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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센트블록 쇼크③] 혁신은 왜 차가운 현실 벽에 부딪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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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센트블록 쇼크③] 혁신은 왜 차가운 현실 벽에 부딪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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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홍 기자] 루센트블록이 제기한 억울함에는 분명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기업의 펀더멘털과 금융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루센트블록이 처한 위기가 오로지 대기업의 횡포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스타트업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거래소의 무게
루센트블록이 간과했거나, 혹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은 자본과 구조의 문제다.

먼저 거래소 비즈니스는 본질적으로 장치 산업이다. 단순히 앱을 예쁘게 만들고 투자를 유치하는 수준을 넘어 24시간 멈추지 않는 서버, 해킹을 완벽하게 방어하는 보안 관제, 이상 거래를 탐지하는 시스템, 그리고 수조 원 대의 거래를 정산할 수 있는 백오피스 역량이 필요하다.

넥스트레이드나 한국거래소는 매년 수천억 원을 IT 인프라에 쏟아붓는다. 반면 스타트업인 루센트블록이 투자금(VC 자금)만으로 이들과 대등한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금융위 입장에서는 "만약 루센트블록 서버가 다운되어 수만 명의 투자자가 매매를 못 하게 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발행과 유통의 분리라는 원칙도 알아야 한다.


루센트블록의 기존 모델(소유)은 자신이 부동산 상품을 소싱해서 발행(청약)하고 자신의 앱 내에서 유통(거래)까지 시키는 구조였다. 하지만 새로운 STO 가이드라인은 이해상충 방지를 위해 심판(유통)과 선수(발행)를 엄격히 분리한다.

루센트블록은 그동안 두 가지를 모두 하며 수익을 냈지만 이제는 하나를 포기하거나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이 지점에서 루센트블록은 유통을 선택해 장외거래소에 도전했지만 태생적으로 발행사에 가까운 DNA를 가진 그들이 순수 유통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크다.

금융당국이 보이는 보수적인 태도의 행간도 읽을 필요가 있다. 테라·루나 사태라는 거대한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이다. 당시 혁신적인 알고리즘이라 칭송받던 가상자산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면서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됐다. 이후 금융당국의 기조는 혁신 지원에서 투자자 보호로 급선회했다. 그리고 공무원 사회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책임론이다. 만약 스타트업에 인가를 내줬다가 사고가 터지면 인가권자는 문책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거래소나 대형 증권사 연합체에 인가를 내주면 사고가 나더라도 검증된 기관에 맡겼는데 어쩔 수 없었다는 명분이 생긴다.

물론 이러한 책임 회피형 안정 추구 성향은 결과적으로 스타트업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를 낳는다. 샌드박스의 취지는 작게 실패해 보고, 성공하면 키워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프로세스는 성공했으니 이제 대기업에 넘겨라라는 식이다.

향후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규제 샌드박스 신청을 주저하게 만드는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열심히 키워봤자 결국 제도화 단계에서 뺏긴다는 학습 효과가 생기면, 대한민국의 금융 혁신은 동력을 잃게 된다.



독점이 아닌 다양성을 향하여
14일 예비인가 결과가 루센트블록의 탈락으로 결정난다면 단기적으로는 시장 안정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시장 독점의 폐해를 낳을 수 있다.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 양강 체제가 굳어지면 수수료 인하 경쟁이나 서비스 혁신은 요원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루센트블록 같은 선도 기업에게는 대형 금융기관 수준의 자본금 요건을 당장 강요하기보다, 단계적으로 충족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주거나 조건부 인가를 내주는 방식이다. 또는 인가받은 대형 거래소들이 의무적으로 스타트업의 상품을 상장시키거나 기술을 제휴하도록 강제하는 상생 쿼터제 같은 장치도 고려해 볼 만하다는 말이 나온다.

루센트블록 사태는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위험 없는 혁신을 바라는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혁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타트업의 야생성을 거세하고 안정성만 추구하는 금융 생태계에서는 제2의 토스, 제2의 카카오뱅크가 나오기 어렵다. 그러나 돈의 문제는 그 무엇보다 냉정하고 무거워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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