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홍 기자] 금융산업의 변방에 머물렀던 토큰증권(STO)이 제도권 진입의 문턱에서 스텝이 꼬였다. 7년 전 불모지와 다름없던 조각투자 시장에 뛰어들어 50만 명의 이용자를 모으고 소유라는 플랫폼을 안착시킨 스타트업 루센트블록이 시장 퇴출의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반면 막대한 자본과 인프라를 앞세운 한국거래소(KRX)와 넥스트레이드(NXT) 등 거대 금융 연합체는 새로운 시장의 주인으로 낙점될 가능성이 커졌다.
오는 14일 금융위원회의 예비인가 심사를 앞두고 벌어진 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대한민국 금융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모순과 혁신 산업의 미래를 묻는 중대한 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전망이다.
쪼개서 파는 빌딩, 조각투자와 규제 샌드박스의 탄생
오는 14일 금융위원회의 예비인가 심사를 앞두고 벌어진 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대한민국 금융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모순과 혁신 산업의 미래를 묻는 중대한 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전망이다.
쪼개서 파는 빌딩, 조각투자와 규제 샌드박스의 탄생
이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토큰증권(STO)과 규제 샌드박스라는 개념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주식은 기업의 소유권을 사고파는 것이다. 반면 토큰증권은 부동산, 미술품, 음악 저작권, 한우 등 실물 가치는 있지만 유동화하기 어려운 자산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권리로 변환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100억 원짜리 강남 빌딩을 혼자서 살 수는 없지만 이를 1000원 단위의 디지털 증권으로 쪼개서 1000만 개를 발행하면 누구나 건물주가 되어 임대 수익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조각투자다.
우리가 흔히 아는 주식은 기업의 소유권을 사고파는 것이다. 반면 토큰증권은 부동산, 미술품, 음악 저작권, 한우 등 실물 가치는 있지만 유동화하기 어려운 자산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권리로 변환한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100억 원짜리 강남 빌딩을 혼자서 살 수는 없지만 이를 1000원 단위의 디지털 증권으로 쪼개서 1000만 개를 발행하면 누구나 건물주가 되어 임대 수익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조각투자다.
루센트블록은 2018년 창업해 이 조각투자 시장에 뛰어들었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현행 자본시장법상 실물 자산을 증권화해서 사고파는 것은 불법이거나 법적 근거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금융 산업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이기 때문에 법에 명시되지 않은 행위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활로는 금융규제 샌드박스(혁신금융서비스)로 찾았다. 아이들이 모래놀이터(Sandbox)에서 다칠 위험 없이 자유롭게 뛰어놀듯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에 한해 일정 기간(최대 4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 주는 제도며 루센트블록은 이 제도를 통해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소유를 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투자자들은 소유 앱을 통해 건물의 지분을 커피 한 잔 값에 사고팔았고 루센트블록은 지난 4년간 누적 거래액 300억 원, 가입자 50만 명이라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쌓아 올렸다. 금융당국 역시 이들의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STO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루센트블록은 허허벌판이던 STO 시장의 도로를 닦고 신호등을 세운 퍼스트 펭귄이었다.
임시 면허 만료와 거인들의 등장
문제의 발단은 금융위원회가 STO 시장을 정식 제도권으로 편입하겠다고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샌드박스는 어디까지나 임시 면허다. 당연히 기간이 끝나면 정식 면허를 다시 받아야 한다. 그리고 금융위는 토큰증권의 발행과 유통을 분리하고 이를 중개할 장외거래소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이 지점에서 예비인가 심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루센트블록은 탈락이 유력하고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 컨소시엄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논란이 커지자 금융위원회는 곧바로 보도 설명자료를 통해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인가 관련 사항은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으나 현 상황에서는 분위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루센트블록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지난 7년간 아무런 사고 없이 시장을 운영해왔고, 금융위가 요구하는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랐다고 주장한다.
특히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제23조에 명시된 배타적 운영권을 근거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혁신금융서비스를 운영한 기업이 그 성과를 바탕으로 시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른 기업이 동일한 서비스를 모방하는 것을 일정 기간 막아주는 보호 장치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기득권 보호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루센트블록은 1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마루180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에 강하게 항의했다.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는 " 제도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은 입법 취지와 상충되며 혁신을 먼저 시도한 기업이 오히려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였다"고 주장했다.
허 대표는 나아가 "혁신 기업이 리스크를 감내하며 개척한 시장이 제도화 단계에서 충분한 보호 없이 다른 주체로 이전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이는 향후 창업과 혁신에 대한 도전 의지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면서 이번 사태를 대학 입시에 비유하기도 했다. 대학을 입학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대학을 잘 다니고 있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퇴학을 당하고 그 자리를 기득권의 자녀들이 아무런 노력 없이 차지하게 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가장 큰 제도적 위험을 감수하며 아무 문제 없이 실증을 수행한 혁신금융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는 사실상 소멸됐고 이는 당시 국회의 명확한 입법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다만 앞으로의 전투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경쟁자로 등장한 넥스트레이드(NXT)는 체급 자체가 다르다.
넥스트레이드는 금융투자협회와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합작해 만든 대체거래소(ATS) 준비 법인이다. 여기에 한국거래소(KRX)는 대한민국 주식시장을 독점해온 공공기관 성격의 거대 조직이다. 나아가 금융당국이 이번 인가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항목은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다. 자본금 규모, 전산 시스템의 안정성, 비상시 대처 능력 등을 평가할 때 스타트업인 루센트블록이 수십 년간 금융 인프라를 운영해온 이들 기관을 이기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예고된 비극인가, 의도된 배제인가
이 사태는 샌드박스 졸업생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루센트블록이 비유한 '대학 입시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대학을 잘 다니던 학생을 이유 없이 퇴학시키고 그 자리에 이사장의 자녀를 입학시키는 꼴'이라고 비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들이 닦아놓은 시장 데이터를 금융당국과 공유하며 제도를 만드는 데 기여했음에도 막상 제도가 열리자 기존 금융권의 논리와 자본의 잣대로 평가받아 축출당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논란이 되는 지점은 넥스트레이드의 시장 진입 과정이다.
루센트블록 측은 넥스트레이드가 인가 신청 전 투자를 검토하겠다며 접근해 비밀유지계약(NDA)을 맺고 핵심 기술과 사업 자료를 받아 갔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자료를 받아 간 뒤 투자는 없던 일이 되었고 불과 2~3주 뒤 넥스트레이드가 루센트블록과 똑같은 사업 모델로 인가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전형적인 대기업의 기술 탈취이자 스타트업 죽이기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시각은 냉정하다. 금융위는 샌드박스는 특혜를 주는 기간이지 영구적인 독점권을 주는 제도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중이다. 스타트업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해 볼 기회를 주었지만, 이제 시장이 커지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식 금융 서비스가 되려면 그에 걸맞은 체력(자본금)과 갑옷(보안/컴플라이언스)을 갖춰야 한다는 논리다. 혁신성만으로는 수백, 수천억 원이 오가는 금융 시장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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