 바위에 구멍을 뚫고 있다. 출렁다리, 케이블카, 모노레일, 그리고 대규모 데크 길까지. 마치 공식이라도 있는 듯 전국 관광지는 '복제된 풍경'으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대체 무엇을 위한 개발인가. 관광객들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특정 지역을 찾는 이유는 그곳만이 가진 '고유함'과 '원형의 가치'를 보고 느끼기 위함이다. 하지만 개발이라는 이름의 메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공 구조물만 남는다. 고유한 역사적 서사와 생태적 가치가 거세된 관광지에 어떤 매력이 남아 외지인을 불러모을 수 있겠는가.

원형을 훼손하며 세워진 인공 구조물은 당장의 '반짝 효과'를 낼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유효기간은 짧다. 더 크고 더 화려한 시설이 인근 지자체에 들어서는 순간, 정체성을 잃은 관광지는 곧바로 외면받기 마련이다. 반면 한 번 파괴된 해안사구와 훼손된 역사적 유적은 그 어떤 예산을 투입해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시설'이 아니라 '더 깊은 보존'이다. 자연과 역사는 지자체의 사유물이 아니며, 잠시 빌려 쓰는 후세의 자산이다. 본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관광 경쟁력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진정한 자산임을 지자체들은 직시해야 한다. '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우리가 정말 소중한 것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멈춰 서서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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