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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년 전 독화살, ‘구석기 사냥’의 통념을 깨다 [오철우의 과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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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년 전 독화살, ‘구석기 사냥’의 통념을 깨다 [오철우의 과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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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은 6만년 전 화살촉의 앞면과 뒷면. 화살촉의 날카로운 윗부분에 묻은 물질은 독 성분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독성물질은 아프리카 야생 식물인 히프볼(오른쪽 사진)의 알뿌리에 있는 식물 독 성분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구석기 시대 인류가 활을 사용했으며, 독성 물질을 사냥에 활용할 줄 알았음을 보여준다. 스톡홀름대학, 위키피디아 제공

왼쪽 사진은 6만년 전 화살촉의 앞면과 뒷면. 화살촉의 날카로운 윗부분에 묻은 물질은 독 성분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독성물질은 아프리카 야생 식물인 히프볼(오른쪽 사진)의 알뿌리에 있는 식물 독 성분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구석기 시대 인류가 활을 사용했으며, 독성 물질을 사냥에 활용할 줄 알았음을 보여준다. 스톡홀름대학, 위키피디아 제공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도구 유물은 그 시대 사람들의 자연 지식과 생활 양식을 짐작케 한다. 1991년 알프스 산맥의 외치 계곡에서 잘 보존된 미라 상태로 발굴된 5300년 전 중년 남성 ‘외치’(Ötzi)는 다양한 유물과 함께 발굴돼 가장 많이 연구된 고대 인류로 불린다. 외치가 쓰던 구리 도끼, 돌칼, 활은 그가 어떻게 먹잇감을 사냥했을지를 보여준다.



활은 멀리 떨어진 먹잇감을 사냥할 때 좋은 도구이다. 신석기 말기 또는 청동기 초기의 외치는 활을 사용해 다가가기 어려운 날랜 산짐승을 능숙하게 사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참 앞선 구석기 시대의 사냥 장면을 묘사하는 교과서나 과학 도서의 상상도에서 활 든 사냥꾼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림에는 대부분 긴 창과 돌도끼만 등장한다. 활은 후기 구석기 시대에야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석기인의 사냥 장면을 바꿀 만한 고고학 연구 결과가 나왔다. 무려 6만년 전에도 인류가 활은 물론이고 독화살까지 사냥에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직접 증거가 발견됐다.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스웨덴의 연구진은 남아공 움흘라투자나 암석 유적에서 출토된 6만년 된 석영 화살촉들에서 독초 ‘히프볼’(Boophone disticha)의 독 성분을 확인해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정밀 분석 기법으로 선사시대 화살촉 10개 중 5개에서 독성물질 부파니드린을 검출했는데, 이는 아프리카 야생 식물 히프볼의 알뿌리(구근)에서 생기는 독 성분이다.



히프볼의 독은 호흡 곤란, 어지럼증, 근육 마비 같은 증상을 일으키는데, 연구진은 구석기인들이 오랜 생활 경험을 통해 이 독을 사냥에 쓰면 유용하다는 점을 알아챘을 것으로 본다. 식물 독을 묻힌 화살만으로 영양, 누 같은 큰 먹잇감을 즉시 죽이진 못했겠지만 움직임이 둔해지고 쇠약해진 먹잇감을 오래 뒤쫓으며 훨씬 수월하게 사냥했을 터이다.



그동안 독화살이 사냥에 처음 쓰인 시기는 수천년 전일 것으로 여겨져왔다. 이집트 유적지 무덤에서 나온 4천년 된 독화살이 가장 오래된 증거였다. 하지만 지난해 남아공 동굴에서 7천년 된 독화살이 발견되고, 다른 유적지에서는 3만년 전 독화살의 존재를 시사하는 간접 증거도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독화살 사용 시기를 무려 6만년 전으로 앞당기는 직접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이런 증거는 구석기인들이 자연 지식과 기술 활용 능력을 상당히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연구진은 “독 묻힌 화살을 만들고 쓰는 데에는 전략 계획과 인내심, 그리고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독화살은 구석기인의 사고력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근거라고 해석한다.



외치처럼 가죽옷에 모자, 망태와 구리 도끼까지 갖추지는 못했겠지만, 수만년 전 구석기인도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정교한 도구와 기술을 갖춘 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후속 연구들이 이어져 당시 활과 독화살이 얼마나 일반적이었는지가 분명해진다면, 구석기인의 사냥 상상도에서도 독화살을 쓰는 사냥꾼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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