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범죄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한다’는 형사소송법 196조는 검사에게 ‘알라딘의 마법 램프’와 같다. 검사는 이 조항에 근거해 누구든지 수사할 수 있고, 누구든지 봐줄 수도 있다. 범죄 혐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전적으로 검사의 판단에 달려 있다.
한때 검찰은 ‘재벌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재벌 총수가 비자금, 횡령 등의 범죄를 저질러도 검찰이 좀처럼 수사하지 않는 행태를 겨냥한 것이다. 얼마나 심했으면 재벌 회사 이름을 앞에다 붙여 ‘○○장학생’이라는 말까지 생겨났겠는가. 2007년 10월 삼성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는 검찰 내 ‘삼성 장학생’ 명단을 폭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각종 고발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삼성에 대한 수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배경을 설명해줬다. 윤석열 정권의 검찰은 김건희 일가의 범죄 혐의를 대놓고 봐줬다. 대통령 부인이 금품을 받고 인사를 챙겨주는 ‘현대판 매관매직’이 벌어졌는데도 검찰은 모른 척했다.
과거 공안검찰은 시국·공안 사건에서 검찰권을 남용해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의 검찰은 경찰, 중앙정보부(안기부)와 한통속이 돼 범죄 혐의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이런 사건들은 법원의 재심을 통해 바로잡히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02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시국·공안 사건은 2063건이다. 지금도 400건이 넘는 사건의 재심이 진행 중이다. 윤석열 정권에서는 검찰이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야당과 비판 언론을 집중적으로 겨냥했다. 마치 세상에는 이들의 범죄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검찰개혁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악용되는 형사소송법 196조를 없애야 완성된다. 이 조항이 있는 한 검찰은 그 어떤 수사에도 개입할 수 있다. ‘수사·기소 분리’에 따라 검찰 조직을 분리해도, 윤 정권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그랬던 것처럼, 시행령만 손보면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이 가능하다.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이 12일 공개한 입법안에는 형사소송법 개정은 빠졌다. 정부는 검찰 보완수사권 문제와 함께 ‘나중에 하겠다’고 한다. 곧 있으면 정치권은 지방선거 국면으로 돌입한다. 개혁의 골든타임도 지나간다. 검찰개혁은 또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
이춘재 논설위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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