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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日 식민지배 조세이탄광 희생자 조국에 돌려보내는 건 최소한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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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日 식민지배 조세이탄광 희생자 조국에 돌려보내는 건 최소한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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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민단체인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과 일본 참의원 의원들이 2024년 11월 6일 국회 중의원 제2회관에서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참사 진상규명에는) 한일 양국의 기술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왼쪽부터 후쿠시마 미즈호·오오츠바키 유코 참의원 의원, 이노우에 요코 모임 공동대표. 도쿄 명희진 특파원

일본 시민단체인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과 일본 참의원 의원들이 2024년 11월 6일 국회 중의원 제2회관에서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참사 진상규명에는) 한일 양국의 기술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왼쪽부터 후쿠시마 미즈호·오오츠바키 유코 참의원 의원, 이노우에 요코 모임 공동대표. 도쿄 명희진 특파원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희생된 여러분을 적어도 조국의 고향에 돌려보내는 것은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1991년부터 ‘조세이탄광 피해자를 돕는 역사 모임’을 결성해온 이노우에 요코 대표는 13일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와 민간을 불문하고 이 문제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이처럼 말했다.

조세이탄광 참사는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던 1942년 2월 3일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조세이탄광 누수로 해저 갱도가 무너지면서 한반도 출신 노동자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모두 183명이 수몰됐다. 사고 진상 규명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고 유골은 일본 시민단체와 한국 유족회 등의 자비와 모금으로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8월 26일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뼈가 발견됐다. 사고가 발생한 지 83년 만의 일이었다. 이노우에 대표는 “유골의 DNA 감정조차 한일 간의 벽에 막혀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 정상이 이를 결단한 것에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했다.

이어 “조세이탄광 유골은 (식민지배) 역사의 산증인”이라며 “올해는 한 구라도 더 많은 유골을 수습하고 반환하는 해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조세이탄광 희생자 유족 - 양현 일본조세이탄광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 회장. 본인 제공

조세이탄광 희생자 유족 - 양현 일본조세이탄광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 회장. 본인 제공


양현 일본조세이탄광희생자 대한민국 유족회 회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유족 입장에서는 DNA 신원 조사가 정말 중요했다”며 “일본 정부가 유골 수습에 전향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도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작은아버지 고 양인수씨의 유골을 찾고 싶다는 바람이다. 양인수씨는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고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경찰과 탄광 모집인에게 속아 조세이탄광에서 일하다 20세 젊은 나이에 사고를 당했다.

유족들의 자비 부담과 모금만으로 유골 발굴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 회장은 “다음달 7일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6명의 다이버들에게 4구의 유골을 수습하기로 했는데 이 비용만 해도 1억 2000만원이 든다”며 “일본 정부가 그토록 지적하는 안전 문제도 걸려있는데 시민단체에만 맡길 게 아니라 일본 정부도 나서줘야 하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심지어 자국민이 수몰됐음에도 유골 매몰 위치가 분명하지 않고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지원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 회장은 “희생자 모두가 수몰된 건 아니다. 탄광이 폭발했을 때 불기둥이 솟았다는 증언도 있는데 그 당시 사체가 튀어 나갔다고 하니 희생자를 전부 수습할 수는 없지만 부분적이라도 당시의 진실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나라 김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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