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 경쟁이 심화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AI 반도체는 국가 기술 주권과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경쟁의 핵심은 단순한 성능 우위를 넘어, 누가 더 빠르게 설계 역량을 축적하고 이를 산업 현장과 효과적으로 연결하느냐에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AI 반도체 인재 양성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전략 과제가 되고 있다.
정부 역시 AI·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육성을 주요 국정 기조로 제시하며, 팹리스 경쟁력 강화와 AI 반도체 상용화 촉진,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의 연계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AI 반도체 R&D 투자 확대, 기술 사업화, 팹리스 기업 지원 정책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다만 이러한 정책이 현장의 실질적인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성과를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설계 전문 인재 양성이 보다 체계적으로 병행돼야 한다.
필자의 연구원 수도권연구본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서울시와 협력해 2020년부터 AI 반도체 설계 전문 인력 양성 사업을 추진해 왔다. 본 교육과정은 단기 교육에 그치지 않고, 산업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실무형 설계 인재를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해로 6년 차를 맞은 이 프로그램은 누적 1769명의 수료생을 배출했으며, 88.1%의 매우 높은 취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청년 일자리 창출은 물론,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려온 중소·중견 팹리스 및 반도체 기업의 인력 수요를 효과적으로 해소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교육과정은 산업체 전문가, 대학 교수, ETRI 연구진이 공동으로 설계했으며, 고가의 반도체 설계 툴과 실습 환경을 활용해 실제 산업 현장과 유사한 조건에서 운영된다.
그 결과 수료생들은 텔레칩스, SK이노베이션 E&S, 수퍼게이트 등 주요 반도체·AI 기업에 진출해 즉시 전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기업 현장에서는 이들의 실무 역량을 ‘입사 6~12개월 차 경력자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인재 양성이 단순한 교육을 넘어 산업 경쟁력 강화로 직결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AI 반도체 인재 양성 체계는 여전히 일부 지자체의 재정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AI 반도체는 특정 지역 산업 육성 차원을 넘어 국가 전략 기술인 만큼, 중앙정부 차원의 보다 안정적이고 중장기적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특히 정부가 추진 중인 AI 반도체 R&D, 팹리스 지원, 기술 사업화 정책과 연계해 설계 전문 인재 양성을 하나의 국가 단위 인프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가 현장 밀착형 교육과 산업 연계를 담당한다면, 중앙정부는 중장기 인재 양성 로드맵 수립, 교육 인프라 고도화, 지속 가능한 재원 구조 마련을 통해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ETRI는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 연구개발과 산업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앞으로도 AI 반도체 인재 양성의 핵심 플랫폼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다. 서울시와의 협력으로 검증된 인재 양성 모델이 정부 정책과 유기적으로 연계될 때, 대한민국 AI 반도체 생태계는 비로소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AI 반도체 인재에 대한 투자는 단기 성과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반 구축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연구기관과 산업계가 하나의 전략 아래 긴밀히 협력할 때, 대한민국은 글로벌 AI 반도체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인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수도권연구본부장
