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쥬스’ 심설인 협력연출·이창호 작가
‘쥐롤라’로 뮤지컬 흥행 공식 바꾼 ‘밈의 제왕’
이번엔 창작자로…최적의 펀치라인 찾아
‘쥐롤라’로 뮤지컬 흥행 공식 바꾼 ‘밈의 제왕’
이번엔 창작자로…최적의 펀치라인 찾아
유튜브 콘텐츠 ‘뮤지컬 스타’에서 쥐롤라로 엄청난 인기를 모은 코미디언 이창호가 이번엔 뮤지컬 ‘비틀쥬스’의 코미디 각색 작가로 참여해 관객들의 웃음을 책임지고 있다. [CJ ENM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난 투명해, 김준수 옆에 지나가는 네 남친처럼…”
비틀쥬스의 본캐 김준수가 이 대사를 뱉자, 관객들이 자지러진다. 100% 공감의 폭소였다. LG아트센터 객석은 김준수의 ‘찐팬’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 원작 속 이 대사는 도발적이었다. ‘비틀쥬스’의 심설인 협력 연출은 “공화당의 게이 당원 같다는 대사였다. 결코 공화당이면서 게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해 쓴 대사였다”며 “미국식 정치 개그를 한국화하기 위해 나온 표현”이라고 말했다. 저승과 이승 사이에 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비틀쥬스’를 연기하는 김준수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자 공연장은 뮤지컬처럼 환상의 세계로 치환됐다.
이 한 줄의 일등 공신은 코미디언 이창호. 그는 무대 밖에서 ‘뮤지컬 스타’라는 콘텐츠를 만들어 부캐릭터 쥐롤라(‘킹키부츠’ 롤라+쥐를 닮은 외모로 생긴 조어)로 활동하더니, 이번엔 아예 ‘내부자’로 뮤지컬계에 입성했다. 초연 당시 대본을 맡았던 김수빈 번역가와 함께 머리를 맞댄 이창호는 이번 ‘비틀쥬스’의 명실상부 말맛 제조기가 됐다.
심 협력 연출은 “이창호 씨가 다른 (유튜브) 채널에서 보여준 뮤지컬에 대한 관심도를 접하게 되면서 언젠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상상을 했었다”며 “‘비틀쥬스’ 대본 작업에 이창호 씨의 코미디 센스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 이창호는 ‘쥐롤라’ 캐릭터를 통해 무수히 많은 밈과 알고리즘을 만들며 2024년 이후 한국 뮤지컬계의 ‘흥행 공식’을 완전히 바꿔놨다. 쥐롤라의 ‘킹키부츠’ 영상이 수백만 뷰를 올리자 해당 뮤지컬 공연은 대흥행을 기록한 것. 실제로 ‘쥐롤라’ 영상을 타고 공연장까지 왔다는 간증이 줄이었다.
이창호의 부캐릭터인 ‘쥐롤라’ 이호광 [‘뮤지컬 스타’ 캡처] |
제작진이 ‘작가 참여’ 제안을 하자 그는 “‘몰래카메라’인 줄 알았다”며 “믿기지 않아 재차 물어보다 (제안이) 철회될까 봐 빨리 수락했다”며 웃었다.
이창호는 2024년 12월 첫 제안을 받아 지난해 3월부터 4~5개월 대본 각색 과정에 참여했다. ‘작가’(코미디 각색가)라는 명함을 받아 든 이창호에게 주어진 과제는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되 철저한 한국화로 관객들에게 가닿는 것’이었다.
심설인 협력 연출은 “‘비틀쥬스’의 원작은 훨씬 더 과감하고 터프하다. 비틀쥬스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사회화가 덜 된 캐릭터”라며 “초연 땐 한국 관객들이 이 캐릭터를 낯설어할 것을 고민해 더 착하게 만들었다면 이번엔 공감할 수 있는 선에서 더 많이 표현했다”고 말했다.
‘비틀쥬스’의 대본은 ‘집단 지성’이 일군 성과다. 이창호는 “연출님을 큰누나, 김수빈 작가님을 작은누나 삼아 기댔다”며 “연습 현장에선 배우들이 매번 그렇게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이누야사’ 밈을 패러디한 비틀쥬스의 마지막 인사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은 김준수의 아이디어다.
샘솟는 아이디어와 적절한 한국화 사이에서 이창호가 가장 고심한 것은 ‘수위 조절’이었다. 처음엔 ‘재밌는 콘텐츠’를 구상하다 종국엔 ‘원작을 난도질하기보다 어느 정도 작품의 의도와 장르의 특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4년간 ‘뮤지컬 스타’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뮤지컬에 대한 깊은 애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뮤지컬 ‘비틀쥬스’로 돌아온 김준수 [CJ ENM 제공] |
물론 적정선을 지키는 것은 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처음엔 수위를 생각하면서 짰는데, 나중엔 큰 누나, 작은누나가 비틀쥬스는 자기가 하는 말이 실수인지 독한 말인지도 모르는 캐릭터이니 수위를 생각하지 말고 써오라고 했다”며 “그래서 독한 농담을 8~9개씩 짜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세상이 더 많은 것을 허용할 때까진 기다려야 했다”면서 “지금의 관객들이 불편해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최적의 ‘펀치라인’을 찾아 수위를 조절하고 대본을 다듬고 염지하는 과정을 많이 거쳤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찾은 해법은 바로 ‘메타 유머’였다. 세 배우의 트리플 캐스팅인 만큼 대본 역시 세 명분이 존재했다. 정성화·정원영·김준수의 색깔에 따라 ‘맞춤형 비틀쥬스’가 태어난다.
이창호는 “대본이 배우별로 누구의 버전인지 표시가 돼 있다”며 “연출님, 김수빈 작가님과 대사 하나를 두고 몇 시간씩 연기를 하며 배틀을 벌였다”고 했다. 이창호 작가와 심설인 연출가가 본 세 배우의 강점이 각기 다르다. 정성화는 코미디언 출신다운 완벽한 호흡을 갖춘 데다, 클래식하고 안정적인 코미디 구사력이 강점이다. 정원영은 ‘악동’의 모습이 잘 살아나고 스펙트럼이 다양하다고 했다. 김준수의 키워드는 ‘귀여움’이었다. “독한 대사마저 사랑스럽게 포장”해 관객을 무장해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두 사람의 설명이다. 특히 이창호는 “같은 대사라도 자기만의 호흡과 색깔로 하니 버전이 다 다르게 나타났다”고 했다.
뮤지컬 ‘비틀쥬스’의 코미디 각색 작가로 참여한 코미디언 이창호와 심설인 협력 연출. [CJ ENM 제공] |
‘비틀쥬스’에서 코미디는 빠져선 안 되는 양념이나,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니다. 작품 안엔 괴팍하고 비뚤어진 악동 비틀쥬스를 비롯해 엄마를 잃은 사춘기 소녀 리디아, 리디아의 홀대를 받는 라이프스타일 코치이자 아빠의 연인 델리아까지 애틋한 캐릭터 천지다.
심 연출은 “비틀쥬스는 사실 외로운 아이”라며 “사람들이 놀라거나 슬퍼하는 반응을 봐야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자극적인 행동들은 사실은 교감하고 싶다는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했다. 이창호가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는 델리아다. 그는 “델리아가 그렇게 슬프고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다”며 “이 사람이 밝아 보이려 하는 것은 결국 예쁨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생각에 ‘난 맨날 안돼, 여기까지야’라는 대사를 썼다”고 했다.
위로받고 싶은 존재들의 몸부림은 웃음으로 치유된다. 심설인 연출가는 “생과 사를 다루지만 심각하고 슬픔에 젖어있는 게 아니라 2시간 30분 동안 즐길 수 있도록 했다”며 “그래야 이 무거운 주제, 삶과 죽음, 옆 사람의 소중함이라는 무거운 주제, 심플하지만 장황한 스토리를 재밌게 보고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창호는 “단지 웃고 즐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코미디라는 장치를 통해 관객의 마음을 마사지해 부드럽게 풀어준다”며 “그게 결국 코미디의 역할이자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